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도의 섬, 세상의 별 ㉔]…서거차도(西巨次島)
거차군도의 중심 섬… "잊혀진 파시의 추억"
돔·우럭·장어·농어 등 고기잡이 주업…서·남해 어업 전진기지
- 조영석 기자
(진도=뉴스1) 조영석 기자 = 서거차도는 '거칠다'라는 이름이 유래할 만큼 '와일드(Wild)'한 먼 외해에서 동거차도와 쌍벽을 이루며 서로 위무하는 사이다.
거차군도의 중심 섬으로 면적(2.8㎢)은 동거차도(3.23㎢)보다 조금 작지만, 섬의 높이는 상마산의 정상(150m)이 동거차 동두산(138m)보다 약간 높다. 근사한 규모로 둘은 형제라기보다는 '짝꿍'이라는 표현이 잘 어울린다.
미역양식과 멸치잡이로 살아가는 동거차도에 비해 서거차도는 주낙을 이용한 감성돔·우럭·장어·농어·쏨뱅이 등의 고기잡이가 주업이다. 요즘에는 기후변화로 제주 해역에서 잡히던 뱅어돔이나 자리돔도 올라온다.
0.7km쯤 떨어진 두 섬 사이에 윗대섬·아랫대섬으로 불리는 상·하죽도가 다릿돌처럼 섬·섬 놓여 있다. 10여 명 남짓의 주민이 살고 있는 상·하죽도는 길이 10m 가량의 다리로 연결돼 유인도의 명맥을 겨우 잇고 있다.
서거차도는 가장 큰 마을인 막금리와 윗마을, 모래미 등 3개의 자연 부락과 상·하죽도, 무인도인 항도(목섬) 등으로 이뤄졌다.
1971년 국가어항으로 지정된 서거차항이 막금마을로 깊숙이 들어와 잔파도와 놀고, 물량장 한가운데에 '서거차마을' 표지석이 석탑처럼 섰다.
'서거차항은 목포 서남쪽 77km에 위치하여 서·남해 종합어업 전진기지로서 3종 어항으로 승격했다. 정부는 IBRD 차관기금으로 1979년 12월에 착공, 1백18억 원을 들여 5년 만인 1984년 11월에 준공했다. 동 방파제 230m, 서 방파제 175m, 물양장 762㎡ 등 어항의 기본시설을 완공, 530척의 어선을 수용할 수 있게 됐다.
서거차도는 '거칠다'라는 이름이 유래할 만큼 '와일드(Wild)'한 먼 외해에서 동거차도와 쌍벽을 이루며 서로 위무하는 사이다. 0.7km쯤 떨어진 두 섬 사이에 상·하죽도가 다릿돌처럼 섬·섬 놓여 있다. 형제라기보다는 '짝꿍'이라는 표현이 잘 어울린다.
이 공사로 동지나 해와 '스코트라'에서 조업하는 선박이 태풍 등 해일이 발생했을 경우 목포나 흑산도로 대피해야 하는 불편을 완전히 해소하게 됐다.' 물양장 너머 화단에 세워진 '서거차항 준공기념비'의 내용 일부이다.
서거차항은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 일본어선을 중심으로 파시가 열리고 접객업소가 몰려들 만큼 성황을 이뤘던 항구다. 전국 최고의 어획고를 기록하기도 했다.
해방과 함께 일본 선단이 철수하면서 쇠락했으나 1960년대 말부터 1980년대 초까지 삼치 파시가 열려 옛 명성을 되찾기도 했다. 파시가 열릴 때면 몰려든 참치잡이 어선 300여 척이 서거차항을 까맣게 뒤덮었다.
인근 해역에서 참치 떼가 자취를 감추면서 항구를 뒤덮던 선단도 함께 사라지고, 파티가 끝나듯 파시도 막을 내렸다.
1970년대만 해도 150세대 900여 명의 주민이 살았으나 2026년 3월 1일 현재 서거차도는 65가구, 평균 연령 65세의 110명이 적(籍)을 두고 있다. 140여 명에 달했던 초등학생은 현재 '나 홀로' 전교생이다.
서거차항은 1930년대, 일본어선을 중심으로 파시가 열리고 접객업소가 몰려들 만큼 성황을 이뤘던 항구다. 파시가 열릴 때면 몰려든 참치잡이 어선 300여 척이 서거차항을 까맣게 뒤덮었다. 참치 떼가 자취를 감추면서 항구를 뒤덮던 선단도 사라지고, 파티가 끝나듯 파시도 막을 내렸다.
서거차항 선착장은 막금마을과 맞닿고, 마을 뒤 상마산은 넉넉한 능선의 양 날개로 막금마을과 윗마을을 품는다.
집들이 드문드문 이어져 구분되지 않는 막금마을과 윗마을은 서거차 막금교회를 기준으로 나뉘고, 산기슭으로 오르는 윗마을은 한집 건너마다 빈집의 돌담이 헤진 깃발처럼 스산하다.
1944년 4월 1일 거차국민학교로 문을 열었던 조도초등학교 서거차분교가 막금교회 옆 산기슭에 기대어 있다. 전교생 1명과 선생님 1명의 학교다.
운동장 좌우 양쪽에 '반공 소년 이승복 동상'과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 조각상이 1960~70년대 '국민학교' 시절의 추억으로 남고, 은빛의 미끄럼틀은 아직 햇살 아래서 눈부시다.
또 다른 마을인 모래미는 막금마을 오른편으로 이어지는 해안 길 따라 1km가량 떨어져 있다. 가는 길에 국가해양 관측시설인 '조위 관측소'를 지나고, 세월호 참사 현장인 병풍도와 맹골군도도 멀리 모습을 드러낸다.
모래미는 모래가 많다는 데서 유래한다. 마을 앞에 있는 길이 100m 가량의 손수건만 한 백사장이 유래의 근거가 된다.
과거 해군기지가 있던 마을이다. 일본 어선단의 잦은 침범과 대남간첩선의 출몰에 따라 1969년 고속정과 해군 60여 명이 배치돼 전탐과 해역방위 업무를 담당했다. 해군기지는 상마산 정상에 들어선 레이더기지에 역할을 넘기고 1992년 철수했다.
바람 찬 잔등에 눈향나무와 잔솔이 올망졸망 엎드리고, 해안 절벽 너머로 맹골군도의 섬들이 선명하게 다가선다. 목섬의 갯바위는 대륙으로 뻗어나가는 한반도의 형상으로 웅장하고, 석양은 '지는 해가 뜨는 해보다 더 아름답다'는 알리바이로 바다를 붉게 물들인다.
병사들이 사용하던 막사 터가 마을 뒤 상마산 초입의 서거차교회 옆에 다랑논 같은 층층의 흔적으로 남았다.
모래미 마을을 지나 오른쪽 해안의 상마산 줄기 남쪽 잔등은 서거차도의 절경을 감상할 수 있는 '뷰포인트'가 된다.
바람 찬 잔등에 눈향나무와 잔솔이 올망졸망 엎드리고, 해안 절벽 너머로 맹골군도의 섬들이 선명하게 다가선다. 10여m 여울목 건너 목섬의 갯바위는 대륙으로 뻗어나가는 한반도의 형상으로 웅장하고, 석양은 '지는 해가 뜨는 해보다 더 아름답다'는 사실의 알리바이로 바다를 붉게 물들인다.
서거차도에 거차군도의 모든 공공기관과 시설이 집중돼 있다. 물량장의 마을 표지석 옆으로 목포해양경찰서 서거차출장소와 진도군 서거차 보건진료소, 서거차 어업인복지회관, 조도면 거차출장소, 내연 발전소 등이 들어섰다.
이들 공공시설에서는 일정 비율의 인력을 거차도 출신으로 채용, 여느 섬과 달리 젊은이들이 전체 인구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이유가 된다.
선착장이 있는 막금마을에 음료와 술을 구입할 수 있는 슈퍼마켓이 두 군데 있고, 민박집도 세 군데나 있어 묵어 갈 수 있다.
/거차도 가는 배편/
"결항 잦아…출발 전 운항여부·기항지 확인 필수"
진도항과 목포항에서 차도선인 한림페리호와 섬사랑 10호·13호가 각각 하루 한차례 오간다. 진도항의 한림페리호는 오전 9시50분 출항, 조도 창류항을 거쳐 관사·대마·관매도 등 여러 섬을 들른 뒤 동거차도와 종점인 서거차도로 간다. 다음 날 아침, 서거차항에서부터 전날의 항로를 거슬러 진도항으로 간다.
섬사랑 10호·13호는 출항지와 종착지인 목포항과 맹골도에서 상호 교차 출항한다. 국가보조항로로 이용객이 한 사람만 있어도 기항지가 된다. 목포항에서 서거차도 등 국내 최다 기항지(33개)를 거쳐 종착지인 맹골도까지 8시간 30분 이상 소요된다. 가는 길에 승·하선 승객 유무에 따라 섬을 건너뛰거나 경유하기 때문에 소요 시간은 일정치 않다. 출발 전 신분증 지참과 함께 시간표·운항 여부·기항지 등을 확인해야 한다.
kanjoys@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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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보배섬 진도'에는 헤아리기 힘들 만큼 '보배'가 많다. 수많은 유·무형문화재와 풍부한 물산은 말할 나위도 없고 삼별초와 이순신 장군의 불꽃 같은 역사가 켜켜이 쌓여 있다. 하지만 진도를 진도답게 하는 으뜸은 다른 데 있다. 푸른 바다에 별처럼 빛나는 수많은 섬 들이다. <뉴스1>이 진도군의 별 같은 섬들을 찾아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시리즈를 게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