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인 '인육' 먹이고 학살 만행…'밀리환초' 진상 규명해야
강제동원 640명 명단 공개…99%가 전남 출신
후생노동성 보관하다 국립 공문서관 이관 중 발견
- 이수민 기자
(광주=뉴스1) 이수민 기자 = 1945년 태평양 마셜 제도 '밀리환초'에서 일어난 조선인 학살 사건의 진상규명과 피해자 명예회복을 위해 관련 자료의 전면 공개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사단법인 일제강제동원 시민모임은 13일 오전 광주시의회에서 '밀리환초 강제동원 명단 공개'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밀리환초 사건'은 태평양 전쟁 말기 마셜 제도 동남쪽 끝에 위치한 밀리환초에 강제동원됐던 조선인들이 일본군의 잔혹행위에 집단으로 저항했다가 학살당한 사건이다.
기자회견은 일본 강제동원 연구자이자 사학자인 다케우치 야스토(竹内康人) 씨가 진행했다. 그는 인육 사건과 집단저항 학살사건 등 밀리환초에서 사망한 조선인 사망자 218명의 명단을 지난해 공개한 바 있다.
이날 다케우치 씨는 최근 일본 도쿄 소재 국립공문서관에서 발굴한 남태평양 마셜제도 강제동원 명부의 존재를 새롭게 밝혔다.
공개된 218명의 사망자를 포함해 일본 정부가 작성한 '피징용 사망자 연명부', '해군 군속 신상조사표' 등을 통해 새로 파악한 밀리환초 강제동원 피해자 640명 명단이 드러났다. 640명의 피해자 중 겨우 5명을 제외하곤 전부 전남 지역에서 차출된 피해자였다.
특히 태평양전쟁희생자광주유족회가 1992년 일본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일명 '광주천인소송' 원고 중 23명(피해자 기준 25명)이 밀리환초에서 동원된 피해자로 조사됐다.
그중에는 구례와 광산에서 한 집에서 형제가 동원돼 피해를 입은 경우도 있었다.
또 일본 국립공문서관에서 발견된 '반도공원 퀘젤린·루오트 옥쇄자(玉碎者) 명부'에는 677명의 인적이 기록돼 있는데, 이 피해자 중에도 다수가 전남, 경기, 경상에서 동원된 경우다.
여기서 '반도'는 한반도 즉 조선을 뜻한다. 해당 명부에는 피해자의 이름과 해당 번호, 동원된 날짜와 사망한 날짜, 동원 당시 탔던 배의 이름, 주소, 연락처, 동원 후 받지 못한 미지급금의 액수 등이 담겼다.
800여 명의 '밀리환초 섬 사망자 명부' 세 권도 최근 확인했는데 이는 일본정부가 오랫동안 후생노동성에서 보관하고 있다가 일본 국립 공문서관으로 이관하던 중 알려지게 됐다.
이중에도 200여 명이 한국인 피해자로 확인됐다. 문서에는 광양·보성 등 피해자의 출신 지역명과 사인, 날짜 등이 명시됐다.
또 96명의 '괌(Guam) 옥쇄자 명부' 중 75명이 전남, 21명은 강원에서 동원된 피해자였다.
다케우치 씨는 해당 자료들이 일본서 오랫동안 은폐됐다가 최근에서야 공개됐음을 지적했다.
그는 "이런 사건이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는 것은 여전히 식민지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음과 같다"며 "밀리환초 사건은 과거의 일이 아니고 현재 진행 중으로 남아있다. 진상규명과 피해자 명예회복, 정신계승, 유골 반환 등 후속적인 절차가 필요하고 이를 위해 자료의 전면 공개가 우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본군은 1945년 3월 1일 밀리환초 섬 중 하나인 체르본 섬에서 조선인들을 반란죄로 총살했다.
당시 밀리환초에는 1942년 초 전남도에서 동원된 800~1000여 명이 군속 신분으로 비행장 활주로 건설 등 일본군의 군사시설 구축 공사에 동원돼 있었다.
1944년부터 미군의 해상 봉쇄로 보급로가 끊어지면서 고립되자 섬 곳곳으로 분산 배치해 현지 자활(자력갱생)을 추진하고 있었다.
증언에 따르면 1945년 초 일본군이 조선인 2명을 살해한 인육을 '고래 고기'라고 속여 배급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조선인 군속들은 일본군 감시병 11명을 살해하고 탈출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거사를 실행하던 중 일본군 일부가 도주해 옆 섬에 있는 일본군에 이 사실을 알리면서 중무장한 일본군 토벌대에 의해 대다수 조선인이 밀리환초에서 반란죄로 총살됐다.
breath@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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