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의 재구성] "외상값 갚아" 한마디…7년 인연, 피로 끝났다

험담→항의→격한 언쟁…되돌릴 수 없는 '비극' 초래
법원 "계획적이고 잔혹한 범행"…심신미약 주장 배척

ⓒ 뉴스1 김지영 디자이너

(고양=뉴스1) 김기현 기자 = 지난해 6월 8일 초여름 밤. 평범했던 경기 고양시 일산서구 소재 주점이 순식간에 '무시무시한 지옥'으로 변했다.

70대 남성 A 씨가 약 7~8년을 알고 지낸 오랜 지인 사이인 50대 여성 B 씨를 여러 차례 흉기로 찔러 살해하면서다.

이들 관계에 금이 가기 시작한 시기는 같은 해 5월 무렵. A 씨가 평소 주변에 B 씨에 대한 험담을 하고 다닌다는 이야기가 돌 때부터였다.

A 씨는 B 씨로부터 거듭 항의를 받고 언쟁을 벌이다 점차 감정이 격해졌고, 진정할 틈마저 잃어갔다.

일정 시간이 지나 찾아온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오후 6시 18분께 주점에서 다시 마주친 두 사람은 역시나 말다툼을 이어갔다.

A 씨는 B 씨로부터 욕설을 듣자, 분노를 주체하지 못했다. 급기야 B 씨를 향한 적개심을 흉기로 바꾸며 '살인'을 결심했다.

그리고 같은 지역 소재 주거지로 가 주방에 있던 흉기 2개와 둔기 1개, 장갑 1개를 가방에 챙겨 오후 8시 33분께 주점으로 돌아왔다.

A 씨는 또다시 B 씨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던 중 재차 격분했다. 바로 B 씨 말 '한마디' 때문이었다.

"이 XX야. 외상값이나 갚아라."

그는 자신과 말다툼한 후 맞은편 식당으로 향하는 B 씨를 뒤따라갔다. 이미 장갑을 착용하고, 흉기와 둔기가 든 가방까지 챙긴 상태였다.

그런데 오후 9시께 또다시 B 씨로부터 욕설과 함께 "돈 내놔라"라는 말을 들었고, A 씨는 끝내 이성의 끈을 놓고 말았다.

그는 가방에서 길이가 30㎝인 흉기 한 자루를 꺼내 B 씨 목을 1회 베고, 우측 복부를 1회 찔렀다.

이어 B 씨가 식당 후문과 연결된 주차장으로 도망가자 곧바로 뒤쫓아가 우측 하복부를 1회 더 찔렀다.

나아가 A 씨는 B 씨가 주점 앞 도로에 쓰러지자 가슴 부위를 1회 추가로 찔러 저혈량성 쇼크로 사망케 했다.

A 씨 만행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목격자 2명이 경찰에 신고하려는 기색을 보이자, 그는 흉기를 들고 위협을 이어갔다.

목격자 1명에게는 흉기를 복부에 들이대며 "X 같은 X아. 너 같은 걸 내가 살려둘 줄 알아. 너 전화하면 너도 죽여 버릴 거야"라고 협박했다.

특히 그는 이미 같은 해 4월 6일 저녁 같은 지역 한 식당에서 70대 여성 C 씨 전신을 주먹과 발로 수 회 때린 혐의도 받고 있었던 상태였다.

당시 그는 C 씨와 말다툼을 하다 화를 참지 못해 범행한 것으로 전해졌다. C 씨는 치아 아탈구 등 약 4주간 치료가 필요한 상해를 입었다고 한다.

끝내 살인, 특수협박, 상해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 씨는 법정에서 고개를 숙였다. 그러면서도 범행 당시 '심신미약' 상태에 있었다며 재판부에 선처를 요청했다.

심신미약이란 심신장애로 인해 사물을 변별하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미약한 상태로, 형법상 형량 감경 사유다.

하지만 1심 재판부인 의정부지법 고양지원 제1형사부(부장판사 김희수)는 A 씨 진술과 병원 진료 내역 등을 고려해도 심신미약 상태였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살인은 사람의 생명을 빼앗는 중대 범죄로 어떤 방법으로도 그 피해를 회복할 수 없어 그에 상응하는 처벌이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계획적 범행으로 보이고 범행 수법이 매우 잔혹하다. 이 과정에서 다른 사람들을 협박하기도 했다"고 꼬집었다.

다만 "고령인 점, 음주와 정신과 약 복용이 잔인한 범행에 영향이 있을 것으로 보이는 점 등 여러 사정을 고려했다"고 덧붙였다.

kkh@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