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예보만 뜨면 잠 설쳐요"…수해 1년, 신안동은 아직 그날에 멈췄다
차수판·배수관 공사에도 불안 여전…"또 잠길까 새 가구 못 들여"
- 박지현 기자
(광주=뉴스1) 박지현 기자
"작년에 물이 방까지 들어와 장롱이고 뭐고 다 버렸어요. 또 잠길까 봐 제대로 된 살림도 못 들여놨어요."
이슬비가 내린 16일 오후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북구 신안동 신안교 일대. 1년 전 기록적인 집중호우로 물에 잠겼던 골목은 겉보기에는 평온했다.
하지만 골목 안으로 들어서자 수해의 흔적은 쉽게 눈에 들어왔다. 주택과 상가 출입문마다 차수판이 세워져 있었고, 도로 곳곳에서는 배수관 공사가 한창이었다. 흐린 하늘을 올려다보던 주민들은 "비 예보만 나오면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다"고 말했다.
신안동에서 50년 가까이 살아온 이 모 씨(87·여)의 집도 아직 수해 이전의 모습을 되찾지 못했다. 지난해 흙탕물이 방 안까지 밀려들면서 장롱과 가전제품 등 가재도구 대부분을 버려야 했다.
새 살림을 마련하는 것도 망설여졌다. 큰비가 다시 내리면 또 버려야 할지 모른다는 걱정 때문이다.
이 씨는 "비가 오면 또 물에 잠길까 봐 제대로 된 살림을 사지 못하고 임시로 생활하고 있다"며 "우리 같은 사람은 행정에서 해주는 대로 지켜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주민들이 기억하는 지난해 침수는 순식간에 닥친 재난이었다.
당시 신안동에서는 주택과 상가가 잇따라 침수됐고 주민 1명이 급류에 휩쓸려 숨졌다. 물이 빠르게 불어나면서 일부 주민은 용봉초등학교로 긴급 대피했다. 거동이 불편한 고령 주민들은 수해피해대책위원회와 이웃의 도움을 받아 가까스로 집을 빠져나왔다.
조기성 신안동 수해피해대책위원장은 "물이 허리 높이까지 차오르면 젊은 사람도 몸을 제대로 가누기 어렵다"며 "당시 골목을 돌아다니면서 어르신들을 직접 부축해 대피시켰다"고 말했다.
1년이 흘렀지만 주민들의 불안은 사라지지 않았다. 침수 원인을 놓고 주민들의 진단은 조금씩 달랐지만, 현재 추진 중인 대책만으로는 안심하기 어렵다는 데는 의견이 같았다.
주민 장영삼 씨(77)는 출입문 앞에 설치한 차수판만으로는 큰비를 막기 어렵다고 했다.
장 씨는 "차수판을 백 번 설치해도 큰비가 오면 결국 물은 넘어 들어온다"며 "하천 폭을 넓히고 물길 자체를 확보하는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 위원장은 용봉천과 서방천이 만나는 상류 합류부를 침수의 핵심 원인으로 지목했다. 집중호우가 내리면 두 하천의 물이 한꺼번에 몰리면서 역류하고, 감당하지 못한 물이 신안동 주택가로 쏟아진다는 것이다.
그는 "용봉천과 서방천이 만나는 지점에서 물이 한꺼번에 몰리는 것이 문제"라며 "상류의 배수체계와 기존 배수관로를 함께 손보지 않고 일부 구간만 정비해서는 침수를 막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현재 신안동 일대에서는 침수 피해를 줄이기 위한 배수관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도로를 파내 새 관로를 설치하는 작업이 이어졌고, 일부 구간에서는 공사 장비가 골목을 가득 메웠다.
주민들은 공사가 장마 전에 마무리되기를 기대했지만, 펌프시설 등이 아직 완전히 가동되지 않아 실제 집중호우 때 어느 정도 효과를 낼지는 알 수 없다고 했다.
한 주민은 "장마가 오기 전에 공사가 다 끝날 줄 알았는데 지금은 관만 묻어놓은 것처럼 보인다"며 "비가 많이 왔을 때 물을 제대로 빼낼 수 있을지 확인되지 않아 불안하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가 물 한 방울도 들어오지 않게 해달라는 것은 아니다"며 "물이 들어오더라도 집 안에 오래 고이지 않고 빨리 빠질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라고 했다.
주민들은 신안철교 재가설에도 기대를 걸고 있다. 신안철교는 지난해 집중호우 당시 원활한 물 흐름을 방해한 요인 가운데 하나로 지목됐다. 교량 구조물이 물길을 좁히면서 상류에서 내려온 물이 제대로 빠지지 못했다는 것이다.
현재 신안철교 재가설을 위한 논의가 진행 중이지만, 관련 용역과 관계기관 협의 등을 거쳐야 해 단기간에 사업을 끝내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주민들이 장기 사업과 별도로 당장 다가온 장마에 대비할 수 있는 대책을 요구하는 이유다.
문종준 신안동 수해대책위원회 위원은 "신안철교도 침수 원인 가운데 하나지만 다리를 다시 놓는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며 "상류 배수체계와 배수관로를 함께 정비해야 실질적으로 피해를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북구도 반복되는 침수 피해에 대응하기 위한 움직임에 나섰다.
북구는 지난 2일 '수해취약지역 예방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고 첫 회의를 열었다. 회의에는 북구와 광주시, 관계기관, 주민 등 30여 명이 참석해 위원장을 선출하고 기관별 침수 예방 대책과 대응 방안을 공유했다.
TF는 이달 말 2차 회의를 열어 현재 진행 중인 공사 상황과 추가 침수 예방 대책을 논의할 예정이다.
지난 9일에는 주민과 경찰, 소방 등이 참여한 도심 침수 대응 가상훈련도 진행됐다. 신안교회 교육관 일대에서 열린 훈련에서는 집중호우로 하천이 범람하는 상황을 가정해 주민 대피와 교통 통제, 인명 구조 등 대응체계를 점검했다.
행정기관이 대책회의와 훈련을 이어가고 있지만 주민들은 실제 비가 내렸을 때 작동하는 대책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주민들은 "회의와 훈련도 필요하지만 결국 큰비가 왔을 때 사람과 집을 지킬 수 있어야 의미가 있다"며 "올해만큼은 지난해와 같은 피해가 반복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날 오후 빗줄기가 조금씩 굵어지자 골목을 오가던 주민들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배수구와 하천 쪽으로 향했다. 수해 발생 후 1년이 지났지만 새 살림도, 평온한 일상도 온전히 되찾지 못한 주민들에게 비는 여전히 두려움의 신호였다.
warm@news1.kr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