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RPC서 싸게 매입해 공공비축미 수매 '차익'…제재 못하나

농림부 '공공비축미곡 매입요령'에 관련규정 없어
일부 대농 수천만원 챙겨…제도 허점 개선 목소리

공공비축미 수매.(기사의 특정사실과 관련없음) /뉴스1 ⓒ News1

(광주=뉴스1) 박영래 기자 = 농협미곡처리장(RPC)서 싼값에 벼를 매입해 비싼 가격에 공공비축미로 수매하는 편법이 드러나면서 공공비축제도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작성해 전국 지자체, 농협 등에 고지한 '2024년산 공공비축미곡 매입요령' 어디에도 관련 제재 규정은 찾아볼 수 없는 상황이다.

농민들은 일부 대농을 중심으로 이뤄지는 이같은 편법적인 벼 거래 행위가 확산하는 것을 막기 위한 제도적인 개선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26일 <뉴스1>이 확보해 분석한 농림축산식품부의 '2024년산 공공비축미곡 매입요령' 지침에는 공공비축미 매입개요를 비롯해 △매입계획 수립 및 통보 △매입준비 △매입실시 △행정사항 △문답자료 등이 꼼꼼하게 적시돼 있다. HWP한글파일 78페이지에 이르는 방대한 내용이다.

하지만 이런 지침에도 불구하고 농협RPC에서 싼값에 대량의 벼를 매입한 뒤 웃돈을 얹어 공공비축미로 수매하는 편법을 규제하는 조항은 단 한 줄도 없다.

'농가별 물량 조정' 조항에서는 △읍면동장은 공공비축미곡 매입물량을 배정받은 농가가 개인사정 등으로 매입에 응하지 못하는 경우, 매입을 희망하는 다른 농가나 리‧통에 전배 조치 등 배정량 조정을 할 수 있고 △전배 및 배정량 조정에도 불구하고 매입물량 확보가 어려우면 반납조치하라고 규정하고 있다.

6항의 '부정매입 방지' 규정에서는 △정부가 2024년도 시군별 매입대상 품종으로 사전 지정한 품종 외에 다른 품종을 출하하거나 약정 이외의 품종을 혼합해 출하하는 행위 △아름‧안다벼, 보람찬 등 초다수계 품종을 일반계 벼로 위장하거나 혼합해 출하하는 행위 △구곡과 밭벼를 신곡‧논벼로 위장해 출하하거나 신곡‧논벼와 혼합해 출하하는 행위를 부정행위로 규정하고 있을 뿐이다.

각급 행정기관의 장이나 농관원 사무소장, 농협조합장, 영농회장은 이같은 부정매입 방지를 위해 수시확인과 지도를 당부하고 있지만 최근 전남 장성에서 드러난 농민-RPC 간 공공비축미 편법거래에 대한 제재규정은 담겨 있지 않았다.

장성농협통합RPC는 농민 A 씨와 톤백(800㎏들이 대형 벼 포대) 107개 판매계약을 체결하고 11월 18일 황룡DSC(벼 건조저장시설)에서 인출작업을 진행했다.

물량을 수령한 A 씨는 이 벼를 곧바로 진행된 공공비축미 수매벼로 내놨다. A 씨는 20㏊(6만평) 논농사를 짓는 대농(大農)으로 알려져 있다.

A 씨는 뉴스1과 통화에서 "논에 타작물을 재배하면서 당초 배정받은 공공비축미 물량이 부족해 이를 농협RPC에서 매입해 수매했다"고 설명했다.

공공비축미 수매./뉴스1 ⓒ News1

A 씨와 농협RPC 간 이같은 대량의 벼 거래 사실이 알려지면서 농민들의 비난은 이어지고 있다.

RPC에서 싼값에 벼를 구입해 공공비축미로 재판매하면서 이를 통해 톤백 1개당 20만 원 가까이 차익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A 씨 역시 차익실현에 대해서는 인정하고 나섰다. 그는 전화통화에서 "40㎏ 한포대당 대략 8000원 정도 차익이 남기 때문에 그렇게 벼를 사서 수매했다"고 밝힌 바 있다.

2023년 기준 공공비축미 매입가격은 40㎏(1등급 기준) 1포대에 7만120원으로 시중 쌀 수매가에 비해 1만 원가량 높았다.

때문에 RPC에서 벼를 매입해 공공비축미로 수매하면 톤백 하나당 최소 16만 원에서 최대 20만 원의 차익을 실현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A씨는 지난해 같은 방식으로 장성농협통합RPC에서 톤백 35개를 매입(총 매입가 4200만 원)한 데 이어 올해도 톤백 107개를 매입했으며, 1억 원이 넘는 대량의 벼 거래를 통해 A씨가 얻는 차익은 2000만 원에 이를 것이란 분석이다.

농민들은 제도개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장성의 한 농민은 "RPC에서 벼를 사거나 이웃 농민들한테 벼를 매입해 공공비축미로 수매해도 문제가 될 게 없다는 제도적인 허점을 대농들이 파고들어 돈을 버는 것"이라며 "공공비축미 제도의 근간을 흔드는 잘못된 행위"라고 꼬집었다.

한편 농림부 지침에 공공비축미 관련해 불법부정한 행위를 한 RPC에 대한 제재규정은 일부 담겨 있다.

지침에는 △산물벼 인수의향서를 제출한 업체라도 양곡 유출사고, 불법·부정한 양곡 매매, 인수대금 납부 가능 여부 등을 고려해 RPC 자체인수 대상에서 제외할 수 있고 △산물벼 인수도 및 공매 조건 위반업체는 위반 사실 확인 후 1년간 산물벼 및 정부판매벼 인수 대상에서 제외한다고 적시하고 있다.

yr2003@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