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여전히 생지옥인데…5·18 진압 책임자들은 현충원에"
[누가 국립묘지에 묻히는가③] 계엄군에 총상 입은 김태수 씨
46년째 후유증…광주 진압 책임자들 국립대전현충원 안장
- 이수민 기자, 이승현 기자, 박지현 기자
(광주·대전=뉴스1) 이수민 이승현 박지현 기자
우린 여전히 생지옥인데 진압 책임자들은 현충원에 묻혀 있다니….
지난 8일 오후 광주 서구 농성동의 자택에서 만난 5·18민주화운동 피해자 김태수 씨(71)가 한참 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1980년 5월 계엄군 총격으로 오른쪽 허벅지에 총상을 입은 그는 46년째 후유증을 안고 살고 있다. 퀴퀴한 곰팡내가 밴 집에서 지적장애를 앓는 딸과 함께 지내며, 매일 수십 개의 약과 병원 치료로 하루를 버틴다.
그의 분노를 더 키우는 것은 그를 고통의 삶으로 밀어 넣은 5·18 광주 진압 책임자들이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아 국립현충원에 안장돼 있다는 사실이다.
스물다섯 살이던 1980년 5월, 김 씨는 광주에서 시민 부상자들을 병원으로 옮기던 시민이었다. 광주역 발포 당시에도 부상자들을 실어 날랐고, 옛 전남도청 앞 집단 발포 때도 수십 명의 시민을 병원으로 후송했다.
비극은 같은 날 저녁 광주교도소 앞에서 벌어졌다. 더 많은 부상자를 이송하기 위해 여객버스에 올라탔던 김 씨는 버스가 잠시 멈춘 순간 계엄군의 총격을 받았다. 버스기사는 현장에서 숨졌고, 김 씨도 오른쪽 허벅지에 총상을 입고 쓰러졌다.
이후 군에 끌려간 김 씨는 "교도소를 습격하려 한 간첩"이라는 의심을 받으며 폭행과 물고문을 당했다.
46년이 흐른 지금도 그는 총상 후유증으로 보훈병원을 오가고 있다. 김 씨는 "오늘도 병원 가서 주사 맞고 왔다. 너무 힘들고 아프다"며 "다리에 있는 파편을 아직도 제거하지 못한 채 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취재진으로부터 5·18 광주 진압 작전에 관여한 신군부 핵심 인사들이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돼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여러 차례 마른세수를 했다.
그는 "5·18이 국가폭력이라는 건 역사적으로 확인된 사실인데, 그런 책임자들이 국립현충원에 안장돼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며 "상상도 못 했는데 방금 그 사실을 알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취재 결과 국립대전현충원 장군묘역에는 5·18 당시 광주 진압 작전에 관여했던 인물들이 다수 안장돼 있다.
대표적인 인물은 당시 전투병과교육사령관이자 계엄분소장이었던 소준열이다. 그는 광주 진압 작전에 관여한 핵심 인물로 꼽힌다. 당시 광주에 투입된 3공수·7공수·11공수여단과 20사단 등은 계엄분소 지휘 체계 아래 작전을 수행했다. 소준열은 현재 국립대전현충원 장군1묘역 21호에 안장돼 있다.
당시 20사단장이었던 박준병도 국립대전현충원에 묻혀 있다.
20사단은 광주 외곽 봉쇄와 광주-목포 간 도로 차단 등에 투입됐고, 이 과정에서 민간인 차량을 향한 발포 등 희생이 발생했다는 조사와 증언이 이어졌다. 박준병은 전두환·노태우·정호용·이희성과 함께 이른바 '광주학살 5적'으로 불린다.
2016년 박준병이 사망하자 가족들은 묘비에 '지장·덕장으로 일생 국가에 헌신하시고 고향 발전을 위해 밤낮으로 수고하셨다'는 문구를 새겼다.
김 씨는 이 문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그는 "국가에 헌신했다는 내용이 말이 되느냐"며 "군홧발로 시민들을 짓밟았는데 국가를 위해 헌신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말했다.
이어 "용서할 사람은 용서하더라도 책임질 사람은 끝까지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했다.
김 씨는 당시 자신에게 총을 겨눴던 계엄군 일부는 용서했다고 말했다. 그는 "나에게 총을 겨눈 군인과 지금도 분기별로 통화를 하며 안부를 묻고 지낸다"며 "그들도 위에서 시켰으니까 했을 것 아니냐. 나는 그 사람들은 용서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명령과 지휘 책임이 있는 인물들에 대해서는 생각이 다르다.
하지만 소준열이나 박준병은 아니다. 그는 "도저히 위에서 지시한 자들은 용서할 수 없다"며 "사람을 두들겨 패서 한 사람의 삶을 송두리째 망가뜨려 놓고 제대로 된 벌을 받지도 않고 사과도 없이 죽어버렸다"고 분노했다.
현행 국립묘지법은 금고 2년 이상의 실형 선고를 받은 경우 등을 안장 제한 사유로 두고 있다. 그러나 신군부 인사 상당수는 사망이나 재판 중단, 무죄 판결 등으로 안장 제한 대상에서 제외됐다.
5·18 단체들은 현행법이 반헌법적 행위와 국가폭력 책임 문제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반헌법적 행위나 국가폭력 가담 이력이 확인된 경우에도 국립묘지 안장을 제한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충원은 단순한 묘지가 아니라 국가가 공식적으로 예우하는 공간이다. 5·18 단체들은 헌정질서 파괴와 국가폭력에 관여한 인물들이 국립묘지에 안장된 현실 자체가 역사 왜곡이라고 지적한다.
46년이 지났지만 김 씨의 시간은 여전히 1980년 5월에 머물러 있다.
그는 "병원 갈 때마다 너무 힘들다.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 싶을 때도 있다"며 "우리는 아직도 고통 속에 사는데 가해자는 현충원에서 국가 예우를 받고 있다. 국립묘지법을 개정해 반드시 역사를 바로 세워야 한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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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국립묘지는 국가를 위해 헌신하거나 희생한 이들을 기리는 공간이다. 그러나 국립 현충원 묘지에는 5·18 민주화운동 당시 유혈 진압에 관여한 계엄군 지휘관과 12·12 군사반란에 가담한 인사들 상당수가 안장돼 있다. 헌정질서를 무너뜨린 국가폭력의 가해자와 그로 인해 희생된 피해자가 같은 공간에 잠들어 있는 현실이다. 뉴스1 광주전남본부는 5·18 46주년을 맞이해 현충원에 안장된 인물들의 현황을 점검한다. 국가는 누구를 기리고, 우리는 무엇을 기억해야 하는지를 7편에 걸쳐 나눠 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