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도의 섬, 세상의 별 ⑬] 쑥으로 희망을 일구던 섬…소마도(小馬島)

조선시대 군마를 길렀던 곳…말(馬)대신 멧돼지 떼만 기승
불미나리·봄쑥 재배로 자녀 유학 보내던 물 좋은 동네

편집자주 ...'보배섬 진도'에는 헤아리기 힘들 만큼 '보배'가 많다. 수많은 유·무형문화재와 풍부한 물산은 말할 나위도 없고 삼별초와 이순신 장군의 불꽃 같은 역사가 켜켜이 쌓여 있다. 하지만 진도를 진도 답게 하는 으뜸은 다른 데 있다. 푸른 바다에 별처럼 빛나는 수많은 섬들이다. <뉴스1>이 진도군의 254개 섬 가운데 사람이 사는 45개의 유인도를 찾아,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대항해를 시작한다.

소마도 선착장과 계류장 풍경. 바다 건너 오른쪽으로 상조도, 왼쪽으로 관사도가 보인다. 2025.10.3/뉴스1 ⓒ News1 조영석 기자

(진도=뉴스1) 조영석 기자 = 소마도는 대마도와 함께 조선시대 군마를 길렀다거나, 제주에서 한양으로 운송하던 말들의 중간 경유지 목장으로 이용됐다는 데서 이름이 유래한다. 하지만 '말(馬)'과 관련된 지명이 널려 있는 대마도와 달리 소마도에서는 말을 유추할 수 있는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두 섬의 이름은 대칭으로 이웃하지만, 소마도는 관사도나 나배도와 오히려 이웃하고 남쪽의 대마도와는 2km가량 떨어져 있다. 또 대마도는 들고나는 해안선이 복잡한 반면, 소마도는 고구마 형태의 섬으로 해안선이 단조롭다. 면적은 1㎢로 대마도의 3분의 1에 해당한다.

선착장에서 본 소마마을. 2025.10.3/뉴스1 ⓒ News1 조영석 기자

인구는 3월 말 현재 23가구, 31명으로 절반 이상이 '나홀로' 가구다. 평균 연령 78세로, 섬에서는 환갑이 지나도 아기 취급을 받는다. 교회 목사이자 마을 이장인 김선민 씨(64)씨는 "마을 주민들이 '애기야'라고 부른다"고 웃었다.

인구가 많던 1973년에는 502명이 살았다. 당시에는 1~2, 3~4, 5~6학년이 한 교실에서 수업을 하며 120여명의 학생들로 교실 3칸이 가득 찼다.

폐교된 소마도 초등학교 입구의 교문 기둥. 오른쪽 기둥에 '소마도등학교'라고 쓰인 동판이 남아 있다.2025.10.3/뉴스1 ⓒ News1 조영석 기자

학교는 1950년 조도초등학교 소마도 분교로 개교한 뒤 어엿한 소마도 초등학교까지 체급을 올렸으나 다시 분교를 거쳐 1996년 폐교됐다.

아이들의 꿈이 영글던 학교는 공공의 역할을 잃고 사유지가 됐다. 깨진 유리창의 교사(校舍)와 잡초밭이 된 운동장, 고물 창고 같은 선생님 숙소 등이 방치되면서 추억과 흉물의 중간지대로 남아 있다.

'83원과 77000000원, 그리고 920000배'. 수치는 위기의 임계선을 지나고 있는 버려지는 섬들의 비명이다. 육지는 여전히 멀어 '섬에도 사람이 산다'는 외침은 닿지 않는다.

좀체 신문에 날 일이 없던 소마도가 국내 모든 언론에 거론된 적이 있다. 2014년 국토교통부 공시지가 중 '전남 진도군 조도면 소마도리 산29'가 ㎡당 83원으로 전국에서 땅값이 가장 싼 곳이라는 기사였다. 가장 비싼 서울의 땅(충무로1가 24-2 네이처리퍼블릭 화장품 판매장)은 ㎡당 7700만 원으로 무려 92만여 배의 차이가 났다.

소마도 선착장 앞, 마을 초입에 소마복지회관과 정자가 함께 놓여 주민들의 쉼터가 되고 있다.2025.10.3/뉴스1 ⓒ News1 조영석 기자

'83원과 77000000원, 그리고 920000배'. 수치는 위기의 임계선을 지나고 있는 버려지는 섬들의 비명이다. 육지는 여전히 멀어 '섬에도 사람이 산다'는 외침은 닿지 않는다.

그래도 한때는 자식의 자식까지 길러내고, 육지로 유학 보내는 자급자족의 살만한 섬이었다.

소마도는 조도 군도의 여느 섬과 다름없이 자연산 미역과 톳, 돌김이 주 소득원이었다. 작은 섬이지만 논밭이 제법 조성돼 감자와 보리는 물론 쌀까지 재배하며 식량을 사 먹지 않아도 될 정도였다.

"소마도 불미나리와 봄쑥은 알아줬지. 쑥 캐고, 미나리 키워서 아들 셋 다 대학 보냈어. 리어카에 가득 채운 쑥을 아침 일찍 영진호나 문화호에 실어 목포에 있는 상회로 보내곤 했지. 그때는 쑥과 미나리로 일 년에 돈 천만 원은 했을 거야."

시간이 지나 보리나 나락이 생산비도 건지지 못할 만큼 하락하자 주민들은 1970년대 후반부터 새로운 소득원으로 밭에서 보리 대신 쑥을 키우고, 논에서는 나락 대신 미나리를 키워 생명을 이어갔다.

소마도는 지금껏 가뭄이 없을 정도로 물이 풍부하다. 작은 마을에 샘이 6개나 있어 이웃 섬 관사도에 배를 이용해 식수를 지원하기도 했다. 논농사와 미나리 재배가 잘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마을 중앙에 있는 미나리꽝. 지금은 늪지로 변했다. 2025.10.3/뉴스1 ⓒ News1 조영석 기자

"소마도 불미나리와 봄쑥은 알아줬지. 쑥 캐고, 미나리 키워서 아들 셋 다 대학 보냈어. 리어카에 가득 채운 쑥을 아침 일찍 영진호나 문화호에 실어 목포에 있는 상회로 보내곤 했지. 그때는 쑥과 미나리로 일 년에 돈 천만 원은 했을 거야."

소마도에서 태어나 소마도에서 결혼하고, 소마도에서 살고 있다는 소마도 사람 박전례 할머니(75)의 '잘나가던 시절의 소마도'얘기다.

김옥심 할머니가 쑥 팔아 지은 '그림 같은 집'. 오른쪽 주택은 예전에 살던 집이다. 2025.10.3/뉴스1 ⓒ News1 조영석 기자

이 마을 김옥심 할머니(86)도 쑥을 캐서 평생소원을 이뤘다. 할머니는 햇살이 드는 발코니와 크고 넓은 외벽의 유리창, 서서 부엌일을 하는 싱크대, 커다란 TV와 소파가 있는 '그림 같은 집'이 평생의 꿈이었다.

그 꿈이 마을 위 소마산으로 오르는 중턱에 유럽풍의 예쁘장한 독립가옥으로 완성됐다. 생전의 할아버지와 함께 남의 땅을 빌려 30년간 쑥 농사로 한 푼 두 푼 모아 지은 결실이다. 소마도 최고의 집이었고,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 '인간 승리'로 회자되고 있다.

주민들이 마을 정자에 모여 '잘나가던 시절의 소마도' 얘기로 웃음꽃을 피우고 있다. 2025.10.3/뉴스1 ⓒ News1 조영석 기자

하지만 소마도는 2년 전부터 쑥 농사가 사라지고, 땅에서의 경제 소득이 전무 한 섬이 됐다. 7가구만 바다에 나가 돌미역 채취로 생업을 잇고 있을 뿐이다. 주민들의 고령화에 따라 미나리꽝은 늪지로 변하고, 밭은 묵혀 '쑥대밭'이 됐다.

해상국립공원에 속한 소마도의 주민들은 국립공원 지정을 달갑지 않게 여긴다. 공원의 목적이 '보호'에 있다보니 '다도해 해상국립공원'은 듣기에 좋을 뿐, 실생활에는 불편하기 그지없는 규제와 제한의 이름이 되고 있다.

인적 끊긴 논밭에 야수로 변한 멧돼지 떼가 횡행하여 가축 키우기도 쉽지 않다. 주민들에 따르면 지난해에 마을에서는 모두 11마리의 염소가 희생됐다고 한다. 멧돼지 떼의 기승은 고령으로 거동마저 불편한 섬 주민들의 삶을 더욱 위축케하는 위협 요인이 되고 있다.

참깨 말리는 풍경. 2025.10.3/뉴스1 ⓒ News1 조영석 기자

부속 섬으로 서쪽 200m쯤에 폴장도(딴섬)가 있고, 동북쪽 나배도와 중간지점에 암초로 이뤄진 닭섬(鷄島)과 새섬(鳥島)이 있다. 닭(섬)과 새(섬)가 나비를 쪼아 먹는다는 이유로 나비섬으로 불리는 나배도 사람들이 소마도 사람들과 혼인 맺기를 기피했다.

해상국립공원에 속한 소마도의 주민들은 국립공원 지정을 달갑지 않게 여긴다. 공원의 목적이 '보호'에 있다보니 '다도해 해상국립공원'은 듣기에 좋을 뿐, 실생활에는 불편하기 그지없는 규제와 제한의 이름이 되고 있다.

김선민 이장(오른쪽에서 두 번째)과 관사도교회 김요셉 목사(가운데)가 소마도의 현안에 대해 주민 안현숙 씨와 진도노인복지회관 정애순 관장(왼쪽에서부터), 김영두 팀장(오른쪽 첫 번째)등과 의견을 나누고 있다. 2025.10.3/뉴스1 ⓒ News1 조영석 기자

김선민 이장과 건너편 관사도의 관사도교회 김요셉 목사(60)는 "돌 하나, 나무뿌리 하나도 함부로 다룰 수 없을 만큼 제한 사항이 많은 것이 국립공원 지역이다"며 "외지인이 찾아오게 하려면 등산로나 해안도로를 내야 하는데 허가가 쉽지 않아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고 이구동성으로 지적했다.

응급환자 발생에 대비해 헬기장을 조성하고 싶어도 쉽지 않고, 등산로를 겸한 소방도로가 있어야 할텐데, 산불이라도 발생하면 속수무책이라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또 소마도에서는 소마산 정상에 철탑이 세워져 28,000V의 고압 전선이 지난다. 다도해해상국립공원의 경관은 물론 주민건강이 일체 고려되지 않은 전형적 후진국형 시설이다. 만약, 30,000V에 가까운 철탑이 서울 남산에 세워져 있다고 가정한다면 당신은 동의하겠는가. 섬 주민들의 전기수혜 대가치고는 너무 가혹하다. 섬에 숙박시설은 없지만 마을회관을 이용할 수 있다.

kanjoys@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