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생각이 나면서 '또다시 피를 봐야 하나' 싶었다"
[12·3계엄 1년] 5·18 유족·당사자 "사지가 떨렸다…악몽 시달려"
기초의원은 '삭발' 투쟁, 활동가는 '커피'로 응원
- 이수민 기자
(광주=뉴스1) 이수민 기자 = 12·3 비상계엄 선포 1년을 맞아 광주 시민사회 인사들이 당시 충격과 이후의 심경을 털어놨다.
이들은 1980년 5·18의 기억이 생생한 만큼, 지난해 계엄 사태가 촉발한 심리적 고통과 분노가 더 컸다고 입을 모았다. 또 윤석열 전 대통령과 관련 세력에 대한 책임 규명과 엄중한 처벌을 요구했다.
2일 만난 김형미 오월어머니집 관장은 계엄 선포 소식을 들은 순간을 떠올리며 "1980년 생각이 나면서 '또다시 피를 봐야 하나'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계엄 이후 매일 광장으로 향했던 이유에 대해 "시민들의 광장 결집만이 내란을 극복하고 이길 수 있다는 마음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80년 당시 대학 1학년이던 오빠가 공수부대원 8명에게 집단 구타를 당해 죽었다"며 "무장한 군인을 보면 사지가 떨리고 두려웠지만 그래도 지키고 막아야 한다는 생각이 더 컸다. 80년 광주 5·18 시민군들처럼 죽더라도 광장에서 죽자, 그 마음으로 광장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김 관장은 계엄 이후 오월어머니들의 심리적 고통이 더 컸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어머니들이 겪은 트라우마는 단순히 과거의 기억이 아니라 현재도 진행형이며 심리적인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고 했다.
또 "12·3 계엄 사태를 초래한 상황에 대해 내란 중심에 있던 사람들이나 국민의힘 그 누구도 국민에게 사과하지 않았다"며 "국민의힘은 반성하고 국민 앞에 진심으로 사죄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그러면서 "우리 오월어머니들과 국민들의 트라우마에 대한 가장 큰 치료제는 윤석열·김건희 부부, 그리고 내란 세력들을 강력하게 처벌해 헌법질서를 회복하는 것"이라며 "강하게 처벌하지 않으면 제2·제3의 12·3 계엄이 발생할 수 있다"고 했다.
1980년 전남도청에서 끝까지 계엄군에 맞선 10대 학생 문재학 열사의 어머니 김길자 씨는 "아직 책임자 처벌이 안 됐는데 벌써 1년이 지나버렸다. 너무 성질이 난다"고 분노했다.
아들인 문재학 열사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의 소설 '소년이 온다'의 주인공 동호의 모티브가 됐던 인물이다.
김 여사는 지난 1년 동안 "유독 아들 생각이 많이 났다"면서 "계엄 직후 국회로 달려간 서울 시민들에게 "광주를 교훈 삼아 당장 달려가준 것에 감사하고 고맙다"고 전했다.
5·18 당시 계엄군으로부터 직접적인 피해를 입은 김공휴 씨 역시 "여전히 12·3계엄 악몽에 시달리고 있다"고 분개했다.
1980년 당시 나전칠기공이었던 김공휴 씨는 친구와 시내에 나갔다가 시위대로 오해받아 계엄군에게 폭행을 당했고, 분노 끝에 도청으로 향해 5월 27일 새벽 기동타격대 4조로 전남도청을 지켰다. 이후 고문 후유증으로 여러 차례 자살을 시도했다.
그는 "작년에는 계속 악몽에 시달렸다. 저뿐만 아니고 회원들은 그때 악몽이었을 것"이라며 "그런데도 불구하고 지금 실질적으로 내란 우두머리 윤석열 비롯한 그의 하수인, 잔당들은 뉘우침과 반성이 전혀 없다"고 비판했다.
이어 "어떻게 이뤄낸 민주주의인데 이런 식으로 짓밟으려 하는지 너무 화가 나고 개탄을 금할 길이 없다"며 "이재명 대통령이 내란에 가담한 사람들을 엄벌에 처한다고 하니 믿고 기다리는 중이다. 앞으로가 중요하다. 그들이 엄격히 처벌받지 않으면 또 이런 일은 반복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5·18의 우두머리 전두환·노태우를 당시 솜방망이 처벌했기 때문에 이런 일이 반복된 것"이라며 "5·18을 교훈 삼아 내란을 이겨내고 민주주의를 쟁취한 만큼 다시 한 번 교훈으로 삼아 처벌을 중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광주 지역에서 최초로 삭발로서 탄핵 요구를 이끈 안형주 광주 서구의원은 계엄 발표를 회상하며 "믿기지 않았다. 계엄을 경험한 세대가 아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기초의원이긴 하지만 작은 행동이라도 해야겠다 생각했고, 광주에서 삭발을 제안해 최초로 삭발했다"며 "정치인을 비롯해 온 시민들이 광장으로 나갔다. 일련의 과정은 국민들이 만들어낸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란 종식이 첫 번째일 뿐, 윤석열 정부가 만들어낸 3년간의 혼란은 아직 정리되지 않았다"며 "경제와 주민 삶을 위해 중앙정부 시스템이 하루빨리 안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광주 장애인 활동가 배영준 씨는 "1년 동안 광장에서 함께했던 시간들이 지금도 마음 깊은 곳에 선명하게 남아 있다"고 기억했다. 그는 광주에서 열린 탄핵 집회 당시 커피차를 보내 음료 900잔을 무료로 후원했다.
그는 "그때 우리가 서로에게 건네던 용기와 연대의 손길이 지금도 큰 힘이 되고 있다"며 "그 경험을 통해 사회적 약자들의 목소리가 얼마나 소중한지 다시 배웠다"고 했다.
이어 "앞으로도 그 마음을 잃지 않고 필요로 하는 자리마다 조용히 힘을 보태며 변화의 흐름에 함께하겠다"며 "우리 모두가 함께했기에 내란을 막을 수 있었다. 오월 공동체 정신이 빛난 순간이었다"고 말했다.
breath@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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