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광주서만 자꾸 무너질까? 불법·부실·안전 불감증 유독 심해서?

학동 철거 5층 건물·화정동 신축 아파트·도서관 붕괴 사고
"참사 되풀이 허망"…상주 감리·중처법에도 재해 예방 부족

광주 동구 학동 학4구역 재개발 현장에서 철거 공사 중이던 5층 건물이 도로 쪽으로 무너지며 지나가던 시내버스를 덮치고 있다. 이 사고로 시내버스에 탄 탑승객 9명이 숨지고 8명이 중상을 입었다. 2021.6.9/뉴스1 ⓒ News1

(광주=뉴스1) 최성국 이승현 기자

"우리 사회는 무엇보다 소중한 목숨을 잃고도 고친 게 하나도 없다. 무엇을 더 잃어야 외양간을 고칠까."

광주 학동 참사 1심 재판을 맡았던 박현수 광주지법 부장판사의 말이었다. 그의 말은 3년이 지난 지금도 바뀐 게 없었다.

지난 2021년 6월 9일. 광주 동구 학동4구역 재개발공사 현장에서 철거 중인 5층 건물이 무너지며 시내버스를 덮쳤다. 이 사고로 시내버스 승객 9명이 숨지고 8명이 다쳤다.

박현수 당시 재판장은 선고 전 "우리나라 속담에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말이 있다. 무엇을 더 잃어야 외양간을 고칠까하는 생각에 재판을 진행하면서 마음이 답답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사회는 사고를 우려해 산업안전보건법 등 이중삼중의 안전장치를 만들었지만 하나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돈만 벌면 된다는 이기심과 안전불감증으로 사고가 발생했다"며 "이 사고가 반면교사가 되길 원한다고 말하고 싶지만 거듭된 사고로 그런 말을 하기도 어렵다"고 한탄했다.

해당 재판이 한창이던 2022년 1월 11일. 광주 서구 화정동 아이파크 신축 현장에선 거듭 건물이 무너져 내렸다. 근로자 6명이 숨졌다.

불법적인 공법 변경과 안전관리 부실 등 전형적인 안전 불감증이 원인이었다.

광주 서구 화정동 붕괴 사고 현장. 2022.1.11/ⓒ News1

연속된 붕괴 참사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선 인명피해가 잇따랐다. 국토안전관리원에 따르면 2022년 광주 8건·전남 7건, 2023년 광주 5건·전남 12건, 2024년 광주 2건·전남 12건 등이 도돌이표처럼 반복됐다. 올해도 1월부터 9월까지 광주에서 8명, 전남에서 36명의 산업재해 사망자가 나왔다.

재판장을 한탄하게 했던 학동 참사 형사책임자들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올해 확정됐다. 그리고 이달 11일 광주대표도서관 건축현장에서 또다시 붕괴 사고가 발생해 하청업체 소속 근로자 4명이 세상을 떠났다.

심지어 광주대표도서관 현장은 올해 6월 근로자 사망사고가 벌어져 노동당국이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여부를 수사하던 중이었다.

반복되는 비극에 앞선 참사 유가족들은 허망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광주학동참사 유족 대표 황옥철 씨는 21일 뉴스1과의 통화에서 "참사가 빈번해도 너무 빈번하다. 산재에 가족을 잃은 피해자 유족분들의 심정을 생각하면 마음이 너무 아프다"고 한탄했다.

황 씨는 "지자체가 공사 허가를 내주는 과정에 문제는 없었는지, 처벌 강화 방안은 없는지 등 정부가 적극적으로 들여다보고 철저한 진상 조사를 통해 반복 산재를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화정아이파크 붕괴 참사 유가족 대표 안정호 씨도 "도시 전체가 이런 참사에 무뎌졌다. 광주대표도서관 붕괴 사고까지 다시 발생한 것은 건설현장 안전에 대한 안일함이 반복되고 있다는 증거"라며 "같은 도시에서 비슷한 사고가 되풀이되는 현실이 참담하다"고 말했다.

학동참사 이후 상주 감리 배치, 불법하도급 차단을 위한 원도급사 원스트라이크 아웃제, 사망사고 피해액의 최대 10배를 배상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제 적용 등 후속 대책이 이어졌지만 재해 방지를 위한 대책이 되지 못하고 있다.

2022년 1월 27일부터는 경영책임자가 안전 및 보건 확보의무를 다하지 않아 중대재해가 발생할 경우 처벌할 수 있는 중대재해처벌법도 시행됐으나 안전불감증이 끊이질 않고 있다.

11일 오후 1시 58분쯤 광주 서구 치평동(상무지구)의 광주대표도서관 공사 현장에서 레미콘 타설 중 붕괴 사고가 발생해 4명이 매몰됐다. 2025.12.11/뉴스1 ⓒ News1

이준상 민주노총 광주전남 건설지부장은 "안전만 강화하면 당장은 관리·감독이 이뤄지는 듯하지만 결국 기한 내 공사를 끝내야 하는 노동자들은 구조적 문제로 무리한 공사를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건설을 계획하는 시공사부터 원청사,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까지 '안전'에 대한 목표, 지향점 등 근본적인 공동 목표가 있어야 사고를 줄일 수 있다"며 "어떻게 하면 싸게 할 것인가를 논의하는 게 아니라 '튼튼하게 지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생각하는 구조가 필요하다. 형식만 바꾸려하면 안전 문제는 절대 해결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건설산업연맹 전국건설노동조합 광주전남건설지부 관계자는 "광주시가 발주한 건설사업 전반에 대해 안전관리 시스템을 전면 재검토하고 안전대책위원회를 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단체는 "안전 경고가 이미 있었는데도 또다시 4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는 것은 명백한 관리 실패"라며 "광주시는 이번 참사의 구조적 원인이 된 최저가 낙찰제와 다단계 하청 구조 등에 대해서도 근본적인 개선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stare@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