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초 여객선 승객들 "육지 와도 못 쉬어"…5시간째 대기·짐 분실에 불안
"캐리어·차량 미회수에 갈아입을 옷도 없어"
- 이수민 기자
(목포=뉴스1) 이수민 기자 = 전남 신안에서 발생한 좌초 사고 대형 여객선 탑승객들은 육지를 밟고서도 한동안 안정을 찾지 못했다.
사고 발생 약 5시간 뒤인 20일 오전 1시쯤 전남 목포의 한 대형버스에서 만난 승객들은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가슴을 쓸어 내리는 모습이었다.
사고 시간인 전날 오후 8시 17분쯤부터 오랜 시간 배와 버스 등에서 대기를 함께해온 승객들은 "이미 생사를 함께 나눴다"며 서로를 챙기기 바빴다.
제주 협재에서 고깃집을 운영한다는 한 승객은 "같이 살아난 사람들이니 나중에 가게에 오면 무료로 밥을 주겠다"고 약속을 했고, 사고 직후 손주가 울 때 아이를 달래준 어린 청년을 보며 할머니는 간식을 나누며 감사를 전하기도 했다.
다만 갑작스런 사고로 인해 재난본부에서 마련한 임시 숙소의 객실이 부족해 호텔 앞에서 혼란이 생기고 다시 버스에 재탑승하는 등 대기가 장기화되자 승객들은 점점 지쳐갔다.
얼마 뒤 임시 숙소로 옮겨온 승객들은 대책본부의 안내를 받은 뒤에도 객실로 올라가지 못한 채 로비에서 어려움을 토로했다.
특히 배에 실린 캐리어와 차량을 돌려받지 못해 갈아입을 옷이나 개인용품조차 없는 상황이 이어지면서 승객들은 난처함을 감추지 못했다.
대책본부가 제공한 재난안전물품 꾸러미에는 칫솔·치약, 간식류(약과·물·햇반), 모포, 물티슈 등이 포함됐지만 "이미 호텔까지 왔는데 실질적으로 쓸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는 아쉬움도 나왔다.
한 여성 승객은 "당장 갈아입을 옷과 속옷이 없다. 캐리어라도 찾게 해달라. 중요한 물건이 있는데 잃어버릴까봐 걱정된다"며 "준비된 건 하나도 없고 물건은 찾지도 못 하고 불쾌하다. 재난안전물품에는 모포가 아니라 속옷이 있었어야 한다"고 호소했다.
일행인 또 다른 승객은 "배가 멈춘 게 밤 8시 조금 넘어서였는데, 지금 벌써 다음 날 새벽 1시"라며 "서서 대기하고, 해경 배로 옮겨타려고 또 대기하느라 너무 지쳐버렸다. 차라도 찾을 수 있으면 인근인 집으로 알아서 돌아갈텐데 차량을 인도받지 못 해 발이 묶였다"고 말했다.
사고 담당 공무원들은 연신 진땀을 흘리며 "죄송하다"는 답변 뿐이었다.
이날 가장 어려움을 겪은 승객은 벨기에에서 온 외국인 도에란네 씨(66)다. 언어 장벽 탓에 사고 직후부터 명확한 안내를 받지 못 했기 때문.
사고 직후부터 그를 지켜봤다는 다른 승객들은 "안내방송이 나와도 알아듣지 못해 어리둥절해했다"며 "다국어 안내가 없다는 것도 문제였다"고 지적했다.
그는 뉴스1 취재진을 만나 "대만에서 한국에 들어와 제주에서 4일 동안 여행을 즐겼다. 한국에서 3주를 더 보내려고 했는데 이런 일이 생겼다"고 설명했다.
이어 사고 당시를 떠올리며 "배가 한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다른 승객들과 함께 확인하러 갔는데 다행히 다친 사람도 없었고 모두 침착했다. 그래서 조금 안심했다"고 말했다.
그와 함께 있던 이양향 씨(64·여)는 "사고 순간 배가 50m는 밀린 것 같았다. 지금은 괜찮지만 내일 아침 몸 상태가 걱정된다"고 기억했다.
그는 "지인 장례식장에 급히 가려고 배를 탔는데 사고가 나서 당황스러웠다"며 "아까는 몸이 달달 떨릴 정도로 긴장했고 가족들이 계속 전화하며 걱정했다. 지금도 마음이 가라앉지 않아 잠이 올지 모르겠다"고 했다.
제주 여행을 마치고 가족들과 돌아오던 채연희 씨(41·여)는 로비에서 어린 아들의 몸 상태를 걱정했다.
그는 "갑자기 '덜컥' 하는 소리와 함께 몸이 튕길 정도로 흔들렸다"며 "상황을 몰라 침수되는 줄 알고 놀랐는데 다행히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는 "막내가 다리가 아프다고 해 걱정됐는데 내일 별일 없기를 바란다"며 "이제야 좀 쉴 수 있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해당 여객선에는 승객 246명(성인 240명, 소아 5명, 유아 1명)과 승무원 21명 등 267명이 탑승해 있었고, 해경은 신고접수 3시간 10분 만에 승객을 모두 구조했다. 해경은 탑승객 중 3명이 경상을 입은 것으로 잠정 파악했다.
breath@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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