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처음 부쳐요"…고소한 기름 냄새와 함께 쪽방촌에 퍼진 온기
"혼자면 우울했을 명절"
- 이승현 기자
(광주=뉴스1) 이승현 기자 = "전 부치고 정 나누니 외로운 마음까지 달래주네요."
설 연휴를 하루 앞둔 13일 광주 동구 계림동에 위치한 쪽방촌 주민들을 위한 들랑날랑커뮤니티센터에 고소한 기름 냄새가 퍼졌다.
테이블 위엔 노란 달걀물을 시작으로 밀가루와 올리브유, 소고기까지 명절 음식인 '소고기 육전'을 만들기 위한 재료들이 한가득 준비됐고 20명의 주민은 앞치마를 둘러맨 채 분주하게 움직였다.
이들은 평소와 다른 차림새에 멋쩍은 듯 웃어 보이고는 밀가루와 달걀 준비, 전을 부칠 사람 등 역할 분담을 하고 음식 만들기에 집중했다.
요리에 익숙지 않은 주민은 봉사자 설명에 따라 얇게 썬 소고기에 밀가루와 달걀물을 입히고 지글지글 육전을 구워냈다. 일부는 '허전하다'며 종종 썬 쪽파를 올려 마무리한 뒤에야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누가 더 예쁘게 전을 부쳤는지 비교하거나 완성된 전의 간을 본다며 서로 먹여주고 "딱 좋다"고 웃는 모습도 이어졌다. 생전 처음 전을 부쳐봤다는 한 주민은 허리를 펴며 스트레칭을 했다.
14년간 쪽방촌에 거주했다는 이금식 씨(70)는 "명절에 전을 부치는 건 처음이라 자세도 불편하고 낯설지만, 사람들과 함께하니 재미가 붙는다"며 "혼자 있으면 머릿속이 우울한 생각으로 가득 차는데, 오늘은 웃음이 나고 마음이 따뜻해진다"고 말했다.
이 센터가 명절을 맞아 주민 친목을 위해 마련한 이 행사가 1시간 가까이 이어지는 동안 음식을 만들며 소소한 대화를 나누던 이들의 얼굴에는 미소가 번졌다.
김희태 씨(79)는 "사람이 많아 복작복작하고 기름 냄새도 나 간만에 명절 분위기 난다"며 "서로 얼굴을 맞대고 대화하고 고기 맛도 보니 외로운 마음이 달래진다. 전을 부쳐본 지가 까마득했는데 수십 년 만에 해보니 너무 좋다"고 말했다.
이어진 떡갈비 굽기 땐 주민들의 손놀림이 한결 능숙해졌다. 뒤집개와 손을 이용해 떡갈비를 탄 곳 하나 없이 노릇하게 구워냈다.
그새 요리에 흥미가 붙었다는 주민도 있었다. 조영기 씨(80)는 "혼자 있으니 요리할 일이 없었는데, 집에 있는 그릇들을 꺼내 정리해 봐야겠다"며 "첫 요리 기억이 좋아 서툴지만 배워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고 웃었다.
쪽방촌 주민들이 만든 각 70인분의 육전과 떡갈비는 이날 센터를 찾은 주민들과 점심시간에 나눠 먹었다.
센터는 설맞이 음식 떡국과 함께 이들의 명절 나기를 위해 김치와 젓갈, 장조림, 라면 등 식료품도 지원했다.
pepper@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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