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 30년 전 검찰 발언에 국민들 분노"
박강배 5·18기념재단 상임이사 "5·18특별법 제정 운동의 시작"
- 이수민 기자
(광주=뉴스1) 이수민 기자 = "30년 전 그때를 잊을 수가 없죠. 특히 지난해 다시 한 번 내란이 벌어지는 것을 보며 분노가 치밀었습니다."
17일 오후 만난 박강배 5·18기념재단 상임이사는 30년 전 광주를 떠올리며 눈시울을 붉혔다.
30년 전인 1995년 7월 18일 광주는 분노와 눈물로 가득찼다. 그해 봄은 여느 해보다 뜨거웠다. 전년도인 1994년 5·18민중항쟁 제14주년 기념식에서 터져 나온 '진상규명', '학살 책임자 처벌' 요구는 문민정부 등장과 맞물려 단죄 가능성에 대한 기대감으로 확산됐다.
1994년 5월 13일 5·18민주화운동 피해자 322명은 전 대통령 전두환과 노태우 등 5·18 관련 책임자 35명을 내란과 내란 목적 살인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
그러나 김영삼 정부하의 검찰은 "진상규명은 훗날의 역사에 맡기자"는 입장을 고수했다. 그리고 1995년 7월 18일,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며 '공소권 없음' 결정을 내렸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며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명시하고 있어요. 그런데 그 조항을 정면으로 위반한 이들을 감싸준 결정이, 제헌절 바로 다음날 발표됐다는 건 참 아이러니한 일이죠."
검찰의 조사 결과는 전국적인 분노로 번졌다. 학생과 교육계, 언론계, 여성계, 종교계, 법조계, 의료계, 노동계 등 들불같은 움직임이 시작됐다.
이들은 '현행법으로 처벌할 수 없다면 특별법을 제정해서라도 처벌하자'며 5·18특별법 제정운동을 벌였다. 전국 곳곳에서 시위와 집회, 삭발, 단식, 서명, 시국 선언 등 다채로운 방법이 시도됐다.
당시 박강배 상임이사 역시 그 현장에 있었다. 대학을 막 졸업하고 노동운동 대신 5·18운동단체를 택한 그는 광주전남지역 시민사회단체 136개가 모인 '5·18학살자 재판 회부를 위한 광주전남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의 간사로 실무를 맡았다.
"당시는 전국에서 130만 명이 넘는 시민들이 서명에 참여했어요. 광주만 해도 33만 명, 해외에서도 2만여 명이 동참했죠."
이러한 투쟁 과정 중 1995년 10월 19일 노태우의 비자금 사건이 폭로되면서 정세는 급변했다. 11월 노 전 대통령이 구속됐다. 김영삼 대통령은 5·18특별법 제정을 수용할 것을 명령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전국민적 저항에 부딪힌 검찰은 95년 11월 말, 12·12와 5·18, 비자금 사건에 대한 재수사에 나섰고 12월 3일 전두환이 구속됐다.
1995년 12월 21일 마침내 '5·18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됐고, '헌정질서 파괴 범죄의 공소시효 등에 관한 특례법'도 제정돼 공소시효가 정지됐다.
박 상임이사는 "만약 그때 그냥 기소됐더라면 학살자 위주의 재판으로 끝났을지도 모른다"며 "'공소권 없음' 결정이 오히려 국민적 분노를 끌어냈고, 진실규명을 위한 발판이 된 셈"이라고 회고했다.
학살책임자들을 단죄할 수 있는 길이 열리던 그 순간 박강배 상임이사를 비롯한 5·18공대위 광주 상경투쟁단은 누구보다 춥고 어두운 곳에서 희망을 기다리고 있었다.
박 상임이사는 30년 전을 기억할 때 가장 먼저 5·18특별법이 제정되던 순간을 생생하게 떠올렸다. 상경투쟁단은 그때 국회 앞 도로의 버스 안에 갇혀 있었다.
"버스 안에서 꼼짝도 못하고 있었는데 영등포경찰서장이 버스로 올라와 '여기 왜 이러고 계십니까. 법이 제정됐습니다'라고 말해줬어요. 그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졌죠. 너무도 감격스러웠어요. 절대 잊을 수 없는 순간입니다."
법이 제정된 뒤 공대위는 검찰 수사에 협조하며 증인과 증거를 모아 전달했다. 재판장 방청 당시 박강배 상임이사는 인상적인 장면도 목격했다.
"수의를 입은 노태우가 전두환의 손을 재판장 몰래 살짝 잡는 걸 봤어요. 둘 다 끝까지 사과하지 않았죠. 유죄 판결을 받고도, 사면을 받고도, 죽기 전까지 피해자와 국민에게 사과 한마디 없었어요."
30년이 지난 지금, 박강배 상임이사는 당시의 '사면' 결정이 결국 민주주의의 위기를 다시 불러왔다고 말한다.
그는 학살책임자들이 반성하거나 사과하지 않았는데도 정치적 상황에 의해 사면을 받았는데, 이것이 후대에서 또 다시 내란을 겪게 된 계기 중 하나라고 봤다.
그는 "지난해 12·3 계엄사태를 겪으면서 누구보다 경악하고 분노했다"며 "당시 반성과 사과, 재발방지 대책없이 사면한 것이 잘못이다"고 지적했다.
박강배 상임이사는 앞으로의 30년을 위해서 이제라도 분명한 결과가 제시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45년 전 사람이 사람을, 군인이 시민을, 국가가 국민을 죽이는 범죄가 발생했어요. 이를 형식적으로 법적 단죄는 했지만 역사적 교훈으로 삼지는 못했습니다. 아픈 역사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이제라도 반드시 진상규명과 재발방지 대책이 나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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