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학동참사 4년만에 '유죄' 결론…건설현장 안전불감증 여전

"참사 후 쏟아진 대책, 의미 있지만 현장 적용 어려워"
"'최대한 싸고·빠르게'에서 '튼튼하게 지으려면 어떻게'로 전환"

광주 동구 학동4구역 주택재개발 5층 건물 붕괴 참사 현장. /뉴스1 DB

(광주=뉴스1) 이승현 기자 = 17명의 사상자를 낸 광주 학동참사 책임자들이 참사 발생 4년 2개월 만에 유죄 판결을 받았다.

이후 우리 사회는 같은 비극을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 대책 마련에 분주했다. 하지만 건설 현장에서 유사 사고가 지속해서 발생하는 만큼 실효성 있는 대책은 여전히 미비하다는 지적이다.

'상주 감리 배치' 등 쏟아진 재발 방지책

지난 2021년 6월 9일 광주 동구 학동4구역 재개발 현장에서 철거 중이던 5층 건물이 무너지며 시내버스를 덮쳤다. 이 사고로 시민 9명이 숨지고 8명이 크게 다쳤다.

현대산업개발로부터 하청에 이면계약, 재하청을 거치며 공사비가 점차 줄었고 이는 참사의 직접 원인이 된 해체계획서를 무시한 날림공사로 이어졌다.

사고 이후 각계각층은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을 쏟아냈다. 현장 감리자의 부재가 안전 관리 소홀로 이어진 만큼 이른바 '학동참사 재발 방지법'을 통해 철거 현장에 상주 감리 배치와 해체 공사 현장의 점검을 의무화했다.

점검 결과 안전한 해체 공사가 어려울 땐 허가권자가 관리자 등에게 작업 중지 등 필요한 조치를 명령할 수 있도록 권한을 부여했다.

해체 작업자가 규정에 따라 건축물을 해체하지 않아 공중의 위험이 발생한 경우엔 처벌을 강화했다. 허가받아야 하는 해체 공사 대상도 확대했다.

불법하도급 차단을 위해 사망사고 발생 시 불법하도급을 주거나 받은 업체는 물론 지시·공모한 원도급사도 즉시 등록을 말소하는 원스트라이크 아웃제를 도입했다.

사망사고 피해액의 최대 10배를 배상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적용했고 지역건축안전센터 설치도 확대했다.

올헤 2월 광주 동구 지산사거리의 한 공사 현장 건물 가림막이 인도쪽으로 무너져 내려 1명이 부상을 입었다. 사진은 현장의 모습. 2025.2.25/뉴스1 ⓒ News1 최성국 기자
학동참사 재발 방지법 통과 날 무너진 광주 아파트

대책 마련과 제도 강화로 우리 사회는 달라졌을까.

분주한 움직임을 비웃기라도 하듯 학동참사 재발 방지법(건축물관리법 일부개정법률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당일, 광주 서구 화정동 아이파크 신축 현장에서 붕괴 사고(6명 사망·부상 1명)가 발생했다.

해체 공사 현장은 아니었지만 불법적인 공법 변경과 안전관리 부실 등 전형적인 안전 불감증이 원인으로 지목됐다.

광주 동구에선 4년 만에 학동참사 유사 사고가 터졌다.

지난 2월 25일 동구 지산동에서 노후 주택 철거 과정 중 가림막이 인도 쪽으로 무너졌고 교통을 통제하던 60대 신호수가 다쳤다.

철거 업체가 '잔해물을 수시로 반출하겠다'는 해체계획서를 준수하지 않아 발생한 인재이자 학동참사와 닮은꼴이었다.

동구는 현장소장 A 씨를 경찰에 고발했고 A 씨는 업무상 과실치상 혐의로 검찰에 송치됐다.

법 개정에도 한계는 있다. 상주 감리가 현장을 살피지만 건축주가 직접 감리를 지정해 독립적으로 업무를 수행하기 어려운 구조다.

'불법하도급 근절' 엄포에도 불구하고 올해 상반기 건설 현장에서만 197건의 불법하도급 사례가 적발됐다. 이는 건설 현장 전체 불법행위의 37.9%에 해당한다.

원청이 모든 하도급 흐름을 실시간으로 감시하는 데도 한계가 있다.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노동자들이 작업하는 모습. /뉴스1 ⓒ News1 김도우 기자

사망사고도 근절되지 않고 있다.

국토안전관리원의 국토안전 통계연보의 건설 현장 건설사고 신고 건수 및 인명피해를 살펴보면 학동참사 이후 사망사고는 꾸준했다.

참사 이듬해인 2022년 광주 8건·전남 7건을 시작으로 2023년 광주 5건·전남 12건, 2024년 광주 2건·전남 12건 등 매해 15건 이상이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건설 현장 근본 문제 바뀌어야"

이 같은 사고를 막으려면 '최대한 싸고, 빠르게'를 추구하는 철저한 이윤 중심의 근본적 구조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지적이다.

제도적 보완이 이뤄지긴 했지만 실제 현장에 적용되기에는 어려움이 많은 게 현실이다.

여전히 건설 현장 사고 주원인으로는 불법 하도급과 무리한 공기, 부족한 공사 비용·기간 등이 꼽힌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공사 전 과정의 모든 주체에 안전관리 책임을 부여하는 건설안전특별법이 요구된다. 하지만 특별법은 여전히 국회 계류 중이다.

이준상 민주노총 광주전남 건설지부장은 "제도적 보완을 통해 이전보다는 나은 현장이 만들어지고 있다"면서도" 안전만 강화하면 당장은 관리·감독이 이뤄지는 듯하지만 결국 기한 내 공사를 끝내야 하는 노동자들은 구조적 문제로 무리한 공사를 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건설을 계획하는 시공사부터 원청사,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까지 '안전'에 대한 목표, 지향점 등 근본적인 공동 목표가 있어야 사고를 줄일 수 있다"며 "그렇게 해야 이윤 중심이 아닌 노동자들의 안전, 목숨을 중시하는 '구조적 변화'를 이룰 수 있다"고 강조했다.

최저가 입찰제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많다. 이 지부장은 "'어떻게 하면 싸게 할 것인가'를 논의하는 게 아니라 '튼튼하게 지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생각하는 구조가 필요하다"며 "형식만 바꾸려하면 안전 문제는 절대 해결할 수 없다"고 말했다.

pepper@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