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잔 대신 커피"…전남대 앞 카페서 숨죽인 이색 응원전
평일 오전 남아공전 맞춘 이색 풍경…노트북 접고 스크린 주목
'달그락' 얼음 소리 속 긴장감…주문 받는 직원들도 조용히 응원
- 조수민 수습기자
(광주=뉴스1) 조수민 수습기자 = "늘 맥주잔만 부딪치다가 아침에 커피 들고 응원하니까 색다르네요. 시원한 커피 들고 응원하니까 더 재밌네요."
2026 북중미 월드컵 조별리그 A조 최종 3차전 대한민국과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경기가 열린 25일 오전 광주 북구 전남대학교 인근의 한 카페. 평소라면 잔잔한 음악 속에 노트북 자판을 두드리거나 전공 서적을 들추는 소리만 가득했을 공간이 이날만큼은 시민들의 응원 열기로 뜨겁게 달아올랐다.
이번 남아공전은 대한민국 대표팀의 32강 진출 여부가 걸린 운명의 단판 승부다. 지난 1차전 체코전 승리 이후 2차전 멕시코전에서 아쉬운 패배를 기록한 만큼, 조별리그 통과를 위해서는 반드시 승점을 따내야 하는 절박한 상황이 시민들을 스크린 앞으로 불러 모았다.
평일 오전 시간대임에도 경기 시작 20분 전부터 카페 내 좌석은 붉은색 옷을 입은 시민과 대학생들로 가득 채워졌다.
축구 응원전의 대명사인 맥주잔과 치킨 대신 이날 시민들의 테이블 위에는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디저트 접시가 놓였다. 평일 오전 시간대에 맞춰 맥주 대신 커피를 손에 든 채 축구를 즐기는 이색적인 응원 풍경이었다.
카페 벽면에 스크린을 설치해 주민들에게 응원전을 마련한 사장 편명균 씨는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다 같이 모여 길거리 응원을 했던 그 뜨거운 재미를 잊지 못한다"며 기획 계기를 밝혔다.
편 씨는 "마침 경기 시간이 아침이라 집에서 혼자 보기엔 아쉬운 마음이 컸는데, 카페라는 공간에서 이색적으로 다 함께 응원해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벽면에 스크린을 걸게 됐다"며 "실제로 소문을 듣고 찾아온 외국인 유학생 친구들부터 동네 주민들까지 다양한 분들이 모여 함께 발을 동동 구르는 모습을 보니 뿌듯하다"고 전했다.
오전 10시 정각 주심의 휘슬 소리와 함께 전반전이 시작되자 카페 안은 순간 적막이 감돌았다. 커피 머신이 원두를 가는 기계음과 우유 스팀을 뿜는 소리만이 경기장 현장 중계음과 섞여 들렸다.
스크린 앞 명당자리를 차지한 이들은 경기 시작 전 전력 분석 화면이 나오자 컵 속의 얼음을 달그락거리며 초조하게 화면을 응시했다. 시민들은 한 손에 포크를 쥔 채 시선을 화면에서 떼지 못했다. 우리 대표팀이 전방 압박을 통해 남아공의 골문을 위협할 때마다 카페에서는 낮게 읊조리는 "오!" 하는 탄성이 터졌고, 음료를 빨아들이는 손놀림도 빨라졌다.
과장된 함성 대신 손님들이 동시에 들이쉬는 숨소리와 아쉬운 탄식만이 매장 안을 울리는 가운데, 술집이나 번화가와 차별화된 카페만의 '쾌적함'과 '침착함'에 높은 만족감을 드러내는 주민들도 많았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카페를 찾은 주민 김성임 씨와 김주영 씨(40대)는 "평소 축구를 좋아하는데,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난 아침 시간에 이렇게 커피 한 잔 마시며 여유롭게 경기를 볼 수 있어서 정말 좋다"고 입을 모았다.
이들은 "보통 축구 중계라고 하면 청년들이 술집에 모여 시끄럽게 보는 경우가 많은데, 여기는 너무 과하게 소란스럽지 않고 차분하면서도 든든한 응원 분위기가 나 차별화된다"며 "원래도 이 집 티 종류가 맛있어서 자주 오는 단골인데, 스크린까지 걸어두니 안 올 이유가 없다"고 웃어 보였다. 이어 "특히 손흥민 선수가 공을 잡을 때마다 긴장한다. 아침의 여유와 월드컵의 박진감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최고의 명당"이라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가족 단위의 손님에게도 카페는 훌륭한 응원 공간이 됐다. 이제 막 돌이 지난 어린 아이의 손을 잡고 카페를 찾은 어머니 김 모 씨는 "경기 시간이 마침 아이와 함께 외출하기 좋은 시간대라 고민 없이 나왔다"며 "술집이나 시끄러운 광장은 아기를 데리고 가기 엄두가 안 나는데, 쾌적한 카페에서 아이에게도 대한민국이 하나 되어 응원하는 뜨거운 열기와 분위기를 슬쩍 보여줄 수 있어 뜻깊다"고 말했다.
경기가 중반으로 향할수록 카페 안의 공기는 점차 무거워졌다. 음료와 음식 제조를 마친 카페 사장님과 직원들도 앞치마에 손을 닦으며 주문대 틈새로 스크린을 훔쳐봤다.
음료를 준비하던 카페 아르바이트생이자 취업준비생인 박은빈 씨도 손님들의 에너지를 받아 미소를 지었다.
박 씨는 "아무래도 월드컵 같은 큰 국제 경기는 혼자 볼 때보다 여럿이 모여서 소리치고 응원해야 나중에도 기억에 깊게 남는 것 같다"며 "취업 준비로 쌓인 스트레스를 이곳에서 손님들과 함께 응원하며 날려 보내고 있다. 경기가 있는 날이면 아침 일찍부터 카페 안이 활기로 가득 차서 일하면서도 큰 에너지를 얻는다"고 현장의 분위기를 전했다.
이곳 카페는 국경을 넘어온 외국인 유학생들에게도 특별한 화합의 공간이 됐다. 중국에서 온 대학생 유학생 위신루 씨는 "솔직히 이번 월드컵에 중국 국가대표팀이 출전하지 못해 아쉬운 마음이 컸다"면서도 "하지만 지금은 한국에 유학을 와 있는 만큼, 한국을 진심으로 응원하고 있다"고 전했다.
위 씨는 "집에서 따로 보는 것보다 이렇게 동네 카페에 모여 대형 스크린으로 다 함께 소리 지르며 응원하니 훨씬 박진감 넘치고 재밌다"며 "오히려 카페에서 경기를 보게 된 게 '신의 한 수'인 것 같다"며 눈을 반짝였다.
이날 광주 지역에서는 이곳 카페뿐만 아니라 광주 일대의 주요 치킨집과 학교 등 도심 곳곳에서도 시민들이 아침 일찍부터 모여 대표팀을 향한 열띤 응원전을 펼쳤다.
sumi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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