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도의 섬, 세상의 별 ㉗·<完>]…맹골 죽도(竹島)
'은퇴자의 마을'…자연산 돌미역 '보물 1호'
죽도등대·해넘이…"한 번은 봐야 할" 최고의 경관
- 조영석 기자
(진도=뉴스1) 조영석 기자 = 죽도(竹島)는 말 그대로 대섬이다. 면적 0.28㎢, 해안선 길이 3㎞의 아담한 섬으로 맹골도 서쪽 300m쯤에 떨어져 있다. '맹골 죽도'가 공식 이름이다. 공식 이름으로 건너편 서거차도의 부속 섬인 상·하죽도와 구별된다.
우리나라 서남쪽 모서리 끝에 있는 섬으로 '맹골수도'와 '매물수도'가 섬이 속한 맹골군도 앞뒤로 지난다. 서해와 남해의 물살이 만나 소용돌이치고, 봄여름에는 안개 낀 날이 일상이 되다 보니 여객선 결항률이 높고 사고가 잦은 해역이다.
2002년부터 10년간 맹골수도 인근 해상에서 발생한 해난 사고 58건 중 선박 충돌 사고가 38건이나 된다는 통계도 있다.
마을 뒤 키 큰 신우대밭이 있다. '대섬'의 알리바이다. 서거차도초등학교 죽도분교가 1963년 문을 열었으나 1984년 문을 닫았다.
죽도도 맹골도나 곽도처럼 자연산 돌미역이 섬의 보물 1호에 해당한다. 평소 3~4명이 살던 섬은 7월 중순부터 8월 하순까지의 미역 철이 되면 30여 명이 사는 섬으로 바뀐다. 맹골도와 곽도가 그러하듯, 미역 한 철을 위해 도시에 살던 사람들이 밀물처럼 들어오고, 미역 철이 끝나면 썰물처럼 빠져나간다.
마을을 이루고 있는 열 댓채의 집들이 하나같이 여느 펜션 마을처럼 깔끔하다. 고향을 떠나 도시에 살던 사람들이 퇴직 후 돌아와 새로 집을 지으면서 바뀐 풍경이다. 자칭타칭 '은퇴자의 마을'로 불리는 이유다.
그렇다고 귀향으로 죽도 주민이 절로 되는 것은 아니다. 집 짓고 주소를 옮긴 뒤 3년이 경과돼야 회의를 거쳐 주민 자격을 얻는다. 주민 자격은 기존의 주민들과 동일한 '갯닦이' 의무와 미역 채취 권한을 갖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섬은 7월 중순부터 8월 하순까지의 미역 철이 되면 30여 명이 사는 섬으로 바뀐다. 맹골도와 곽도가 그러하듯, 미역 한 철을 위해 도시에 살던 사람들이 밀물처럼 들어오고, 미역 철이 끝나면 썰물처럼 빠져나간다.
마을의 집들은 모두 맹골군도의 주섬인 맹골도를 바라기하고, 왼쪽의 명도를 지나 몽덕도가 맹골도 동쪽 끝에서 아스라하다. 바위섬인 몽덕도는 안개 속에서 홀로 숨바꼭질하며 이상향의 섬 '이어도'처럼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그리움으로 하루를 보낸다.
죽도에서는 동쪽 병풍도 암초 위로 떠오르는 일출도 넋을 잃게 하지만 간서섬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석양에는 비할 바가 못 된다. '지상 최고'로 손색없는 죽도의 일몰은 금홍색 눈부심으로 피어나 땅과 하늘을 온통 붉게 물들인 뒤, 하나둘 이른 밤 별이 나타날 때쯤 검붉은 얼굴로 자진한다.
'살아 갈' 하루를 위해 '살아 낸' 하루를 붉게 태우는 죽도의 일몰은 그 자체로 고단한 삶에 대한 위로가 된다. 일생에 한 번은 경험해야 할 가치로 삼을 만하다.
마을 뒷산 언덕 기슭, '맹골죽도로' 끝에 죽도등대가 있다. 등대는 야트막한 언덕의 정상에 세워진 무종(霧鐘)과 함께 죽도의 자랑거리이다.
영국 근대 건축 양식의 하얀 첨탑이 일품인 죽도등대는 푸른 바다빛을 받아 더욱 선명히 빛나고, 3m 남짓 높이의 종탑은 고대 신전의 한 부분을 옮겨 놓은 듯 고풍스럽다. 무종과 무종을 매단 종탑은 남쪽 바다 끝 천하제일의 전망대를 겸하는 죽도등대의 화룡점정이 된다.
하지만 관리되지 않는 무종은 떨어져 보이지 않고, 종탑은 폐허속의 잔재처럼 방치되고 있다.
'지상 최고'로 손색없는 죽도의 일몰은 금홍색 눈부심으로 피어나 땅과 하늘을 온통 붉게 물들인 뒤, 하나 둘 이른 밤 별이 나타날 때쯤 검붉은 얼굴로 자진한다. '살아 갈' 하루를 위해 '살아 낸' 하루를 붉게 태우는 죽도의 일몰은 그 자체로 고단한 삶에 대한 위로가 된다.
언덕의 정상에 서면 신안군의 우이도와 비금·도초·소흑산도 등은 물론 조도군도의 떼지은 섬들이 파노라마처럼 좌우로 펼쳐지고, 맑은 날에는 제주도 한라산도 성큼 다가와 반가운 내색을 한다.
언덕 남쪽 해안으로 뻗어 내려가는 능선은 마치 거북이 한 마리가 바다를 향해 나아가는 모습으로 죽도의 또 다른 풍치를 느끼게 한다. 주민들이 '거북바위'라고 부르는 능선은 보는 방향에 따라 제주 서귀포의 용머리해안을 닮았다.
마을 앞 해안에 차도선이 댈 수 있는 작은 선착장이 있으나 궁색하기 그지없다. '바람 없는 날' 차도선만 겨우 댈 수 있을 정도의 짧은 접안 시설이 전부이다. 테트라포드로 쌓아 올린 방파제가 선착장에 붙어 있으나 길이가 겨우 10m 남짓, 맹골도의 거센 갯거리(파도)에는 역부족이다.
'바람 잘 날 없는' 맹골죽도다. 주민들은 바람이 조금이라도 불면 건너편 맹골도나 서거차항으로 배를 옮기고, 바람이 거센 날은 30km가량 떨어진 진도항으로 두 시간을 달려 피항해야 한다. 미역채취나 낚시 등 생업의 핵심 수단인 배를 둘만한 물양장이나 계류장 시설이 주민들의 숙원이다.
/죽도등대·무종/
1907년 첫 점등…'등대문화유산 제20호'
죽도등대는 일제강점기인 1907년 첫 점등 했다. 인천의 팔미도등대보다 4년 늦게 세워졌지만, 목포 해역에는 맨 처음 생긴 유인 등대다. 2009년 진도 해상교통관제센터(VTS)가 건립되면서 무인등대로 전환됐다.
21해리(38.89㎞)의 '광달거리'로 국제항로 '매물수도'와 국내항로 '맹골수도'의 험한 바다를 지킨다. 태평양전쟁 당시 파괴됐으나 해방 이후 복구됐다. 해양수산부 지정 등대문화유산 제20호이다.
죽도등대 무종은 안개가 발생하면 타종 소리로 등대의 위치를 알려주는 역할을 했다. 1950년대 높이 78㎝, 지름 38㎝의 황동으로 제작·설치돼 국내 최대 규모로 꼽힌다.
죽도등대가 무인화되면서 음달거리가 2㎞에 달했던 무종도 소리를 잃었다. 2014년 경북 포항의 국립등대박물관 소장유물 4681호로 지정돼 보관돼 오다 2019년 돌아와 재설치 됐다. 무종은 현재 종탑에서 분리돼 별도 보관, 볼 수 없다. 해양수산부가 오는 9월까지 복원할 계획이다.
kanjoys@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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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보배섬 진도'에는 헤아리기 힘들 만큼 '보배'가 많다. 수많은 유·무형문화재와 풍부한 물산은 말할 나위도 없고 삼별초와 이순신 장군의 불꽃 같은 역사가 켜켜이 쌓여 있다. 하지만 진도를 진도답게 하는 으뜸은 다른 데 있다. 푸른 바다에 별처럼 빛나는 수많은 섬 들이다. <뉴스1>이 진도군의 별 같은 섬들을 찾아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시리즈를 게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