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칫밥'에도 3년 동안 25㎝ 머리 기른 'MZ 男 공무원'…장발 사연은

박조은 광주 광산구 주무관…소아암 환자 위한 머리카락 나눔 동참
간암 어머니에게 간이식 경험도…"살면서 받은 사랑 보답하고 싶어"

어린 암 환자를 위한 머리카락 나눔을 위해 3년째 머리를 기른 박조은 광주 광산구 보건소 주무관(31·간호직 7급)이 6일 취재진과 대화하고 있다. 2025.2.6/뉴스1 ⓒ News1 이승현 기자

(광주=뉴스1) 이승현 기자 = 딱딱한 조직문화를 가진 공직사회에서 'MZ 세대' 남성 공무원이 3년간 머리를 기른 사연이 화제다.

임용 5년 차인 박조은 광주 광산구 보건소 주무관(31·간호직 7급)은 25㎝에 달하는 장발의 소유자다. 긴 머리를 뒤로 묶은 이른바 맨번(Man bun)을 하고 다니는 그는 공직사회에서 찾아보기 힘든 스타일로 그가 가는 곳마다 이목이 쏠린다.

사람들의 부담스러운 시선에도 박 주무관이 머리를 기른 지는 어느덧 3년째다.

장발을 고집하는 이유는 뭘까.

간호학도였던 박 주무관은 대학병원 소아병동에서 실습하며 백혈병과 소아암으로 치료 중인 어린아이들을 매일 마주했다. 독한 항암 치료로 인해 머리카락이 빠진 거울 속 자기 모습을 본 아이들은 하루도 눈물이 마를 새 없었다.

수시로 찔러대는 주삿바늘에 척추와 팔은 온통 멍투성이였다.

견디기 힘든 고통을 겪으며 가장 힘든 시간을 보냈을 아이들이지만 그런 와중에도 병실을 찾은 박 주무관을 향해 한결같이 함박웃음을 지어줬다.

모든 것이 낯설고 서툰 실습생이었던 그는 아이들에게 오히려 위안을 얻었다.

박 주무관은 "고맙기도 하지만 해줄 수 있는 게 없어 미안했다"며 "한창 예쁠 나이의 아이들이 밖에서 뛰어놀지 못한 채 위축되고 눈물을 머금고 비니를 쓰고 생활하는 것이 너무 안타까웠다. 도움이 될 방법을 찾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입사 후 여자 동기생이 하고 있던 '어린 암 환자를 위한 머리카락 나눔 운동(어머나운동)'을 알게 됐다"며 "민감한 피부로 100% 인모로 된 가발만 써야 하는 아이들을 위해 망설임 없이 동참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어린 암 환자를 위한 머리카락 나눔을 위해 3년째 머리를 기른 박조은 광주 광산구 보건소 주무관(31·간호직 7급)의 모습. 2025.2.6/뉴스1 ⓒ News1 이승현 기자

그는 공무원으로 임용된 이듬해인 2022년 새해 계획으로 머리를 길러 기부하기로 마음먹었다.

짧은 머리 탓에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아이들에게 필요한 가발을 꼭 만들어 주고 싶었다.

의지는 불타올랐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사기업도 아닌 공직사회에서 장발의 남성 공무원은 곱지 않은 시선이 뒤따를 수밖에 없었다. 용모를 단정히 해 품위를 유지해야 한다는 복무규정 상 따가운 눈초리가 많았다. 머리카락이 뻗치는 등 길이가 애매한 구간이 됐을 땐 단정함에 흠이 될까 묶이지도 않는 머리에 매번 젤을 듬뿍 발라 바짝 고정하고 다녔다.

이런 그를 본 이들에게 일일이 머리를 기르는 목적을 이야기해 납득시키는 것도 보통 일은 아니었다.

5분이 채 걸리지 않았던 머리 말리는 일은 20분 이상으로 늘었다. 파마와 염색은커녕 머릿결 손상이 없어야 기부할 수 있는 특성상 처음 해보는 빗질과 헤어팩을 사용한 관리까지 하나도 쉬운 게 없었다.

어린 암 환자를 위한 머리카락 나눔을 위해 3년째 머리를 기른 박조은 광주 광산구 보건소 주무관(31·간호직 7급)이 6일 취재진과 대화하고 있다. 2025.2.6/뉴스1 ⓒ News1 이승현 기자

박 주무관은 '베풀어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머리 기르는 일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갑작스러운 어머니의 암 투병으로 제가 간이식을 할 때 아무 조건 없이 금전적 도움을 주신 교회분들부터 응원해 준 지인들까지. 살아오면서 셀 수 없는 도움을 받아 온 것 같다"며 "그런 사랑을 어떤 형태로든 꼭 누군가에게 보답하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15일 세계 소아암의 날을 기념해 3년 만에 건강한 머리카락을 잘라 기부한다. 그의 모발은 특수 가발 제작에 쓰인다.

박 주무관은 "제가 몸담은 감염병관리과 업무 특성상 이틀에 한 번꼴로 출장이 잦았는데, 만나는 분들께서 취지에 공감해 주고 응원도 많이 해줘 버틸 수 있었다"고 감사를 전했다.

이어 "홀가분하겠지만 짧은 머리의 제 모습이 기억나지 않아 낯설기도 할 것 같다. 기부한 뒤 다시 머리 기르는 것을 시도할 생각도 있다"며 "저를 계기로 인식이 변화돼 공직사회에서 남성 공무원들도 누구나 쉽게 동참할 수 있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pepper@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