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의 재구성] 니코틴 살인사건…아내와 내연남에게 살해된 남자

신용불량 범인들 피살자 재산 노리고 몰래 혼인신고뒤 살해
니코틴 치사량 검색·니코틴 원액 구입 등 추적 수사 쾌거

ⓒ News1 방은영 디자이너

(남양주=뉴스1) 이상휼 기자 = 매우 건강했다는 중년의 남자가 어느날 갑자기 숨졌다. 사인은 '니코틴 중독'.

직장동료들에 따르면 남자는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 평소 자전거를 타고 다녔고 주말에는 남양주에서 춘천까지 자전거 라이딩을 즐겼다. 건강관리에 관심이 많아 스스로 몸을 잘 챙겼고 잔병치레 한번 없었다. 그랬던 남자가 돌연사했다.

남편의 사망을 옆에서 목격했다는 아내는 출동한 경찰에게 '남편의 부검을 원하지 않는다'고 진술했다.

니코틴으로 살인이 가능할까?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졌고 1심 재판부는 유죄 판결했다.

전국을 경악케 한 이 사건은 세계적으로도 유례없는 방식의 신종 살인수법이라고 수사기관은 밝혔다.

지난해 4월22일 오후 11시25분께 평소 건강했던 53세 남성 오모씨가 자택에서 돌연 사망했다. 자택에는 외부의 침입 흔적이 없었고 오씨의 몸에도 외상이 없었다. 오씨의 사망에는 분명한 이유가 없었다.

오씨는 자식도 없이 숨졌다. 그의 곁에는 불과 2개월 전 법적 부인이 된 송모씨(47·여)가 있었다. 남편의 죽음을 맞닥뜨린 송씨가 맨처음 한 일은 112신고도 119구조요청도 아닌 상조회사 대표번호로 전화하는 것이었다.

송씨는 남편이 숨진 직후인 오후 11시26분께 상조회사로 전화해 "남편이 사망해 장례절차를 밟으려니 강모 팀장을 연결시켜달라"고 요청했다. 장례지도사는 송씨에게 "우선 112에 신고 접수하라"고 상식적 절차를 안내했다. 송씨는 그제야 112와 119에 신고했다.

◇남편의 죽음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은 아내

경찰 과학수사요원들이 자신의 방에 곧게 누워 숨진 오씨의 시신을 검시한 결과, 안구에는 일혈점이 없었고 사후강직도 일어나지 않았으며 구강 및 기도부와 목에서도 특이점이 없었다. 의사가 작성한 검안서에는 사망의 종류가 '기타 및 불상'으로, 사망원인은 '미상'으로 기재됐다.

시신은 대학병원으로 이송돼 전문의가 부검했다. 그 결과 간과 콩팥 등의 장기에서 울혈이 관찰됐고, 심장 관상동맥이 심하게 막혔으며, 피가 검붉고 응고돼 관상동맥경화에 의한 허혈성심장질환으로 추정됐다.

그러면서 의사는 "독극물에 의해 사망한 경우에도 나타날 수 있는 상태이므로 약·독극물검사를 시행해야 정확한 사인을 밝힐 수 있다"는 소견을 붙였다.

수사기관이 최종 부검결과를 기다리는 사이 송씨는 시신을 인도 받은 당일인 4월25일 남편을 화장했다.

빈소를 마련하지도 장례절차도 없었다. 남편의 지인과 직장에도 알리지 않았다. 송씨 자신의 친인척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송씨는 29일 남편의 사망신고를 마쳤다.

이후 나온 부검결과 오씨의 혈액에서 졸피뎀 0.41㎎/ℓ과 니코틴 1.95㎎/ℓ이 검출됐다. 졸피뎀의 혈중농도는 독성농도에 해당하고, 니코틴의 혈중농도는 치사농도였다. 부검의는 "심장병으로 인한 사인이 아니라 니코틴 중독으로 사망했다"고 최종 판단했다.

◇아내와 내연남의 수상한 활약

송씨의 내연남 황모씨(46)는 5월2일 이삿짐센터에 전화해 오씨의 집에 있던 가구들을 모두 폐기처분했다. 송씨는 오씨의 부동산과 승용차를 상속이전했고 오씨 명의 금융계좌를 해지하고 2억2000만원을 수령했다.

송씨는 황씨와 함께 5월10일 남편의 직장으로 찾아가 퇴직금 4700만원 수령을 신청하고, 남편 명의로 가입된 보험계약을 해지한 뒤 환급금을 신청했다.

송씨는 상속 받은 남편의 예금 중 1억500만원을 황씨에게 줬다. 황씨는 이 돈 전부를 빚 갚는 데 썼다.

2015년 5월부터 내연관계를 맺어온 송씨와 황씨는 각기 신용상태가 불량해 빚을 지고 있었다. 황씨는 마카오나 강원랜드를 수시로 출입하면서 도박했으며 불법 도박사이트도 애용했다. 도박자금 마련 목적이라는 살해 동기로 충분히 의심 가는 대목이다.

올초부터 황씨는 '소유권이전등기, 통신자료감청, 상조서비스' 등의 인터넷검색으로 미리 오씨의 재산을 빼돌릴 계획을 세워뒀다.

2015년 12월26일 황씨는 인터넷으로 '살인사건, 살인의 기술, 살인기술모음, 살인하는 방법'이라는 키워드로 검색했고 2016년 4월17일에는 '퓨어 니코틴 치사량, 니코틴이란' 등으로 검색하기 시작했다.

피해자가 사망하기 5일 전이었다. 이미 4월12일 황씨는 퓨어니코틴 10mℓ 2병과 니코틴 원액을 희석하는 데 사용하는 보호장구와 보조도구를 구입한 상태였다. 재판부는 이 부분을 유력한 범행사실 증거로 인정했다.

◇니코틴 투여 방법은 여전히 미궁, "증거 없다" 혐의 부인

재판부는 송씨와 황씨가 오씨 몰래 혼인신고했다고 판단했다. 남양주시청에 접수된 송씨와 오씨의 혼인신고서 증인란에는 내연남 황씨의 성명이 자필로 기재돼 있었다.

송씨는 오씨가 일 때문에 바뻐 혼인신고서를 작성하러 가지 못했다고 진술했다. 재판부는 "피해자 본인이 아닌 내연남이 혼인신고서를 직성했다는 것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고, 피해자로서는 생애 처음인 혼인신고에 관한 모든 것을 송씨에게 일임했다는 것도 납득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이들은 오씨의 재산을 노리고 거짓 혼인신고한 뒤 살해한 혐의로 기소됐다.

그러나 이들은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있다. 황씨는 "전자담배 액상을 만들려고 니코틴 원액을 구입했다"고 반박했다.

사체에는 주사 자국이나 패치를 붙인 자국이 발견되지 않았고 니코틴은 휘발성이 강해 호흡기로 투여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현직 임상약리학과 교수는 "니코틴을 몰래 먹였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말했다. 수사검사는 "다량의 졸피뎀과 니코틴을 불상의 방법으로 투여했다"고 공소장에 적시했다.

의정부지법 형사11부(고충정 부장판사)는 판결문에서 "피고인들이 사전에 치밀하게 범행을 계획해 실행한 전형적인 모살(謨殺)이다"며 "니코틴 구입경위와 인터넷 검색내역 등 구체적 범행의 방법과 정황이 드러났음에도 피고인들은 임기응변식 앞뒤가 맞지 않는 변명으로 일관하는 등 참작할 만한 사정이 전혀 없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이들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검찰과 피고인들은 쌍방 항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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