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요 않고 기다려 주시니 감사"…은둔·고립 청년들 마음을 열다
광주은둔형외톨이지원센터 방문상담·소통 프로그램 주목
상담부터 사회복귀까지 단계별 프로그램 거쳐 일상 되찾아
- 조수민 기자
(광주=뉴스1) 조수민 기자 = "사람들 만남이나 취업에 대한 압박 없이, 그저 마음 편히 올 수 있는 곳이 생겼다는 게 가장 컸습니다."
지난 11일 오후 찾은 전남광주 동구에 위치한 광주은둔형외톨이지원센터 내 자율공간 '누구나 올'. 조명이 켜진 쉼터 안에는 청년들이 테이블에 둘러앉아 한결 가벼운 표정으로 보드게임 카드를 넘기거나 독서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누구나 올'은 외출과 타인과의 소통이 서툰 고립·은둔 청년들이 아무런 조건이나 강요 없이 편안하게 머물며 일상을 회복할 수 있도록 마련된 자율 쉼터다.
외출 자체가 어려웠던 '공간적 고립(은둔)'을 겪던 청년들이 센터의 방문 상담과 소통 프로그램을 거쳐 '누구나 올' 공간으로 첫발을 내딛기까지는 수개월에서 1년 이상의 시간이 걸렸다. 센터 한쪽 벽면에는 '발굴 및 의뢰'부터 '상담', '활동 프로그램', '일 경험', '원활한 사회복귀'로 이어지는 단계별 지원 체계도가 자리 잡고 있었다.
실제로 센터의 단계별 프로그램을 거쳐 상처를 딛고 일상을 되찾아가는 청년의 사례도 이어지고 있다.
아무 연고도 없는 광주로 내려와 8년간 은둔 생활을 이어왔던 김 씨는 동생의 권유로 센터 문을 두드렸다. 김 씨는 "처음엔 상담만 받고 집에 가기 바빴지만, 4명 규모의 소규모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다른 당사자들을 만나 조금씩 마음을 열게 됐다"며 "아무런 강요 없이 오면 항상 반갑게 맞아주는 센터분들 덕분에 사람에 대한 두려움을 덜었고, 일 경험 프로그램까지 마치며 차근차근 자립을 준비하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 김 씨는 취업이나 만남에 대한 압박을 내려놓을 수 있었던 환경이 회복의 전환점이 됐다고 강조했다. 김 씨는 "그동안은 힘들어 스스로를 계속 몰아붙이다가 다시 움츠러들기를 반복했었다"며 "이곳에서는 무작정 취업이나 사회 진출을 강요하지 않고, 내 속도에 맞춰 인내심 있게 기다려준 덕분에 사람에 대한 신뢰를 되찾고 다시 나아갈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행정과 언론에서는 여전히 '은둔'과 '고립'이라는 개념이 혼용돼 쓰이곤 한다. 집 안이라는 물리적 공간에 갇혀 외부와 단절된 '은둔'과, 외출은 가능하지만 어려움이 생겼을 때 도움을 청할 사회적 네트워크가 전혀 없는 '고립'은 전혀 딴 판이다. 따라서 두 집단에 대한 정책적 접근과 지원 방식 역시 다르게 설계돼야 한다는 것이 현장의 시각이다.
이날은 동구 민들레소극장에서 당사자 소모임 '고수들의 실험실' 프로그램 중 하나인 연극이 한창이었다. 올해 센터에서는 연극을 비롯해 영화, 정책발굴단, 일본어교실 등 청년들의 흥미를 반영한 다채로운 소모임이 운영되고 있다. 대본을 손에 쥔 청년들은 어색함을 털어내며 서로 호흡을 맞추고, 인물의 대사를 고쳐 읽으며 유쾌한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공연을 관람한 한 청년은 "무대 위 이야기가 꼭 제 이야기 같아서 보는 내내 가슴이 울컥하고 깊이 공감됐다"며 "나와 비슷한 아픔을 가진 이들의 모습을 보며 혼자가 아니라는 위로를 받았다"고 전했다.
현장에서는 고립·은둔 청년의 안정적인 사회 복귀를 위해 장기적 관점의 단계별 지원 체계 구축이 필요하다고 제언한다.
백희정 광주은둔형외톨이지원센터장은 "은둔과 고립은 단순히 개인의 의지 문제나 청년층만의 문제가 아니다. 대인관계 실패, 학업 및 취업 스트레스 외에도 우울·불안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며 "극심한 경쟁 사회에서 한 번 밀려나면 낙오자로 낙인찍히는 구조가 청년들을 다시 은둔으로 내몰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은둔의 시작은 주로 10대나 20대에서 발생해 장기화하거나 재발하는 경향을 보인다"며 "단기간의 성과 위주 접근에서 벗어나 청년들이 사회에 안착할 때까지 끊어지지 않는 지속적인 보살핌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sumin@news1.kr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