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안 온 것 같다"…'제주항공 참사'로 멈춰 선 유가족의 시간

무안공항 추모 계단, 유가족 쉼터에 남은 참사 1년의 흔적

12·29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1주기를 앞둔 24일 전남 무안국제공항 분향소에 시민들이 희생자들을 바라보며 추모하고 있다. 2025.12.24/뉴스1 ⓒ News1 박지현 기자

(무안=뉴스1) 박지현 기자 = "잠은 좀 주무셨어요?"라는 질문에 한 유가족은 온몸이 다 배긴다고 답했다.

크리스마스이브인 24일 오전 전남 무안국제공항에서 만난 그는 어깨를 두드리며 화장실로 향했다.

지난해 12월 29일 179명이 숨진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 후 1년 가까운 시간이 지났지만 유족들의 몸과 마음은 여전히 쉼을 허락받지 못한 모습이었다.

유가족 쉼터 안팎에는 세제와 칫솔, 치약이 놓여 있었고 말려둔 수건과 운동화도 눈에 띄었다.

쉼터에서는 10여 가족이 머무르고 있는데 이들의 시간은 여전히 공항에 머물러 있는 듯했다.

공항은 대체로 한산한 모습이었다. 승객들의 발길이 끊긴 공항 내부를 가로지르는 것은 청소차와 보안요원뿐이었다.

추모의 계단에는 그리움이 묻은 손 글씨 편지들이 코팅된 채 주인 없이 놓여 있었다.

'아부지 사랑해. 친구들이랑 재밌게 이야기 중이야? 아부지 엄청 보고 싶은데 친구들이랑 이야기하느라 꿈에 늦게 나오는 거지? 예쁘게 웃는 모습으로 꿈에 나타나줘'라는 편지가 적혀있었다.

그 옆에는 '불러도 불러도 대답 없는 내 새끼. 너무 보고싶다', '사랑하는 언니야. 갑작스럽게 이별해야 해서 마음이 지옥이야'라는 내용도 있었다.

12·29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1주기를 앞둔 24일 전남 무안국제공항이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 News1 박지현 기자

1층 분향소는 드물게 추모객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청주에서 왔다는 70대 부부는 목포역에 왔다가 참사 1주기를 맞아 추모를 위해 공항을 찾았다고 했다. 아내는 "마음이 너무 아프다"며 눈시울을 붉혔고, 남편은 "유가족들은 지옥 같은 1년을 보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분향소 앞 방명록에는 '보고 싶다', '그곳에서는 아프지 말길', '다시는 이런 아픔이 없기를'이라는 짧은 문장들이 조용히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분향소 앞 모니터에서는 지난 1년간 유가족들이 거리에서 외쳐온 장면들이 사진으로 흘러나왔다.

사고 직후부터 이어진 집회와 기자회견, 손팻말을 든 얼굴들이 화면을 채웠다. 소리는 없었지만, 사진 속 표정만으로도 지난 1년의 세월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쉼터에서 만난 한 유가족은 "몸은 하루하루 망가져 가는데, 쉬면 죄책감이 든다"며 "여기는 아직도 크리스마스가 오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12·29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1주기를 앞둔 24일 전남 무안국제공항이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 News1 박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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