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도의 섬, 세상의 별 ⑰]…성남도(城南島)
조도 최고의 붕장어 산지…주낙 낚시로 70~80마리는 기본
해적 두목이 자신의 성을 따서 '성남'이라 이름 지은 섬
- 조영석 기자
(진도=뉴스1) 조영석 기자 = 성남도는 면 소재지인 하조도 북서쪽의 작은 섬으로 가사도와 하조도 사이 중간쯤에 있다. 섬의 면적은 1.3㎢에 불과 하지만 무리 지은 성남군도의 대장 섬이다.
성남군도는 하조·상조·가사·관매·거차군도 등 조도면을 이루는 6개 군도 가운데 하나로 성남도·외병도·내병도·백야도·새섬·옥도·유금도·죽도·상갈도·하갈도 등으로 이뤄졌다.
1973년 소성남도를 포함하여 47가구 302명이 살았다. 2025년 3월 말 현재는 24가구 33명이 거주하고 있다. 소성남도(2가구 2명)와 2005년 완공된 한국전력 성남내연발전소 직원 6명을 포함한 수치다.
1948년 '상조도초등학교 성남분교'가 문을 열고, 학생 수가 많을 때는 65명에 달하기도 했다. 2006년 1명의 학생을 끝으로 이듬해인 2007년 문을 닫았다. 마을 초입의 학교터 입구에 사찰의 당간지주처럼 시멘트 기둥 2개가 무심히 남아 있다.
성남도 남서쪽 200여m쯤 바다 건너에 소성남도가 이웃하여 있다. 섬과 섬 사이가 좁다 보니 진도와 해남 사이의 울돌목 해협처럼 물살의 흐름이 세차다. 썰물 때는 여울목에 여(礖)하나 머리를 드러내 두 섬의 사잇돌을 자처한다.
마을 앞 동남쪽 바다 건너편으로도 한 쌍의 부속 섬이 떠 있다. 성남도 앞에 있어 '앞섬'이라고도 부르는 상갈도(上乫島)와 '송도'나 '솔섬'이라 부르는 하갈도(下乫島)이다. 성남도에서 앞섬까지는 1.5㎞, 솔섬까지는 2㎞쯤 떨어져 있다. 앞섬에는 1980년대까지만 해도 3가구가 살았으나 지금은 사람이 살지 않는다.
1789년 호구총서에는 '석남도(石南島)'로 나온다. 조도면지에는 지명 유래와 관련, '1914년 이후 성남(城南)으로 쓰기 시작했다. 건너편인 지산면 세포에서 심동으로 넘는 고개에 성(城)이 있었기 때문에 이 성의 남쪽에 있는 섬이라고 했다고 할 수 있다'라고 적고 있다.
'마을 뒷산 잔등 길로 어른들이 말을 타고 다녔다'는 말도 전해온다. 인근의 대마도나 소마도에서 관청의 말을 키우던 시절일 수도 있고, 아니면 '왕건의 동생이 해적질을 했다'는 전설 속의 얘기일 수도 있다.
이 섬에 살던 성(城)씨 성의 해적 두목이 자신의 성과 섬이 남쪽에 있다 하여 '성남도(城南島)'라 부르게 되었다는 전설과 함께 왕건의 동생이 섬을 기지로 삼아 해적질을 했다는 이야기도 구전된다.
'마을 뒷산 잔등 길로 어른들이 말을 타고 다녔다'는 말도 전해온다. 인근의 대마도나 소마도에서 관청의 말을 키우던 시절일 수도 있고, 아니면 '왕건의 동생이 해적질을 했다'는 전설 속의 얘기일 수도 있다.
성남도 선착장에 내리면 내륙을 파고드는 백사장이 마을로 깊숙이 들어서고, 백사장은 계류장을 겸한다. 편자를 뒤집어 놓은 듯한 형태의 백사장이 끝나는 곳에서 취락이 열리고, 물비늘 반짝이는 바다 너머로 섬들은 새 떼처럼 내려앉아 풍경이 된다.
백사장은 폭이 넓은 곳이 100여 미터에 불과해 만이라 부르기에는 민망하지만, 오히려 작아서 작은 섬마을과 최적의 조화를 이룬다. 백사장은 한 시절 성남분교의 운동장을 대신해서 학생들을 받고, '바람 부는 날'에는 주민들의 1호 재산인 고깃배들을 품에 안았다.
해안가 바위에서는 해초가 숲을 이루고, 앞 바다는 붕장어가 '물 반 고기 반'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사람이 떠나면 해초도 기운을 잃고, 물고기도 떠나는 것일까. 모든 게 예전 같지 않다.
성남분교 6회 졸업생인 마을 이장 김지순 씨(77)는 "모래밭에서 학교 운동회도 하고, 바닷물이 적게 드는 조금때는 동네 사람들이 삽으로 모래를 퍼내서 뱃길을 만든 뒤, 고깃배들을 안쪽으로 끌어 올렸다"며 "사람들이 섬을 떠나듯 모래도 이제는 섬을 많이 떠났다"고 했다.
1973년에 학교 근처에서 그릇 파편과 마재석부류, 무문토기, 패총 등 선사시대 유물이 출토됐다. 또 제주 용암으로 만든 석기도 발견돼 석기시대부터 성남도와 제주도 간의 왕래가 있었던 것으로 밝혀져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모래밭 너머 선착장 건너편에 가늘고 작은 십자가를 세운 오래된 교회가 바닷바람을 맞고 있다. '大韓예수敎 長老會 城南敎會'라고 쓰인 편액에서 세월을 읽게 되는 교회는 1986년 세워졌다.
해안은 성벽처럼 가파르고, 연안의 바다는 깊고 거세다. 해안가 바위에서는 돌미역과 톳, 다시마, 돌김, 우뭇가사리 등 자연산 해초가 숲을 이루고, 앞 바다는 붕장어가 '물 반 고기 반'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사람이 떠나면 해초도 기운을 잃고, 물고기도 떠나는 것일까. 지금은 모든 게 예전 같지 않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가구당 500~1000 뭇(뭇은 미역을 세는 단위로 보통 10가닥을 1뭇이라 하지만, 조도면 관내에서는 20가닥을 1 뭇으로 친다.)의 돌미역을 채취했으나 이제는 당시의 10분의 1도 되지 않는다. 또 멀리 갈 것도 없이 바로 섬 앞에서 주낙 낚시로 70~80마리의 붕장어를 잡아 올리는 것은 기본이었다. 당시에는 7척의 어선이 조업을 나가 배 한 척당 50만~60만 원의 소득을 올렸다. 이제는 조업 어선도 2척에 불과하고 붕장어도 많이 안 잡힌다." 15년째 마을 이장을 맡고 있는 김지순 씨의 회상 속 성남도는 퇴색되지 않는 풍요로 남아 있다.
돌미역이 시들고, 물고기가 떠난 작은 섬마을에 10여 년 전부터 멧돼지가 찾아와 섬의 점령자가 되었다. 채소밭에도 철망을 치고, 산소도 철망 울타리를 둘러쳤지만 멧돼지를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멧돼지는 염소를 잡아먹는데 그치지 않고 집 안으로 들어와 백합 뿌리를 먹기 위해 화분을 부수고, 감을 따 먹기 위해 감나무를 부러뜨려 놓고 간다.
밤이 일찍 오는 섬에서 사람들은 해가 지면 앞마당에도 쉬 나가지 못한다. 위리안치보다 더한 안방 격리다.
다행히 아직 인명 피해는 없다지만 진도의 섬 취재를 다니는 동안 멧돼지가 집안까지 들어와 활개를 치는 경우는 성남도가 처음이다.
그렇다고 성남도의 삶이 척박하다고 할 수는 없다. 20살에 성남 총각을 만나 여수에서 이곳으로 시집왔다는 문정자 할머니(83)에게 성남도보다 좋은 세상은 없다. 문 할머니는 "새끼 둘을 낳아 가르치고 나니 팔순을 넘어 버렸다"면서도 "사람 좋고, 경치 좋은 성남도가 최고 좋다"며 '좋다'를 '좋다'로 연신이었다.
☞가는 길
목포항에서 섬사랑 10호와 13호가 교대로 운항한다. 목포연안여객터미널에서 오전 8시30분 출항하여 진도 쉬미항을 거처 오후 1시13분 성남도 도착이 기준이다. 가는 길에 백야도 광대도 혈도 양덕도 주지도 가사도 소성남도 등 15개 섬을 경유하지만 이용객이 없을 경우 건너뛰기 때문에 배 시간은 유동적이다.
오전 9시 전후에 조도 창류항에서도 서거차도에서 목포로 가는 섬사랑호를 이용, 내·외병도와 옥도 등을 거쳐 성남도에 갈 수 있다. 창류항에서는 2시간쯤 소요된다.
자세한 사항은 '해광운수'홈페이지에서 '운항일정안내' – '국가보조항로'- '목포'- '섬사랑 10호,13호'를 검색하면 된다.
가게나 민박시설은 없지만 숙박이 필요할 경우 마을회관을 빌려 이용할 수 있다.
kanjoys@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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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보배섬 진도'에는 헤아리기 힘들 만큼 '보배'가 많다. 수많은 유·무형문화재와 풍부한 물산은 말할 나위도 없고, 삼별초와 이순신 장군의 불꽃 같은 역사가 켜켜이 쌓여 있다. 하지만 진도를 진도답게 하는 으뜸은 다른 데 있다. 푸른 바다에 별처럼 빛나는 수많은 섬 들이다. <뉴스1>이 진도군의 254개 섬 가운데 사람이 사는 45개의 유인도를 찾아,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대항해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