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거래사] "나를 버리고 미친놈으로 13년을 살아왔다"

용인 학일마을 김시연 운영위원장 “농촌관광의 ‘광’자는 ‘미칠 광’”
‘농’자도 모르던 군무원, 고군분투로 마을 발전 이끌어

편집자주 ...매년 40만~50만명이 귀농 귀촌하고 있다. 답답하고 삭막한 도시를 벗어나 자연을 통해 위로받고 지금과는 다른 제2의 삶을 영위하고 싶어서다. 한때 은퇴나 명퇴를 앞둔 사람들의 전유물로 여겼던 적도 있지만 지금은 30대와 그 이하 연령층이 매년 귀촌 인구의 40% 이상을 차지한다고 한다. 농촌, 어촌, 산촌에서의 삶을 새로운 기회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얘기다. 뉴스1이 앞서 자연으로 들어가 정착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날 것 그대로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예비 귀촌인은 물론 지금도 기회가 되면 훌쩍 떠나고 싶은 많은 이들을 위해.

김시연 운영위원장(학일마을 제공)ⓒ News1

(용인=뉴스1) 김평석 기자 = 나를 버리고 미친놈으로 13년간 살아왔다.

건강이 나빠져 휴양을 위해 귀촌했다 무보수로 운영위원장을 맡아 마을 머슴으로 살고 있는 김시연씨(62) 얘기다.

그는 2008년 경기 용인시 원삼면 학일리에 정착했다.

이듬해부터 마을 일에 뛰어들어 13년 가량 지난 지금 허울뿐이던 체험마을을 국내 대표 농촌 체험마을로 변화시켰다.

코로나19 대유행(팬데믹) 전이던 2019년 만해도 연 1만1000여명이 마을을 찾았다.

학일마을은 국내 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벤치마킹할 정도의 핫 플레이스로 각광받고 있다.

국방부에서 군무원으로 30년간 재직한 그는 귀촌하기 몇 해 전 부인과 함께 7일간 의식불명 상태에 빠지는 대형 교통사고를 당했다.

회복된 뒤에도 두 사람 모두 후유장애를 앓는 등 건강이 급속히 나빠졌다.

공직 생활 만 30년이 되던 2008년 과감히 퇴직하고 학일마을로 들어왔다.

◇농사의 ‘농’자도 모르는 외지인이 집성촌서 살아남은 비결은?

지금이야 하이닉스반도체 클러스터가 입지하면서 개발 바람이 불고 있지만 그가 귀촌할 당시만해도 학일마을은 지방의 산골마을과 다름없는 용인에서 가장 외진 작은 농촌마을이었다.

48가구 90여명이 살고 있었고 그 중 60세 이상이 90%를 차지하는 해주오씨 집성촌이기까지 했다.

그는 “외지인에다 성마저 달랐고 연고조차 없었지만 축사나 공해시설이 없었다. 마을모양이 좋아서 그냥 들어왔다”고 했다.

농사에 대한 일말의 상식조차 없는 상태였다.

주민과 융화하기 위해 마을정서를 이해하려고 노력했고, 회의에도 참석했는데 그것이 머슴으로 살게 된 발단이 됐다.

주민들과 자주 접촉하면서 마을이 가진 구조적 한계와 특·장점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학일마을은 2002년부터 정부 지원을 받아 마을발전을 위해 예산을 투자했다.

하지만 그때 뿐, 지속성이 없었고 마을을 운영하기 위한 최소한의 기본규약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마을과 관련된 의사결정이나 공금의 운영·결산도 믿고 따르는 것이 관례였다.

목소리 큰 사람이나, 남보다 비교적 우위(?)에 있는 주민의 주장이 수용되기를 반복했다.

대동회, 상조회, 청년회, 부녀회, 영농회, 노인회, 무슨 추진위원회, 무슨 운영회 등 조직도 많아 주민 모두가 임원이고, 대장이었다.

그는 마을운영에 기준이 되는 규약이 필요하다고 강조했고 주민 동의를 얻어 규약을 새로 만들었다.

의사결정을 간결하고 신속하게 처리할 수 있도록 산재해 있던 조직도 통폐합했다.

이 과정에서 마을 총무를 맡게 됐고 본격적인 고행(?)의 길로 들어서게 됐다.

학일마을에 제조해 판매하고 있는 전통 장류.(학일마을 제공)ⓒ News1

◇농촌관광에서 ‘광’자는 ‘미칠 광’이다

학일마을은 2005년 정보화마을로 지정됐는데 체험객이 가끔 마을을 방문해 농사체험을 하고 갔다.

형편없는 인원수와 낮은 체험소득에 주민들의 관심도 멀어져 있었고 진행요원은 전문성도 사명감도 없었다.

2009년 초 마을 총무를 맡은 그는 이장에게 “체험 관련 사업은 내게 위임해 달라”고 하고 프로그램을 직접 관리했다.

그 때 받은 마을 통장의 잔고는 8000원이 전부였고 연간 방문객수는 500여명에 불과했다.

그는 농촌관광 사업 관련 교육과 회의에 참여하고 선진마을을 견학하며 대표를 만나 조언을 구했다.

농촌관광 사업이 요원하게만 느껴지던 시기, 번뜩 스쳐가는 생각이 ‘수익’이었다.

마을주민의 성향을 분석한 결과, 수익이 나면 마음을 움직일 수 있겠다는 판단을 했다.

당시 그는 마을 보유 자원을 분석하고 수익 창출을 위한 방법을 모색하다 ‘없는 것이 곧 있는 것이다. 없는 것 그게 자원이다’라는 생각을 하면서 서서히 미쳐가고 있었다.

농촌관광에서 ‘광’자는 ‘미칠 광’이라고 한 누군가의 말도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30년 공직생활을 끝내고 언덕 위에 하얀 집 짓고 말년을 여유롭게 쉬어볼까 하고 귀촌했는데 그 꿈이 꿈으로 끝나는 것 같았다.

학일마을에는 축사도 없고 공장도 없다. 주변 산림지대는 생태1급지로 용인시의 허파이다. 오염원이 없다보니 도룡뇽, 가재, 반딧불이 등 희귀동식물이 있었다.

친환경, 친인간적인 체험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것으로 방향을 잡았다.

힐링과 웰빙에 초점을 맞춘 농사, 문화, 생태, 놀이체험프로그램을 적절한 시기에 이를 운영한다면 대한민국 ‘only one, only here program’이 탄생할 것으로 기대하고 계획을 세웠는데 그것이 적중했다.

농가에서 농업을 통해 얻는 소득은 30%에 불과한데 나머지 70%를 채워줄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가 생겼다.

◇돈이 되니 주민들이 움직였다.

지금이야 운영위원장으로 이장과 함께 마을을 이끄는 쌍두마차가 됐지만 우여곡절도 많았다.

주민과 융합하기 위해 노력했고 마을공동체의 이익을 위해 혼신을 다했지만 주민들의 고정의식을 변화시키기가 쉽지 않았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는 사람도 있었다.

그를 지지하는 주민과 반대편 주민 사이에 대립이 생겨나기도 했다. 그것을 극복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렸는데 열정과 투명한 일처리로 돌파했다.

벼 베기 체험(학일마을 제공)ⓒ News1

2009년 총무를 맡은 이후 체험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방문객과 매출액은 급상승했고 그만큼 주민 수익이 많아졌다.

사업성과는 연말 총회를 통해 공개하고 관련 내용을 회의록에 기록했다.

체험을 운영하며 발생한 문제점과 이에 대한 해법 등을 제시하고 다음해 사업계획에 반영될 수 있도록 정리해 주민 동의를 구했다.

체험 수익이 늘어나면서 참여 농가와 그렇지 않은 농가 사이에 농외소득에 차이가 발생했다.

이는 역설적으로 가공유통산업, 체험관광산업이 농가 소득증대에 이바지한다는 것을 주민들에게 알게 해줬다.

신뢰가 쌓이면서 2010년 말 총회에서 그에게 마을운영위원장을 맡겼다.

마을이장은 영농활동과 민원에 힘쓰고 위원장은 소득사업과 대외활동에 집중하라는 것이었다.

학일마을은 다른 마을과 달리 1일 1개 단체(20명~500명)의 체험만 진행한다.

방문객이 ‘오늘은 우리세상’이라는 생각을 갖도록 하고 마을이 보유한 유·무형의 자원을 방문객과 공유하면서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서다.

외갓집이나 친정집 같은 분위기를 조성해 재방문을 유도하고, 개별적으로도 마을을 찾을 ‘거리”를 제공해 농산물 직거래 확산을 도모하려는 의도도 있다.

학일마을을 찾은 사람의 80%가 재방문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는 효율적인 체험 진행을 위해 마을영농조합법인을 설립했다.

영농조합법인을 통해 다수가 고령인 주민들에게 체험 진행 관련 교육을 해 전문화시켜 부족한 인력 문제를 해결했다.

또 산하에 마을기업을 설립해 장류와 가래떡 가공 유통 사업도 하고 있다.

◇사업 다각화를 통한 1석3조 소득증대 효과

학일마을은 임야 431ha, 논 36ha, 밭 17ha, 과수원 2.7ha로 구성된 그리 크지 않은 마을이다.

친환경 우렁이 벼농사를 주로하고 일부 밭에서 표고버섯을 생산하고 있다. 과수원은 배나무과수원이다.

우렁이 쌀은 고가로 농협에서 전량 수매한다. 그 외 일반미는 마을기업에서 100% 소비한다.

밭작물은 대부분 체험상품으로 소비하고 일부는 방문객에게 판매한다.

마을기업은 쌀 150가가 가량을 일괄 구매해 설날 떡국떡으로 가공해 판매한다. 전량 주문생산이다.

과수(배)는 자매결연단체를 통해 연초에 모두 분양된다. 돈 받고 농사를 짓는 셈이다.

밭작물 가운데 콩은 마을기업이 전통장류로 만들어 판매한다. 연간 80가마 수준이다.

마을에서는 체재형 주말농장이자 귀농귀촌 체험시설인 크라인가르텐을 연간 계약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다.

학일마을 둘레길(학일마을 제공)ⓒ News1

마을 농외소득은 2018년 기준으로 체험 관련 1억여원(1만여명 방문), 전통장류 판매 8000만원, 가래떡 판매 6000만원, 크라인가르텐 운영 5000만원 등 3억 원가량 된다.

코로나19로 체험방문객 수가 500명대로 떨어졌던 지난해에도 마을 농외소득은 1억5000만원이 넘었다.

주민들은 생산한 쌀과 콩, 밭작물을 고가에 팔고 장류와 가래떡을 제조하며 인건비를 받고 판매 수익금을 분배하는 1석3조의 수익구조를 갖고 있다.

학일마을은 행복마을 만들기 콘테스트 장관상, 농촌 활성화 장관표창, 색깔 있는 마을 만들기 장관표창, 도농교류 유공 대통령 표창 등 화려한 수상 경력도 자랑하고 있다.

또 걷는 길 사업, 크라인가르텐 사업, 지역특성화 사업, 창조적 마을 만들기 사업 등 정부지원 사업도 유치했다.

김시연씨는 “보수가 없어도 행복하다. 성과가 있으니 보람도 있다. 마을 주민이 나를 믿고 따라주기 때문에 더욱 행복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언제까지 미친놈으로 살아야 하는가”라며 즐겁다는 건지 불행하다는 건지 모를 비명을 질렀다.

◇학일마을엔 즐길 거리 ‘무궁무진’

학일마을에는 배내미길, 광대바위길, 족금산길 등 3개 구간의 생태탐방 둘레길이 조성돼 있어 산길을 걸으며 여유 있는 한 때를 즐길 수 있다.

천체 관측 장비도 있어 별과 야생 조수를 살펴볼 수 있다. 오지 생존 체험장에서 문명을 잊은 하루를 보내보는 것도 좋다.

논풀장에서는 미꾸라지를 잡아보는 것은 덤으로 여겨도 된다.

계절별 체험 프로그램도 풍성하다.

봄에는 벼 심기, 버섯 따기, 천연 황토 염색, 쑥버무리 만들기 등이 가능하다. 벼 심기는 아이들이 직접 논에 들어가서 해 시연 방식으로 하는 체험과는 차별화 돼 있다.

여름에는 감자 캐기, 물놀이, 봉숭아 물 들이기, 가을에는 벼 베기, 과일수확, 탈곡 등을 한다.

아이들은 마을 주민과 함께 논에서 낫으로 벼를 베고 지금은 찾아보기 힘든 발로 밟아 원통을 회전시키는 예전 탈곡기로 벼를 털어내는 체험을 하게 된다.

겨울에는 메주 만들기, 김장 담기, 썰매타기 등이 가능하고 토피어리 만들기, 떡매치기 등은 연중 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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