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유신독재 첫 비판 전남대 '함성지 사건' 손배소 승소…42명 피해 인정

고 김남주 시인 등 당사자들과 가족 등 42명 피해 인정
재판부 "경찰 불법 체포·구금·고문 인정…손해 배상해야"

광주 지방법원./뉴스1 DB

(광주=뉴스1) 최성국 기자 = 박정희 유신독재를 비판하며 민주주의 운동의 불씨를 댕긴 '함성지 사건' 당사자들과 가족들이 정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승소했다.

광주지법 제14민사부(재판장 나경)는 이강, 김정길, 김용래, 이평의, 윤덕연, 고 김남주 시인과 그 가족 등 42명이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고 8일 밝혔다.

이들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유신체제를 처음으로 비판한 '함성지 사건'의 주역들이다.

당시 전남대학교 대학생이었던 이들은 1972년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유신헌법을 비판하는 내용의 '함성'지를 만들어 광주 여러 학교들에 배포했다.

정보국 경찰관들은 이들을 국가보안법위반 등의 혐의로 불법으로 체포해 감금하고 고문했다. 1973년 3월19일 연행된 이강·고 김남주 시인은 284일, 김정길씨는 190일간, 김용래·이평의씨는 173일, 윤덕연씨는 167일간 각각 구금됐다.

경찰은 이들을 감금·고문하며 거짓 자백을 받아냈고, 재판으로 넘겨진 이들은 항소심을 거쳐 짧게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에서 길게는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함성지 사건은 언론에 보도되지 않았으나 고 홍남순 변호사 등 재야인사들이 재판에 대거 참여하면서 알려졌고 반유신운동의 계기가 됐다.

고 김남주 시인./사진제공=김남주 기념사업회ⓒ News1

재판부는 경찰이 자행한 불법수사를 인정하고, 이들과 그 가족들에게 적게는 398만원에서 많게는 11억5975만원을 배상할 책임이 정부에 있다고 인정했다.

김용래씨의 경우 1984년 5월 벌교삼광여자고등학교에 임사교사로 임용됐음에도 이 사건 재판 결과를 이유로 같은해 8월 임용 취소된 점을 바탕으로, 11억3781만원의 위자료를 인정했다.

또 1981년 3월 중등학교 2급 정교사 자격을 취득하고 사범대에 재학 중이던 윤덕연씨에 대한 위자료 등을 포함한 11억5975만원의 배상금 지급을 주문했다.

재판부는 "이들은 경찰관들에 의해 영장 없이 강제 연행돼 불법 구금된 상태로 고문, 가혹행위를 당해 공소사실 등에 대해 자백한 것으로 보인다"며 "피해자들은 상당 기간 외부와의 접촉이 차단된 상태로 조사를 받으면서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보장받지 못했고, 압수물들은 불법수사 과정을 통대 수집된 증거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이어 "경찰 조사 단계의 불법구금이나 수사관들의 폭행, 협박에 따른 상태에서 자백이 이뤄진 점을 종합하면 경찰관들이 헌법과 형사소송법 규정을 위반해 피해자들을 불법체포·구금하고 증거를 조작해 재판을 받게 했고, 그 결과 피해자들이 장기간 구금됐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정부 소속 공무원들이 범죄수사, 처벌이라는 외관만 갖추고 있을 뿐 실질적으로는 불법행위를 저지른 것이기에 피해자와 그 가족들이 입은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강조했다.

stare@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