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고된 재난 장마] "물막이판 설치? 집값 떨어진다고 집주인이 막아"
물막이판 거부·막힌 빗물받이 여전…현장은 '빈틈 투성이'
지하차도 차단시설 '돌발 폭우'에 취약…'실전' 대피체계 점검 필요
- 최대호 기자
(전국=뉴스1) 최대호 기자 = 본격적인 장마철을 앞두고 수도권 전역에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기후변화 영향으로 특정 지역에 시간당 수십㎜의 비가 집중되는 '극한호우'가 일상화하는데, 반지하 주택과 지하차도, 저지대 상가 등 폭우 피해가 예상되는 지역의 대비책은 여전히 미비한 것으로 나타나면서다.
지난해 집중호우는 경기도 곳곳에 큰 상흔을 남겼다. 21일 경기도에 따르면 지난해 7~8월 집중호우로 도내에서 주택 침수 1039건이 발생했다. 농경지 피해는 1456㏊, 농작물 피해는 3207㏊에 이르렀다. 피해액만 1456억 원에 달했다. 최근 3년간 침수 피해 이력도 6840건으로 집계됐다.
지방자치단체들은 침수방지시설 확충과 지하차도 자동 차단시스템 구축, 취약계층 대피체계 정비 등에 나서고 있지만, 주민들의 시설 설치 거부, 관리 인력 부족 및 사각지대의 문제를 해소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19일 오전 성남시 수정구의 한 노후 주택가. 가파른 언덕길 아래로 반지하 주택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주민들은 장마철만 되면 하수 역류와 빗물 유입 걱정에 밤잠을 설친다고 입을 모았다.
경기도내 7만 5096가구는 반지하·지하주택에 거주 중이다. 이 가운데 최근 10년간 침수 이력이 있는 가구는 6461가구에 달한다.
도와 시·군은 침수감지 알람장치와 차수판 등 침수방지시설 설치를 지원하고 있지만 지자체의 기대만큼 속도가 나지 않고 있다.
반지하 주민 김 모 씨(71)는 "시청에서 차수판을 설치해 준다고 했지만, 집주인이 침수 주택으로 낙인찍히면 집값이 떨어질 수 있다며 거부했다"며 "비가 많이 온다는 예보만 나오면 불안하다"고 말했다.
실제 경기도가 최근 10년간 침수 이력이 있는 가구를 대상으로 설치한 침수감지 알람장치는 1369개, 차수판은 3262개 수준이다. 침수 위험에 비해 충분하다고 보기 어려운 수치다.
현행 제도상 세입자가 원하더라도 소유주 동의 없이 시설을 설치하기 어려운 점도 한계로 꼽힌다.
안양시 만안구 상가 밀집 지역에서는 장마철 배수 기능을 담당하는 빗물받이 일부가 담배꽁초와 생활쓰레기로 막혀 있는 모습도 확인됐다.
일부 상인들은 악취를 막기 위해 장판이나 고무판을 덮어두기도 했다.
지자체들은 장마철을 앞두고 준설과 청소 작업을 실시하고 있지만 쓰레기 투기와 관리 부실이 반복되면서 집중호우 때마다 배수 기능을 떨어뜨리는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한 상인은 "청소를 해도 며칠 지나면 다시 꽁초와 쓰레기가 쌓인다"며 "폭우가 오면 물이 빠지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도시 침수의 상당수가 대규모 시설 부족보다 생활 속 관리 부실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지적한다.
과거 인명 피해가 발생한 지하차도 역시 주요 위험지역으로 꼽힌다.
경기도 내 지하차도는 모두 302곳이다. 이 가운데 자동 차단시설 의무설치 대상은 134곳이다. 현재 차단시설은 221곳(73.2%), 침수감지 알람장치는 218곳(72.2%)에 설치돼 있다.
부천과 인천 원도심의 주요 지하차도에는 수위 감지기와 연동된 자동 차단시설이 운영되고 있다. 위험 수위가 감지되면 즉시 차량 진입을 통제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여전히 돌발 변수에 대한 우려가 나온다.
부천시 교통시설 담당자는 "극한호우가 발생하면 수위 상승부터 침수까지 몇 분밖에 걸리지 않는 경우도 있다"며 "자동 차단시설이 설치돼 있어도 이미 진입한 차량이나 통신 장애 상황까지 완벽히 통제하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특히 심야 시간대 발생하는 국지성 폭우는 현장 대응 인력이 즉시 투입되기 어려워 시스템과 인력의 유기적 대응이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일선 지자체들이 운영 중인 취약계층 동행 대피 체계도 실효성 검증이 필요한 과제로 꼽힌다.
홀몸노인과 장애인 등을 대상으로 공무원, 통장, 자율방재단 등이 대피를 지원하는 구조지만 실제 재난 상황에서는 인력 부족 문제가 반복적으로 제기된다.
수원시 원도심의 한 행정복지센터 관계자는 "취약계층 숫자에 비해 담당 인력이 충분하지 않은 곳도 많다"며 "특히 심야 시간대 집중호우가 발생하면 연락 두절이나 출동 지연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현재 경기도가 별도 관리 중인 위험 1순위 반지하주택은 898가구다. 재난 발생 시 이들 가구에 대한 신속한 대피가 인명 피해를 줄이는 핵심 과제로 꼽힌다.
재난 전문가들은 시설 확충 못지않게 현장에서 실제 작동하는 관리 체계가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한 재난안전 전문가는 "침수방지시설과 원격 시스템이 확대된 것은 분명한 진전"이라면서도 "아무리 촘촘한 매뉴얼도 현장에서 작동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현장 대응력에서 피해 규모가 갈린다"고 강조했다.
이어 "시설 설치 확대와 함께 취약계층 대피 지원, 빗물받이 관리, 현장 대응 인력 확보 등 세밀한 보완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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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본격적인 장마를 앞두고 전국의 재난 취약지가 다시 시험대에 오른다. 기후변화로 짧은 시간 강한 비가 쏟아지는 일이 잦아지면서 반지하와 지하차도, 제방, 산불 피해지, 농경지와 섬 지역의 위험도 커지고 있다. 이에 뉴스1은 권역별 장마 대비 실태와 남은 위험을 점검한다. 예고된 재난이 반복된 피해로 이어지지 않도록, 현장의 준비가 충분한지 4차례에 걸쳐 짚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