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도의 섬, 세상의 별 ⑧] '일 미역, 이 멸치'의 풍요로운 섬…청등도

보물섬이 된 신의도, 곡두도…일제 때 50만 원에 매입
'보한림'…산 자에겐 해원의 비손, 망자에겐 다독거림의 위로

편집자주 ...'보배섬 진도'에는 헤아리기 힘들 만큼 '보배'가 많다. 수많은 유·무형문화재와 풍부한 물산은 말할 나위도 없고 삼별초와 이순신 장군의 불꽃 같은 역사가 켜켜이 쌓여 있다. 하지만 진도를 진도답게 하는 으뜸은 다른 데 있다. 푸른 바다에 별처럼 빛나는 수많은 섬 들이다. <뉴스1>이 진도군의 254개 섬 가운데 사람이 사는 45개의 유인도를 찾아,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대항해를 시작한다.

청등마을 초입의 표지석. 2025.7.25/뉴스1 ⓒ News1 조영석 기자

(진도=뉴스1) 조영석 기자 = 청등도(靑藤島)는 면적 1.33㎢의 섬으로 죽항도 남쪽, 제주도 방향의 관매도와 인접해 있다. 죽항도 선착장에 서면 관매도의 방아섬과 허연 낭떠러지 암벽의 각흘도가 손에 잡힐 듯이 다가온다. 그 사이 청등도 앞 100m쯤 되는 곳에 점처럼 찍힌 아기섬 송도(솔섬)가 우람한 송전철탑을 등에 업은 채 힘겹게 파도를 맞고 있다.

'청등마을'이라고 쓰인 커다란 자연석이 마을 초입의 수문장으로 서고, 산으로 뻗어 오른 집들은 해풍을 막기 위해 성인 키 높이로 돌담 울타리를 쌓아 올렸다.

조도면지에는 '본디 청등은 오를 등자를 써 '청등'(靑登)이라 부르다가 꺼랭이 만드는 푸른등나무 줄기가 많다고 해서 '靑藤'으로 고쳐 썼다고 한다'는 주민 구술이 실려 있다.

'본디 오를 등자를 썼다'는 지명 유래처럼 마을은 선착장에서 북향으로 난 비탈길을 500여m쯤 오르는 산마루 근처에 자리하고 있다. '청등마을'이라고 쓰인 커다란 자연석이 마을 초입의 수문장으로 서고, 산으로 뻗어 오른 집들은 해풍을 막기 위해 성인 키 높이로 돌담 울타리를 쌓아 올렸다.

산마루에 자리한 청등도 마을회관과 민가. 2025.7.25/뉴스1 ⓒ News1 조영석 기자

빈집이 빠진 이처럼 곳곳에서 드러나는 마을은 교회와 함께 11세대 28명이 적을 두고 있다. 1973년 통계에 따르면 청등도에는 29가구 175명이 살았다.

마을과 길 하나를 경계로 해안 쪽에 조도초등학교 청등도분교장이 있었으나 지금은 사라졌다. 슬레이트로 지붕을 인 우물만이 흔적으로 남았다. 1950년 문을 연 분교는 1995년 학생 수 감소로 문을 닫았다. 분교 터 입구에는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나이가 많다는 닥나무가 자생하고 있다.

어린아이가 죽게 되면 '독담묘(돌무덤)'를 쌓아 묻고, 나무를 심었다. 나무들이 자라 숲을 이루고 사람들은 '추위를 막아 주는' 보한림이라 불렀다. 보한림은 산 자에겐 해원의 비손이고, 망자에겐 다독거림의 따스한 위로다.

마을 아래, 북풍받이 해안 급경사에는 아름드리나무 숲이 있다. 주민들은 숲을 '방풍림'이라 하지 않고 '보한림(保寒林)'이라 한다. 청등도에서는 1970년대까지만 해도 어린아이가 죽게 되면 이곳에 '독담묘'(돌무덤)를 쌓아 묻고, 나무를 심었다. 나무들이 자라 숲을 이루자 사람들은 '추위를 막아 주는' 보한림이라 불렀다. 보한림은 산 자에겐 해원의 비손이고, 망자에겐 다독거림의 따스한 위로다.

청등도 선착장 풍경.오른쪽 방파제 너머로 관매도의 각흘도와 방아섬이 보인다. 2025.7.25/뉴스1 ⓒ News1 조영석 기자

선착장은 당초 보한림 아래 갯가에 있었으나 파도가 덜한 섬의 서북쪽인 지금의 짝지(자갈)밭으로 옮겼다. 태풍을 피해 배들을 끌어 올리던 곳이다. 선착장에도 10여 가구가 넘는 집들이 들어서, 언뜻 마을을 연상케 한다. 하지만 이곳 집들은 주민들의 임시 거주지다. 멸치잡이와 돌미역 채취가 주업인 주민들이 산 중턱의 마을까지 오가는 불편을 덜기 위해 창고를 겸해 지은 건물이다. 가구당 한 채씩 짓다 보니 마을 세대수와 맞먹는다.

여자들은 여자봉우리에, 남자들은 남자봉우리에 올라 까마귀를 부르며 어느 쪽에 까마귀가 많이 몰려드는지를 놓고 시합을 벌였다. 이제 사람들은 양봉지산에 더 이상 오르지 않고, 까마귀만 남·여봉우리를 오간다.
헬기장으로 이어지는 마을 뒷길. 2025.7.25/뉴스1 ⓒ News1 조영석 기자

마을 뒷산 양봉지산에 여자봉우리와 남자봉우리로 불리는 두 개의 봉우리가 동서 방향에서 마주 보고 있다. 한 쌍의 청춘남녀가 산에 오르다 까마귀에게 물려 죽은 뒤 바위 봉우리가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주민들은 추석날 청춘남녀의 원혼을 달래기 위해 송편을 빚어 제사를 지내고, 산에 올라 까마귀에게 던져 주며 마을의 안녕과 풍어를 빌었다. 이때 여자들은 여자봉우리에, 남자들은 남자봉우리에 올라 까마귀를 부르며 어느 쪽에 까마귀가 많이 몰려드는지를 놓고 경쟁하기도 했다. 이제 사람들은 양봉지산에 더 이상 오르지 않고, 까마귀만 남·여봉우리를 오간다.

마을앞 우물터. 우물터 아래에 '청등도 분교'가 있었으나 지금은 흔적을 찾기 힘들다. 2025.7.25/뉴스1 ⓒ News1 조영석 기자

청등도 앞 죽항도가 멸치잡이가 1순위이고, 돌미역이 2순위라면 청등도는 '일(1위) 미역, 이(2위) 멸치'일 만큼 돌미역으로 유명하다. 청등도 돌미역은 '진도곽'으로 불리며 '독거도' 미역과 함께 전국 최고의 품질을 자랑한다. 생산량 등에 따른 시세 변동이 있으나 상품의 경우 20가닥의 한 뭇에 200만 원을 호가하기도 한다.

청등도 본섬과 주변의 신의도·송도·곡두도·목여·해줏여 등 부속 섬과 여에서 자연산 돌미역이 생산된다. 매년 2월이면 마을주민들이 이들 섬과 여에서 갯닦이를 한다.

청등도에서 최고 품질의 돌미역이 나오는 신의도와 곡두도는 원래 관매도 해역에 속한 무인도였으나 청등도 주민들이 사들였다. 일제 시절, 관매도 주민들이 초등학교 건립 비용을 모으기 위해 팔았다.

갯닦이는 바위에 자생하는 파래·김·가사리 등의 해초나 삿갓조개·거북손·석화 등의 패류를 제거하는 일로, 미역 포자가 잘 붙도록 하는 마을 울력이다. 밭으로 치면 '잡초 제거 작업'에 해당한다.

청등도에서 최고 품질의 돌미역이 나오는 신의도와 곡두도는 원래 관매도 해역에 속한 무인도였으나 청등도 주민들이 사들였다. 일제 시절, 관매도 주민들이 초등학교 건립 비용을 모으기 위해 신의도와 곡두도를 매물로 내놓자 이를 청등도 주민들이 매입하면서 청등도 소유가 됐다.

신의도와 곡두도 매매 계약서. 2025.7.25/뉴스1 ⓒ News1 조영석 기자

마을 회관에 깊숙이 보관되고 있는 계약서에는 '금 오십만 원을 수령하고, 영구히 귀리(청등도)에 양도 한다'고 쓰여 있다. 소화 (昭和) 11년 3월 21일의 일이다. 소화 11년은 2차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36년으로, 나치 독일의 베를린 하계 올림픽에서 손기정 선수가 마라톤 경기 금메달을 땄던 해다.

청등도. 주민들의 임시 거주지가 선착장을 따라 마을처럼 형성돼 있다. 2025.7.25/뉴스1 ⓒ News1 조영석 기자

마을 이장 김충식 씨(78)는 "신의도와 곡두도는 청등도 사람들이 매년 미역 채취로 가구당 수천만 원의 소득을 올리는 귀한 섬"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20여 년 전 청등도와 관매도의 어촌계를 분할하면서 관할권을 놓고 분쟁이 있었으나 매매 계약서가 발견되면서 분쟁이 말끔히 사라졌다"고 전했다.

팔려 온 신의도와 곡두도가 청등도의 보물섬이 됐다.

/여행 안내/

우럭이나 농어·감성돔·장어 등 바다낚시의 황금어장

청등도 앞 솔섬. 2025.7.25/뉴스1 ⓒ News1 조영석 기자

진도항에서 하루 한차례 섬사랑 9호가 오전 9시 출항한다. 슬도·독거도·탄항도·혈도를 거쳐 10시30분쯤 죽항도에 닿는다. 이름도 예쁜 많은 섬 들을 경유하는 만큼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목적지까지 꽤 낭만적인 뱃길이 된다. 면 소재지인 하조도 창류항에서도 오후 3시 20분(하루 한차례) 죽항도를 가는 섬사랑 9호가 출항한다. 하지만 진도항 배편과 달리 창류항의 출항 시간은 유동적이다. 하선 승객이 없으면 건너뛰면서 출항 시간이 앞당겨진다.

생필품을 파는 가게나 숙박시설은 없다. 대신 마을회관을 실비로 빌려 이용할 수 있다. 우럭이나 농어·감성돔·장어 등의 바다낚시가 잘된다. 섬을 둘러보는 데는 1시간이면 넉넉하다.

kanjoys@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