총 대신 농장·학교로 일제에 맞선 안희제…안민석, 발해농장 찾았다

폐교된 발해학교·옛 사무실 방문…10여분 떨어진 농장으로 이동
안희제 넋 기리는 살풀이춤…"발해학교 리모델링해 기념관으로"

안민석 경기교육감(가운데)과 일행이 12일(현지시간) 중국 헤이룽장성 무단장시 닝안시 발해진의 발해농장에서 안희제의 넋을 기리는 살풀이춤을 마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경기도교육청 제공) 2026.8.12/뉴스1

(발해진=뉴스1) 이윤희 기자 = 독립운동가 백산 안희제가 중국 만주에 세운 발해농장은 농사만 짓던 곳이 아니었다. 한인 300여 가구가 삶의 터전을 마련하고 그 자녀들이 민족교육을 받은 '독립운동 마을'이었다.

중국과 러시아의 항일 독립운동 유적을 순회 중인 안민석 경기도교육감은 방문 이틀째인 12일(현지시간) 중국 헤이룽장성 무단장시 닝안시 발해진에 있는 발해학교와 안희제가 사용했던 옛 사무실을 찾았다.

현재 폐교된 발해학교는 안희제가 설립해 초대 교장을 맡았던 곳이다. 농민과 자녀들을 대상으로 민족교육을 실시하며 한인 공동체의 정체성과 교육 기반을 지켰다.

학교 인근에는 안희제가 거처 겸 발해농장 사무실로 사용했던 건물이 남아 있다. 90여년 전 사용한 건물로 현재까지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안 교육감 일행은 사무실 주변을 둘러보며 발해농장의 운영 과정과 이주 한인의 정착을 지원했던 안희제의 활동에 관한 설명을 들었다.

중국 헤이룽장성 무단장시 닝안시 발해진에 남아 있는 안희제의 옛 거처 겸 발해농장 사무실. 안희제가 90여년 전 사용했던 건물로 현재까지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경기도교육청 제공) 2026.8.12/뉴스1

일행은 옛 사무실을 둘러본 뒤 차량으로 10여분 떨어진 발해농장으로 이동했다. 이곳에서 안희제가 농업을 통해 한인들의 경제적 자립을 이끌고 독립운동의 기반을 마련했던 과정을 살폈다.

현재 발해농장에서는 농경지 사이로 관람열차가 운행되는 등 현지인을 대상으로 한 관광이 이뤄지고 있었다. 일행은 열차가 오가는 농장 일대를 둘러보며 독립운동 기지였던 공간의 현재 모습도 확인했다.

발해농장에서는 안희제의 넋을 기리는 살풀이춤도 펼쳐졌다. 타국에서 조국 독립을 위해 헌신한 그의 희생을 기리고 추모와 감사의 뜻을 전하기 위한 헌정 무대였다.

흰 한복을 입은 김선정 단국대학교 교수가 흰 천을 들고 춤사위를 펼치자 같은 차림의 박범태 한국예술종합학교 강사가 장단과 소리로 무대를 이끌었다. 일행은 공연을 지켜보며 안희제의 독립운동 정신을 되새겼다.

김선정 단국대학교 교수(왼쪽)가 12일(현지시간) 중국 헤이룽장성 무단장시 닝안시 발해진의 발해농장에서 안희제의 넋을 기리는 살풀이춤을 선보이고 있다. 오른쪽은 장단과 소리를 맡은 박범태 한국예술종합학교 강사. (경기도교육청 제공) 2026.8.12/뉴스1

안희제는 경제와 교육을 독립운동의 수단으로 삼았다. 항일 비밀결사 대동청년당을 조직한 데 이어 부산에서 백산상회를 운영하며 대한민국임시정부에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했다.

93년 전인 1933년 만주로 망명한 뒤에는 발해의 옛 도읍인 동경성에 발해농장과 발해학교를 세웠다.

그는 중국인 지주의 수탈을 받던 한인 소작농 300여 가구를 이주시켜 토지를 나눠주고 자작농으로 정착하도록 도왔다.

발해농장은 한인들의 경제적 자립을 뒷받침한 독립운동 기지였고, 발해학교는 우리말과 민족의식을 지키는 교육 공간이었다. 안희제는 농장과 학교를 두 축으로 독립의 기반을 닦았다.

안 교육감은 "안희제 선생이 설립하고 초대 교장을 맡았던 발해학교가 현재 폐교된 상태"라며 "학교 건물을 리모델링해 안희제 선생의 기념관으로 활용하고, 발해농장과 발해학교의 역사와 독립운동 정신을 후손들에게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lyh@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