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란의 밤' 광주는 깨어 있었다
광주시, 긴박했던 당시 대응과 '빛의 혁명' 재조명
- 박준배 기자
(광주=뉴스1) 박준배 기자 = 2024년 12월 3일 오후 10시 27분, 비상계엄이 전격 선포된 그 순간 광주는 누구보다 먼저 움직였다. 계엄 발표 10여 분 만에 강기정 광주시장 지시로 비상 대응 체계를 가동했고 실·국장을 비롯한 공직자들이 속속 시청으로 모여들었다. 당시 대한민국은 혼란 속으로 빠져들었지만, 광주는 이미 '대응'을 시작했다. 마치 '오월의 DNA'가 다시 깨어난 듯했다.
광주시가 '12·3 불법 계엄' 발생 1년을 맞아 작년 계엄 선포 당시 긴박했던 대응 과정을 공개하며 이를 도시 발전 동력으로 확장하겠다고 2일 밝혔다.
당시 광주시의 대응은 '기록적'이었다. 계엄 선포 직후 비상체계가 가동돼 오후 11시 첫 대책 회의가 열렸다. 그리고 2시간 뒤인 4일 오전 0시 11분 시장, 시의원, 시민사회, 5·18단체, 종교·학계 등이 참여한 '헌법수호 비상계엄 무효 선언 연석회의'가 소집됐다. 연석회의에서는 '반헌법적 계엄은 무효'라고 선언하고 군·경에는 시민 보호, 공직자들에게는 시민 일상 안정을 주문했다.
시는 이 과정을 "오월 정신의 현대적 발현, 오월의 DNA가 불을 켠 순간"으로 평가하고 있다.
작년 12월 4일 오전 4시 30분 계엄 해제 발표 뒤에도 광주는 멈추지 않았다. 당일 오전 9시 시민들은 5·18민주광장에 모여 비상시국대회를 열고 책임자 처벌을 촉구했다.
강 시장도 시민들과 상황을 공유한 뒤 국회를 찾아가 책임자 처벌, 시민 안전 확보를 요구했다. 이어 광주시는 공공기관장 회의, 5·18단체 간담회, 민생안전 대책반 구성 등 후속 조치를 진행했다.
그날 이후 광주 금남로의 촛불도 꺼지지 않았다.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당시 대통령 탄핵 결정이 지연되는 동안 시민들은 추운 겨울 매일 광장에 섰다. 극우 집회가 예고됐을 때 광주시는 "표현의 자유를 명분으로 민주주의를 공격할 수 없다"며 불허했다.
금남로 현장은 연대와 배려로 채워졌다. 자원봉사자들은 떡국과 핫팩을 나눴고, 시민들의 '선결제' 릴레이가 이어졌다. 시에선 편의시설과 화장실, 나눔 부스를 안내했다. 금남로는 1980년 5월 그때처럼 민주주의를 지키는 시민들의 공동체가 됐다.
광주시는 이런 시민적 대응을 '빛의 혁명'으로 명명했다. 시는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1주년이 되는 오는 12일까지 '빛의 혁명, 민주주의 주간'을 운영하며 1년 전 계엄 저지의 시민 연대를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되새길 계획이다. 불법 계엄 1년이 되는 3일에는 광주공동체 공동 기자회견도 열린다.
시는 지난 1년간 민주주의 강화를 위한 정책 제안으로 5·18정신 헌법 전문 수록, 무리한 계엄을 막는 '국회 사전동의제' 도입, 부당한 명령 거부권 입법화 등도 요구해 왔다. 강 시장은 이를 "12·3 이후 광주가 시작한 민주주의 재건 프로젝트"라고 표현했다.
강 시장은 "12·3 비상계엄을 통해 오월 정신의 생명력을 다시 확인했다"며 "망월 묘역을 '빛의 혁명 발원지'로 조성하고, 연대 중심이었던 적십자병원을 리모델링해 오월 정신을 잇겠다. 5·18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과 부당한 명령 거부권 입법화를 추진해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겠다"고 말했다.
nofatejb@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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