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대부약정에 여권 빼앗아"…인권단체, 계절근로 브로커 엄벌 촉구

필리핀 노동자 8인, 불법 착취·강제노동 피해 고소

계절노동 전면개선 대책위원회 등 이주인권단체 관계자들이 9일 오후 전남광주 무안군 삼향읍 전라남도경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외국인 계절근로자 제도의 불법 브로커 처벌 및 제도 개선을 촉구하고 있다.(전남이주노동자인권네트워크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무안=뉴스1) 조수민 기자 = 외국인 계절근로자 제도가 민간 브로커의 불법 중간착취와 인권침해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계절노동 전면개선 대책위원회와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 전남이주노동자인권네트워크는 9일 전남경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계절노동자들을 착취한 불법 브로커에 대한 엄정 수사와 처벌을 촉구했다.

이들은 충남 보령, 충북 청주, 전남광주 해남 등지에서 일한 필리핀 출신 계절노동자 8명을 대리해 불법 브로커를 노동력 착취 목적 약취·유인 및 여권법 위반 등의 혐의로 전남경찰청에 고소했다.

현행 계절근로 제도는 국내외 지자체 간 양해각서를 기반으로 운영되지만, 지자체의 인력과 관리 역량 부족을 틈타 민간 브로커가 모집과 관리를 전담하는 등 구조적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고소장에는 피고소인인 브로커가 현지 지자체 담당자 행세를 하며 노동자들에게 항공비와 경비 명목으로 허위 대부금 약정서 작성을 강요하고 거액의 위약금을 설정한 연대보증 계약을 체결했다는 주장이 담겼다. 입국 직후에는 여권을 압수해 이탈을 봉쇄했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또한 입국 후 피해자들이 계약과 달리 하루 12시간에 달하는 장시간 노동에 내몰렸으나 연장근무 수당을 받지 못했으며, 브로커가 피해자 명의로 통장을 개설한 뒤 매월 급여에서 75만 원가량을 대부금 상환 명목으로 갈취했다는 혐의가 적시됐다.

피해자들이 착취를 견디지 못해 이탈하자 SNS에 개인정보와 신분증 사진을 올리며 현상수배를 걸고 협박했다는 점도 고소 내용에 명시됐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한 필리핀 노동자는 "가족을 부양하겠다는 희망을 품고 한국에 왔지만 빚에 얽매여 브로커의 착취를 당하고 있다"며 "계약상 근무시간과 달리 하루 12시간씩 일하고도 초과 수당은커녕 제 명의로 개설된 통장에서 매월 급여가 공제됐다"고 토로했다. 이어 "한국 내 이주 노동자들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가 취해지기를 호소한다"고 덧붙였다.

고기복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 대표는 "현행 계절근로자 제도는 '현대판 노예제'라 비판받던 산업연수생제도의 악습과 강제노동의 폐단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며 "법무부와 지자체는 이주노동자를 존엄한 인간이 아닌 소모품으로 취급하며 브로커의 중간착취와 강제노동을 수수방관하고 있다"고 규탄했다.

단체들은 중앙인신매매 등 피해자권익보호기관이 인정한 계절노동자 인신매매 피해자만 32명에 달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전남경찰청이 광역수사 차원에서 전면 수사에 나설 것을 요구하는 한편, 지자체 MOU 방식을 폐기하고 공공 중심의 인력 관리 체계로 제도를 재설계하라고 촉구했다.

sumin@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