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고된 재난 장마] 426㎜ 물폭탄의 교훈…달라진 '핀셋 대책' 시험대
작년 피해 컸던 전남 656곳·제주 89곳 인명피해 우려지 선정
현장 대피 명령권·1대1 매칭 대피 지원…"반복 훈련·교육이 답"
- 최성국 기자
(전남·제주=뉴스1) 최성국 기자 = 장마가 상대적으로 먼저 시작되는 전남과 제주에 지난해는 그야말로 예측할 수 없는 기후 재난의 연속이었다.
7월과 8월 2차례의 괴물 폭우에 휩쓸린 전남은 수천㏊의 농경지가 물에 잠겼고, 제주는 황당하게 5월과 9월에 집중적으로 쏟아진 비에 침수 피해를 입었다.
극한호우를 온몸으로 경험한 전남과 제주는 인명피해 우려지역 선정, 재난 약자를 위한 1대1 전담 대피 등 '더 빠른 판단'과 '더 빠른 대피'를 해결책으로 꺼내 들었다. 달라진 지자체의 기후 재난책의 실효성은 올해 여름 시험대에 오르게 됐다.
지난해 7월 17일 전남에는 426.4㎜의 폭우가 쏟아졌다. '물폭탄'이었다. 호우특보가 내려진 지 12시간 만에 7월 한 달 강수량을 넘는 비가 쏟아져 지방하천 118곳·소하천 314곳을 포함해 432개소의 하천 제방이 쓸려갔다. 집계된 제방 피해액만 355억 원을 넘겼다.
저수지 16개소는 물론 양수장과 배수장 등 134건의 농업 기반 피해를 남겼다. 주택 486개 동이 침수되고 가축 52만 4000마리가 폐사했다. 특히 농업이 집중돼 있는 남부권은 벼 등 농작물 7764㏊가 침수되는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괴물 폭우는 보름 만에 남부권을 재차 강타했다.
하루 동안 최대 289.6㎜의 비를 쏟아낸 이상 강우는 지방하천 21곳·소하천 99곳을 추가로 파괴했으며, 농작물 1003㏊가 또 물에 잠겼다.
지난해 호우 피해는 아직도 복구 중이다. 올해 5월 말 기준 호우 피해 복구율은 85%로, 이달 말까지 97%까지 복구될 것으로 전망된다. 나머지 3%는 개선 복구 공사가 추진되면서 1~2년이 추가 소요된다.
제주지역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장마 기간은 6월 12일부터 26일까지 단 15일로 역대 두 번째로 짧았고, 이 기간 강수량(117.8㎜)과 강수일수(8.5일)도 역대 네 번째로 적었다.
그러나 비는 5월과 9월에 집중적으로 쏟아졌다. 두 달간 내린 비(5월 237.9㎜·9월 360.1㎜)가 지난 한 해 강수량의 44%를 차지할 정도였다. 특히 9월에는 이틀에 한 번꼴로 비가 내린 데다, 비가 시간당 70~80㎜ 수준으로 짧은 시간 좁은 지역에 매우 강하게 쏟아지면서 잇단 침수 피해를 입혔다.
최근 우리나라는 기후 변화의 영향으로 시간당 100㎜ 이상의 극한호우가 빈번해졌다. 기상청이 정확하게 강수량을 예측하더라도 모든 지역에 대한 완벽한 사전 대비는 어렵다는 분석이 나온다.
기후 위기를 실감한 지자체의 대응 전략은 변화를 시작했다. 피해 발생 뒤 복구에 초점이 맞춰졌던 과거와 달리 '인명피해 제로화'를 위해 도입된 시스템들이 올해 시험대에 오른다.
핵심은 '인명피해 우려지역 선정'과 '취약계층을 위한 1대1 대피 지원 체계'다.
전남의 경우 지하차도·반지하 주택·노후 저수지·배수 펌프장·하천 제방 등 5만 2000여 곳이 호우 취약 시설로 꼽힌다. 전남도는 위험성 평가를 거쳐 그중 656곳을 '인명피해 우려지역'으로 선정했다.
특히 집중호우와 만조가 겹쳐 침수 위험이 목포·여수·고흥 등 해안시설 21곳을 인명피해 우려지역에 포함했다. 산사태·상습침수를 당해 인명피해 우려지역에 포함된 지역 주민들은 이미 올해 '대피 훈련'을 받았다.
제주도 역시 침수 이력과 누적 강우량, 침수심 등을 분석해 인명피해 우려지역 89곳을 지정했다.
위험 단계별 주민 통제와 대피 기준도 수치화했다. 해당 지역은 많은 비가 내릴 것으로 예상되면 실시간 모니터링이 이뤄진다.
'위험 상황'을 인지하는 현장 대응 체계도 달라졌다. 전남도와 제주 모두 읍면동 현장 인력이 상황에 따라 '주민 대피 명령권' 등 선제 조치할 수 있는 대응 권한을 대폭 확대했다.
과거처럼 보고와 승인 절차를 기다리기보다 현장이 먼저 움직여 '골든타임'을 확보하는 구조로 바뀌고 있는 셈이다.
올해 가장 눈에 띄는 대비는 '주민대피지원단' 가동이다. 전남과 제주는 고령자와 거동불편자 등을 위한 주민대피지원단을 새로 구성하고 1대1 매칭까지 마친 상태다. 재난 발생 시 읍면별로 편성된 지원단이 자신이 맡은 시민의 대피를 돕는다.
풍랑주의보 발효 시 고립될 수 있는 섬 지역 환자들은 해경이 경비함을 활용한 '릴레이 수송'으로 안전 이송을 책임진다.
제주국제공항 공조체계의 빈틈도 메우고 있다. 기상 악화로 심야 체류객이 발생하거나 결항편 예약 인원이 3000명이 넘어 공항 비상대응 '주의' 단계가 발령되면 전세버스와 긴급운송택시봉사단을 즉각 투입해 체류객 이동을 신속히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이 밖에도 제주도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공모사업의 일환으로 인공지능(AI)과 디지털 트윈 기술을 활용해 집중호우 시 위험지역을 예측해 배수시설 점검과 현장 대응 등 필요한 조치를 신속하게 취할 수 있도록 돕는 플랫폼도 개발 중이다.
송창영 광주대학교 방재안전학과 교수는 "지자체의 정책이 극한 기후 변화에 시시각각 따라가야 한다"며 "과거에는 제방, 배수시설 같은 물리적 시설 확충을 중심에 뒀다면 이제는 주민을 얼마나 빨리 대피시키고, 현장에서 대피 판단을 얼마나 신속하게 하느냐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말했다.
송 교수는 "극한호우는 동등하면서도 동등하지 않다. 사회 안전 시스템이 어린이, 노약자, 장애인 등 안전 취약계층에 대해 더 고민해야 한다"며 "사전 안전점검은 물론 실제 상황 발생에 대비한 긴급 대피 훈련·교육이 병행하고, 지자체는 교육·훈련 전문성을 키워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동취재 = 최성국, 오미란, 이승현, 박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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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본격적인 장마를 앞두고 전국의 재난 취약지가 다시 시험대에 오릅니다. 기후 변화로 짧은 시간 강한 비가 쏟아지는 일이 잦아지면서 반지하와 지하차도, 제방, 산불 피해지, 농경지와 섬 지역의 위험도 커지고 있습니다. 이에 뉴스1은 권역별 장마 대비 실태와 남은 위험을 점검합니다. 예고된 재난이 반복된 피해로 이어지지 않도록, 현장의 준비가 충분한지 4차례에 걸쳐 짚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