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현 광주지법 판사 "법원, 선관위와 '헤어질 결심'해야"

"선거관리는 선관위가, 법원은 판단 역할로 돌아가야"
"법관 도장이 절차의 마침표로 소비"

차기현 광주지방법원 판사.(재배포 및 DB 금지)

(광주=뉴스1) 서충섭 기자 = 광주지법 현직 판사가 전국 시·도 선거관리위원장을 법관이 맡아온 관행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며 법원과 선관위가 "헤어질 결심"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차기현 광주지방법원 형사6단독 판사는 20일 법조매체에 기고한 '선관위와 헤어질 결심'이란 제목의 글에서 "선거관리는 선관위가 스스로 책임지고, 법원은 판단하는 본래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며 법관의 선관위원장 겸직 관행 중단을 촉구했다.

현재 전국 17개 시·도 선거관리위원장은 각 지역 지방법원장이나 수석부장판사가 맡는 방식으로 운영돼 왔다.

차 판사는 "법관이 선관위원장을 맡는 관행을 그만두자는 말은 법원 안에서는 쉽지 않다"며 "중앙과 시·도, 시·구·군 선관위원장 자리까지 약 270개, 전체 판사의 8%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이어 "어쩌면 나에게도 올 수 있는 자리를 우리 스스로 내려놓자는 말"이라고 했다.

차 판사는 법관이 선관위원장을 맡는 구조가 실질적 통제보다는 형식적 결재에 그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 부장판사의 경험을 소개하며 "지역 선관위 직원이 선관위원장인 그에게 결재를 받으러 왔고, 몇 가지를 물었더니 '디테일한 것까지 관심을 가져주시니 참 감사하다. 전임 위원장님들은 그냥 도장만 찍으셨는데'라는 답변이 돌아왔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선관위 직원의 무례라기보다 구조적 무관심일 것"이라며 "법관은 법률 전문가이지 선거관리 행정 전문가가 아니다"고 했다.

차 판사는 후보자 등록부터 선거운동 단속까지 선거 사무의 세부 내용을 비상근 위원장이 모두 파악하기 어렵다고 봤다.

그는 "실무는 선관위가 모두 갖고 법관인 위원장의 이름은 단지 결재 서류 첫 장을 장식하는 용도"라며 "이 구조로는 결재는 통제가 아니라 의례"라고 비판했다.

이어 "법관의 도장이 실질 심사 결과가 아니라 절차의 마침표로 소비된다"며 "권한은 없는데 사고가 터졌을 때만 법관이 책임을 지는 구조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다"고 밝혔다.

법관 선관위원장 제도가 선거관리의 중립성에 기여해온 측면은 인정하면서도, 그 신뢰를 계속 빌려 쓸 수는 없다고도 했다.

차 판사는 "법관이 그간 선관위원장을 맡아온 이유는 정치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는 중립성이 선거관리 신뢰를 보태왔기 때문"이라면서도 "그 신뢰를 무한히 빌려 쓸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선거 관련 사건이 다시 법원으로 오는 구조를 문제 삼았다.

차 판사는 "선거 관련 분쟁이 법원에 올 때마다 법원과 선관위의 관계가 의심받는다면 이는 신뢰를 소모하는 일"이라며 "선관위원장이 법관인데 선거법 사건을 다시 법관이 판단하는 모양새는 아무리 설명해도 개운하지 않다"고 했다.

그러면서 "선거관리에서 도망치자는 뜻이 아니다"며 "선거관리는 선관위 스스로 책임지고 법원은 판단하는 본래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제는 서로를 위해 헤어질 결심을 할 때"라고 글을 맺었다.

한편 지난 19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 진상규명위원회는 중앙선관위에 노태악 전 선관위원장 등에 대한 수사 의뢰를 권고했다.

zorba85@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