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강제동원' 알렸다가 유언비어로 처벌…광주서도 처음 확인

日, 위안부 은폐하려 주민 형사처벌…판결문 공개
"처벌 두려움 속 서로 도운 사실 널리 알려야"

일제강점기 광주지방법원에서 유언비어 유포로 처벌받은 이들에 대한 판결문./뉴스1DB

(광주=뉴스1) 이수민 기자 = 일제강점기 일본의 위안부 강제동원 사실을 지인에게 알렸다가 '유언비어 유포' 혐의로 처벌받은 기록이 광주에서도 확인됐다.

전남 영암에서 사례가 발견된 데 이어 광주에서 처음 발견된 것으로, 일제가 무력으로 주민들을 입단속 해 위안부 동원 사실을 숨기려 했다는 직접 증거가 드러난 것이다.

15일 <뉴스1>이 확보한 일제강점기 일본군 위안부 관련 판결문에 따르면 당시 광주법원에서는 다수의 피의자가 유언비어 유포 혐의로 처벌받았다.

1938년 9월 28일 광주지법에서 금고 4개월을 선고받은 김금례 씨는 화순에 사는 과부 지인을 찾아 "전쟁 중인 곳에 큰 건물을 지어 과부를 끌고 가 창녀로 만들고 있다"고 전했다가 처벌됐다.

지인이 "오늘날까지 과부로 지내왔지만 아무 일도 없었다"고 했지만 김 씨는 우려를 거두지 않았고, 이 발언이 퍼지며 유언비어 혐의로 유죄를 받았다.

같은 해 10월 7일 화순 거주 나명주 씨는 집 앞 가게에서 만난 지인 8명에게 "요즘 16세 이상의 처녀를 전쟁터로 보내 밥을 짓게 하거나 세탁을 시키고 있다. 광주에서도 4명이 모집돼 전쟁터에 갔다"고 말했다.

그는 또 "장성 방면에서도 처녀를 전쟁터에 보내기 위해 호구조사를 하고 있다"며 부모들의 우려를 전했다가 금고 4개월을 선고받았다.

전남 광산군(현 광주 광산구)에서 기름행상을 하던 임자근이 씨도 지인 송규녀 씨에게 "혼기 아가씨 명단과 연령을 조사해 중국 전쟁터로 보내 병사의 위문·취사·세탁 등에 부역시키려 한다"고 말했고, 송 씨가 이를 마을에 전하면서 두 사람 모두 금고 4개월 형을 받았다.

옷감행상을 하던 김금순 씨는 "시골에서 아가씨, 과부, 첩들을 전쟁터로 강제 끌고 가 세탁·재봉·취사 등을 시킨다"는 말을 지인 정심이 씨에게 전했다. 이 내용은 정심이 씨를 거쳐 정금이 씨, 정금이 씨의 동거인에게까지 퍼졌고 결국 세 사람 모두 죗값을 치러야 했다.

1941년 남편 사망 후 날품팔이로 자녀를 키우던 김송죽 씨도 유언비어 혐의로 재판에 섰다.

세입자 정점례 씨가 "순사가 딸의 호구조사를 했다"며 걱정하자, 김 씨는 "총독부가 조선인 처녀를 강제 모집하고 있다. 딸을 숨겨라"고 조언했다가 처벌받은 것이다. 판사는 김 씨가 이를 빌미로 정 씨의 가사노동을 얻으려 유언비어를 퍼뜨렸다고 판시했다.

이외에도 '처녀 대상 공출이 잦다'는 등의 발언을 한 이들이 다수 처벌받았다. 이는 일제가 일본군 위안부 제도를 은폐하기 위해 관련 사실을 알고 있거나 알린 주민을 형사처벌하며 조직적으로 사실을 숨겼음을 보여준다.

당시 일제는 전쟁 동원을 위해 한국인을 철저히 감시했다. 1937년 7월 22일, '국민정신 앙양과 시국 인식 강화'를 명목으로 조선중앙정보위원회를 설치하고 각 도에 정보위를 두어 여론과 동향을 파악했다. 경찰과 행정기관도 대중의 의식을 통제하는 공작에 투입됐다. 이런 탓에 위안부 강제동원의 실상을 알리는 일은 극도로 위험한 행위였다.

앞선 사례와 같이 유언비어 유포로 1938년 경남에서 처벌받은 장인식·장복학 씨는 2020년 문재인 정부에서 이 같은 공을 인정받아 대통령 표창을 받기도 했다.

광주의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위안부 실상을 알리는 활동은 사실상의 독립운동"이라며 "새롭게 알려지게 된 광주의 처벌자들 역시도 명예회복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어 "당시 국민들이 처벌의 두려움 속에서도 서로를 경고하고 구하려 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는데, 이를 오늘의 국민과 청소년들에게 꼭 알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breath@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