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도의 섬, 세상의 별 ⑨] 한 시절 지났지만 여전히 살 만…나배도·모도

마을 벽화에 새긴 자긍심 '나배 닻배놀이'
모도에서 꽃 피운 톳 양식…조도 발전의 디딤돌

편집자주 ...'보배섬 진도'에는 헤아리기 힘들 만큼 '보배'가 많다. 수많은 유·무형문화재와 풍부한 물산은 말할 나위도 없고 삼별초와 이순신 장군의 불꽃 같은 역사가 켜켜이 쌓여 있다. 하지만 진도를 진도 답게 하는 으뜸은 다른 데 있다. 푸른 바다에 별처럼 빛나는 수많은 섬들이다. <뉴스1>이 진도군의 254개 섬 가운데 사람이 사는 45개의 유인도를 찾아,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대항해를 시작한다.

나배대교. 다리 건넌편이 면소재지 하조도의 세목나루다. 2025.8.8/뉴스1 ⓒ News1 조영석 기자

(진도=뉴스1) 조영석 기자

◇나배도

나배도(羅拜島)는 섬의 생김새가 나비처럼 생겼다는 데서 이름이 유래한다. 예전엔 '나비섬'이나 '접도(蜨島)'라고도 불렀다. 나비섬 서남쪽에 소마도의 닭섬(鷄島)과 새섬(鳥島)이 근접해 있다. 나비를 쪼아먹는 닭(섬)과 새(섬)는 꺼림칙한 금기의 대상이었다. 나비섬 사람들은 자연스레 소마도 사람들과 사돈맺기를 기피했다. 세월이 흘러 젊은이가 떠난 섬에서 금기는 효력을 상실했다.

나배마을. 마을 앞 해안에 백사장이 있었으나 호안공사로 사라졌다. 2025.8.8/뉴스1 ⓒ News1 조영석 기자

면 소재지인 하조도 세목나루와 370m 떨어져 있으나 지난 2022년 2월 '나배대교' 개통으로 하조도와 연결됐다. 다리가 놓이기 이전에는 '뗏마'라고 불리는 거룻배가 하조도를 오가는 유일한 교통수단이었다.

면적 1.4㎢, 해안선 길이 5.5km에 달하는 단일마을 섬으로 청주 한(韓)씨가 대성을 이룬다.

나비섬 서남쪽에 소마도의 닭섬(鷄島)과 새섬(鳥島)이 근접해 있다. 나비를 쪼아먹는 닭(섬)과 새(섬)는 꺼림칙한 금기의 대상이었다. 나비섬 사람들은 자연스레 소마도 사람들과 사돈맺기를 기피했다. 세월이 흘러 젊은이가 떠난 섬에서 금기는 효력을 상실했다.
'나배 닻배놀이'가 그려진 나배마을 벽화. 2025.8.8/뉴스1 ⓒ News1 조영석 기자

1973년 89가구 540명이 거주했지만 지난 7월 말 현재 32가구 38명으로 줄어들었다. 1가구 1명꼴로 70대 이상이 22명으로 절반을 넘는다. 1976년 문을 연 조도초등학교 나배분교 역시 한때 122명의 학생들이 있었으나 1998년 문을 닫았다.

나배도는 전남도 무형유산인 '조도닻배노래'의 옛 영화가 주민들의 자긍심으로 살아 있는 섬이다. 나배대교 초입의 마을 표지석에도 '라배도리'라는 지명 밑에 '닻배놀이'글자가 새겨져 있고, 마을 담벼락에는 '청·황·홍'의 3색 깃발을 매단 만선의 '닻배'가 그려져 있다. 벽화의 글씨는 '조도닻배놀이'라 하지 않고 '나배닻배놀이'라 썼다.

나배마을 한길배 할아버지가 닻배노래 한 가락을 흥겹게 부르고 있다. 2025.8.8/뉴스1 ⓒ News1 조영석 기자

닻배는 벽화로 남고, 노래는 '놀이'로 바뀌었지만, 올해 아흔 살의 한길배 할아버지는 조기잡이의 근육에 새겨진 '노래'를 기억하고 있다.

'어야 닻배야/ 어야 술비야/ 줄 당겨라/ 어야 조기야/ 그물코가 삼천 코면/ 걸릴 날이 있다더니/ 코코마다 걸렸구나'

마을 담벼락에는 '청·황·홍'의 3색 깃발을 매단 만선의 '닻배'가 그려져 있다. 벽화의 글씨는 '조도닻배놀이'라 하지 않고 '나배닻배놀이'라 썼다. '어야 닻배야/ 어야 술비야/ 어이 나배야…'

나배도에서는 이제 조기 대신 자연산 톳과 미역, 뜸부기 생산이 주민들의 주 소득원으로 자리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나배도 뜸부기는 조도 해역의 최상품으로 친다. 나배도 해안은 물론 '꽃섬'이라 불리는 건너편의 소나배도에서 많이 난다.

나배마을 어촌계 주민들이 뜸부기 선별 작업을 하고 있다. 2025.8.8/뉴스1 ⓒ News1 조영석 기자

1960년대까지만 해도 닻배를 타던 어부들이 가을이나 겨울철이 되면 뜸부기를 지게에 지고 목포나 광주 등 육지로 도부(到付) 나가 쌀보리 등 식량과 교환했다. 당시에도 뜸부기는 귀한 해초로 대접받으며 말린 뜸부기 한 바가지와 쌀 한 바가지를 맞바꿨다.

마을 어른들은 "갯가에서 넘어져도 푹신하게 자란 뜸부기 덕에 머리가 안 깨졌다"는 말로 '뜸부기 지천'의 시절을 기억했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닻배를 타던 어부들이 가을이나 겨울철이 되면 뜸부기를 지게에 지고 목포나 광주 등 육지로 도부(到付) 나가 쌀보리 등 식량과 교환했다. 당시에도 뜸부기는 귀한 해초로 대접받으며 말린 뜸부기 한 바가지와 쌀 한 바가지를 맞바꿨다.
보도블록이 깔린 나배마을 안길. 건너편으로 보이는 섬이 '꽃섬'이라고 불리는 소나배도이다. 2025.8.8/뉴스1 ⓒ News1 조영석 기자

나배도는 조도면 일대에서 유일하게 마을 골목길을 보도블록으로 깔아 눈길을 끈다. 20여 년 전 콘크리트를 걷어내고 보도블록으로 교체했다. 하지만 비나 눈이 오면 쉽게 미끄러진데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이 많은 탓에 다시 콘크리트로 바꿀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철거 대상은 보도블록뿐만이 아니다. 마을 대다수 집들이 새마을운동이 시작된 1970년대 초 정부 권장사업으로 지어진 석면 슬레이트 지붕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석면 슬레이트로 지붕을 인 나배도 가옥. 2025.8.8/뉴스1 ⓒ News1 조영석 기자

석면은 세계보건기구(WHO)가 지정한 1급 발암물질로 잘 알려져 있다. 석면 슬레이트는 지붕개량을 한 지 반세기를 넘어서면서 바람에도 곧 부서질 듯 낡았다.

마을 뒤, 산으로 오르는 초입에 당산이 있었으나 오래전 폐쇄되고, 인적 끊긴 숲에서 한 아름의 잿밥나무(구실잣밤나무)들만 울울창창하다.

모도마을 풍경. 왼쪽 건너편으로 소모도가 보인다. 2025.8.8/뉴스1 ⓒ News1 조영석 기자

◇모도(茅島)

모도는 소마도와 대마도 중간쯤에 위치한 면적 0.23㎢의 작은 섬이다. '신비의 바닷길'이 열리는 진도군 의신면의 모도와 구분하기 위해 '조도 모도'라 부른다. 마을은 북쪽의 나배마을과 마주 보고 있다. 매년 정월 대보름이 되면 나배도 사람들과 불싸움의 눈맞춤을 했다. 두 섬의 사람들이 깡통불을 돌리고, 장작불을 피워 어느 섬 불이 더 오래 타는지 겨뤘다.

하조도에서 말이 대마도와 소마도로 뛰어가는 디딤돌 같은 섬이라 하여 '뛰섬'이라 불렀으나 한자로 옮기면서 '띄섬(茅島)'이 되었다는 말이 있다.
모도 돌담길. 2025.8.8/뉴스1 ⓒ News1 조영석 기자

조도면지에는 "하조도에서 말이 대마도와 소마도로 뛰어가는 디딤돌 같은 섬이라 하여 '뛰섬'이라 불렀으나 한자로 옮기면서 '띄섬(茅島)'이 되었다는 말이 있다"고 기록했다. 말 대신 하조도의 전기가 모도를 디딤돌로 삼아 대마도와 소마도로 건너갔다.

1975년 26가구 140명이 살았고, 1950년에는 조도초등학교 모도 분교까지 개교했다. 섬의 규모에 비해 꽤나 많은 인구가 살았으나 지난 3월 말 현재는 8가구 10명이 공식 인구수이다. 그나마 톳이나 미역 채취 철이 지나면 상주인구는 절반으로 줄어든다. 분교는 1998년 폐쇄됐다.

모도 주민 차동자 할머니가 반침(마루)에 앉아 모도의 삶을 얘기하고 있다.2025.8.8/뉴스1 ⓒ News1 조영석 기자

마을은 여느 섬처럼 바다를 향해 완만히 내려오기보다는 선착장 위 해안 기슭에 터를 잡아 바다를 내려보고 있다.

박 씨의 톳 양식 성공은 지명 유래의 예언처럼 궁핍했던 조도 관내의 섬이 한 단계 도약하는 디딤돌이 됐다. 조도면의 여타 섬들이 앞다퉈 톳 양식을 시작하면서 톳은 조도의 새로운 먹거리로 떠올랐고, 모도톳은 조도톳의 대명사로 이름을 알렸다.

모도는 조도 관내에서 최초로 톳 양식을 시작했던 섬이다. 마을 주민 박수복 씨(80)가 40여 년 전 여수에서 톳 씨를 사와 양식에 성공하면서 조도 일대에 톳 양식이 전파됐다.

박 씨의 톳 양식 성공은 지명 유래의 예언처럼 궁핍했던 조도 관내의 섬이 한 단계 도약하는 디딤돌이 됐다. 조도면의 여타 섬들이 앞다퉈 톳 양식을 시작하면서 톳은 조도의 새로운 먹거리로 떠올랐고, 모도톳은 조도톳의 대명사로 이름을 알렸다.

물이 귀한 모도에서는 집집마다 커다란 물통(왼쪽 파란색 통) 설치가 생활의 필수조건이다. 2025.8.8/뉴스1 ⓒ News1 조영석 기자

모도는 '작은띄섬'이라 불리는 소모도와 검등여, 윗여, 아래여 등 무인도에서 톳 이외에도 자연산 돌미역을 채취했으나 지금은 노동력을 가진 이들이 사라지면서 '옛일'이 되어가고 있다.

"물도 귀하고 오가기도 쉽지 않고, 겁나게 불편하제. 그래도 살만해. 잘 살지는 못해도 밥은 먹고 살아" 주민 차동자 씨는 모도의 삶이 "그래도 살만하다"고 했다.

모도는 조도면사무소의 급수선이 3주에 한 번꼴로 들려 제공하는 식수에 의존하고 있을 만큼 물이 귀한 섬이다. 집 집마다 성인 키 높이의 물통을 두고 20일 치 이상의 식수를 보관하고, 생활용수는 빗물을 모아 사용한다. 우편물과 택배는 우체국 택배선이 이틀 간격으로 왕래한다. 택배를 실은 배는 안개가 짙게 끼거나 바람이 부는 날에 쉽게 발이 묶여 '이틀 간격'이 '열흘 간격'도 된다.

"물도 귀하고 오가기도 쉽지 않고, 겁나게 불편하제. 그래도 살만해. 잘 살지는 못해도 밥은 먹고 살아" 주민 차동자 씨(79)는 모도의 삶이 "그래도 살만하다"고 했다.

'조도닻배놀이' 장면(진도군 누리집 갈무리)

☞조도닻배노래

전라남도 무형유산…조기잡이의 대표적 서해안 민요

조도닻배노래는 일제 시절부터 1950년대까지 조도면 일원의 어민들이 조기잡이를 하면서 부르던 노래다. 닻배에서 그물을 끌어 올리거나 내릴 때, 또는 닻배를 이동시킬 때 부르는 노래로 조기잡이와 관련된 서해안의 대표적 민요다. 닻배는 조도 어민들이 개발한 혁신적 어로선으로 닻을 많이 싣고 다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나배도는 1976년 마을 주민들이 남도문화제에 참가, 입상하면서 닻배노래의 대표성을 갖게 됐다. 이후 진도 본도 거주자들이 조도닻배노래로 1994년 전국 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문화부장관상을 수상했다. 이를 계기로 조도닻배노래는 2006년 전라남도 무형문화재 제40호로 지정된 뒤 2024년 전라남도 무형유산으로 변경됐다.

kanjoys@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