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심 박고도 등교한 독종"…조용한 인내로 만든 유승은의 '기적'
국가대표 사실 드러내지 않던 성격…교사 "오히려 알리지 말라 했다"
"외롭지 않다, 감수해야죠"…목표가 분명했던 10대의 선택
- 김기현 기자
(용인=뉴스1) 김기현 기자 =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 스노보드 여자 빅에어에서 동메달을 따낸 유승은(18·경기 용인성복고). 올림픽 시상대 위에서 태극기를 들었던 그는, 학교에서는 늘 조용히 자기 자리를 지키던 학생이었다.
전 세계가 유승은의 비행에 환호할 때, 교정에서 누구보다 뜨거운 마음으로 그를 지켜본 이들도 있다. 해외 훈련 등 일정으로 결석하는 날이 적지 않았지만, 학교에 올 때마다 묵묵히 학업에 열중하던 ‘학생 유승은’을 기억하는 선생님들이다.
유승은의 학교생활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용인성복고 체육예술부장 A교사로부터 메달 뒤에 가려졌던 이야기를 들어봤다.
유승은은 학교에서 '유명 인사'가 아니었다. 아니, 스스로 유명해지기를 거부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교사는 "승은이는 학교에서 정말 조용한 학생이었다"며 "같은 반 친구들조차 말해주기 전까지는 승은이가 국가대표라는 걸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본인 스스로도 그런 사실을 내세우거나 드러내는 걸 싫어했다"며 "오히려 제가 자랑하려고 하면 '선생님, 제발 말씀하지 마세요'라며 쑥스러워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조용함 뒤에는 성실함이 있었다. 동계 종목 특성상 해외 훈련 등 일정으로 학기 중 학교를 비우는 기간이 적지 않았지만, 유승은은 학업 기준을 꾸준히 충족하며 성적도 잘 유지했다고 한다.
A교사는 "학생 선수는 학기마다 '최저 학력'을 넘겨야 한다"며 "승은이는 바쁜 와중에도 학업에 열중해 항상 좋은 성적을 거뒀다"고 했다.
아울러 "특히 수학과 일본어를 굉장히 열심히 좋아했다"며 "빠진 수업에 따라가고자 보충수업도 모두 듣고, 평가도 전부 수행해 통과할 정도로 부지런했다"고 덧붙였다.
A교사는 "무엇보다 유 선수는 운동뿐만 아니라, 학생 본분도 놓치고 싶지 않아 했던 '기특한 제자'였다"고 설명했다.
올림픽 동메달까지 유승은에게 지난 1년은 부상과 재활의 연속이었다.
A교사는 "승은이는 작년에 부상을 정말 많이 당했다"며 "발목에 철심을 박는 큰 수술을 했을 때는 정말 가슴이 아팠다"고 회상했다.
그런데 발목 수술 후 약 2주 정도 지난 시점, 교사는 흠칫 놀랐다고 한다. 유 선수가 다리에 보호대를 찬 채 절뚝거리면서 등교했기 때문이다.
교사가 '너 지금 이 몸으로 나와도 되느냐'고 묻자 유 선수는 '공부해야 한다'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교사는 "겉으로는 '괜찮아요, 재활하면 되죠'라고 담담하게 말했지만, 어머님과 상담하는 과정에서 승은이가 많이 힘들어한다는 얘기를 듣고 마음이 아팠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팔꿈치·발목 부상부터 작년 11월 빅에어 월드컵 결선 직전 손목 골절까지. 유 선수는 계속되는 불운에 흔들린 시기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타인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기 싫어했다. 오로지 결과로 증명하겠다는 의지 하나로 버텼고 빅에어 월드컵 은메달을 기점으로 기적처럼 반등에 성공하며 밀라노행 티켓을 거머쥐었다.
학업과 운동을 병행하는 과정에서 친구들과의 시간을 충분히 보내지 못한 아쉬움은 없었을까. A교사는 유승은에게 걱정 어린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고 한다.
그때 유승은은 "운동과 학업을 양립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어요. 올림픽을 목표로 한다면 이 정도는 당연히 제가 감수해야죠. 전혀 외롭지 않습니다"라고 답해 A교사를 놀라게 했다.
A교사는 "한번은 '학교를 자주 빠져서 친구들과 서먹하거나 외롭지 않냐'고 물어본 적이 있는데, 돌아온 답은 담담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유 선수에게 '올림픽'이라는 목표는 늘 분명했고, 자신이 포기해야 할 것도 스스로 인지해 겸허히 받아들이고 있던 셈이다.
'한국 설상 종목 여자 선수 최초 올림픽 메달 획득'이라는 새 역사를 쓰고 있는 유 선수는 이제 스노보드 슬로프스타일(16일)에 출전해 '2번째 메달'에 도전한다.
교사는 "승은이는 올림픽이라는 거대한 목표를 위해 너무 많은 것을 참으며 살았다"며 "10대가 누릴 수 있는 사소한 즐거움들을 많이 놓친 게 늘 안쓰러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제 남은 고교 시절, 그리고 다가올 20대에는 스노보드 외에도 하고 싶었던 것들을 마음껏 즐기며 살았으면 한다"며 "승은이는 뭘 해도 잘할 아이"라고 응원했다.
kkh@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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