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전남대 후문 상가에 쌓인 모래주머니…"40년간 7차례 침수"
"배수 안 돼" 반복된 피해에 분통…행정 대응에 불신
"에어컨도 고장 났고, 수리기사는 한 달 걸린다고 한다"
- 박지현 기자
(광주=뉴스1) 박지현 기자 = "순식간에 비가 들이치면서 악기가 둥둥 떠다녔어요. 이제 막 치우기 시작했는데 또 비가 쏟아지네요."
18일 오후 광주 북구 전남대 후문 앞 상가 일대. 전날 시간당 76㎜ 넘는 폭우가 덮친 이곳은 하루가 지난 지금도 여전히 피해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망가진 가구가 인도에 나뒹굴고 젖은 바닥을 말리려는 선풍기 바람이 상가 안을 휘돌았다.
이곳에서 40년간 악기점을 운영해 온 윤백한 씨(64)는 "이번이 벌써 7번째 침수"라고 말했다.
가게 앞에는 물에 젖은 첼로 케이스와 리코더, 기타 등이 바닥에 펼쳐져 햇볕에 말리고 있었고 안쪽에선 직원들이 분해한 리코더를 닦고 있었다.
윤 씨는 "악기는 소리가 안 나면 다 쓸모없다. 다 버려야 할 수도 있다"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어 "피해 금액이 가장 컸던 때는 3억 6000만 원이었는데 지금껏 받은 보상은 유리창 깨졌을 때 받은 200만 원이 전부"라고 했다.
그는 800만 원대 드럼 세트 세 점을 테이블 위에 옮겨놓고 "오늘 또 비 온다기에 미리 올려놨는데 이걸 팔 수나 있을지 모르겠다"고 걱정했다.
25년째 이 일대에서 안경점을 운영 중인 이정철 씨(60)도 이날 오전부터 복구에 나섰다. 의자와 집기를 햇볕에 말리고 가게 앞엔 모래주머니를 쌓았다.
이 씨는 "북구청 사거리 일대는 배수가 전혀 안 됩니다. 아무리 천재지변이라 해도 그에 맞는 대책은 있어야 하지 않겠냐"고 말했다.
그는 전날 가게 전원을 끄러 돌아오던 중 횡단보도에서 물살에 휩쓸렸다.
"길가의 나무를 붙잡고 겨우 버텼어요. 손 다 까지고, 무릎도 다쳤습니다"며 그가 들어 보인 손엔 생채기가 가득했고 무릎에는 붕대가 감겨 있었다.
60대 여성 A 씨는 통닭집을 정리하고 있다. 전자 통닭기계에 낀 흙을 삽으로 퍼내 대야에 담았고 피복이 벗겨진 기계에는 임시방편으로 테이프가 감아뒀다.
가게 안에는 드라이기 두 대가 젖은 기계를 말리고 있었고, 한쪽으로 밀린 탁자 위에는 의자들이 겹겹이 쌓여 있었다.
A 씨는 "에어컨도 고장 났고, 수리기사는 한 달은 걸린다고 한다. 언제 영업을 재개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고개를 떨궜다.
북구청 사거리 일대는 지난 2020년 8월에도 집중호우로 큰 침수 피해를 입은 바 있다.
이후 이 일대는 문흥동성당, 신안교 주변 등과 함께 상습 침수 지역으로 지정돼 행정안전부의 '우수저류시설 설치사업' 대상에 포함됐다. 국비가 지원돼 침수 예방 공사가 진행 중이지만 이번 폭우에도 물난리를 피하지 못했다.
윤백한 씨는 "40년 장사하며 7번 잠겼다. 침수가 숙명이라면 행정은 그 숙명을 바꿔야 할 의무가 있는 거 아니냐"고 반문했다.
전날 누적 강수량은 광주 북구 운암동이 426.4㎜를 기록했다. 풍암 425.5㎜, 과기원 420.0㎜, 조선대 407.5㎜, 남구 388.0㎜, 광산 319.0㎜ 등 역대급 비가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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