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락·배추는 되고 쌀·김치는 안된다?…농사용전력 갈등 이유는

한전, 저온저장고에 가공품 보관 농민에 위약금 부과
농민들 "사용규정 애매"…정치권 공급약관 개선 촉구

농산물 소형저온저장고./뉴스1 ⓒ News1

(나주=뉴스1) 박영래 기자 = "나락이나 배추는 보관해도 되고, 가공품인 쌀과 김치는 보관하면 안된다?"

농가에서 애용하는 소형 농작물 저온저장고의 농사용 전력 사용을 놓고 농민들과 한전의 갈등이 확산하고 있다.

김치 등을 보관하고 있다가 한전의 단속에 걸려 수십만원의 위약금을 부과받은 농민들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는 가운데 정치권은 규정이 애매한 농사용전력 사용약관 개정을 촉구하고 나섰다.

7일 한전의 '저온보관시설 및 단속 현황'에 따르면 저렴한 농사용전력을 사용하는 소형 농작물 저온보관창고는 전국에 13만9328개가 운영중인 것으로 집계됐다.

농사용 전기는 영세 농어민 지원을 위해 도입된 것으로, 타 용도 대비 현저히 낮은 요금을 적용하고 있다. 지난해 기준 평균 판매단가는 ㎾h당 농사용은 56.9원, 일반용은 139.1원이다.

이처럼 농사용 전력이 상대적으로 저렴해 농가에서는 이를 부정사용하는 사례가 늘면서 한전은 농사용전력 불법사용에 대한 단속을 벌여 지난해 126건을 단속해 5억9600만원의 위약금을 부과했다.

앞서 2021년 34건, 9700만원과 비교하면 지난해 전기료 인상 등에 따른 농가의 부정사용이 크게 증가했던 것으로 분석됐다.

문제는 소형 농작물 저온보관창고에 농산물 가공품을 보관했다는 이유로 위약금을 부과받은 농민들이 한전의 조치에 강하게 반발하면서 파문이 확산하고 있다.

한전 영업업무처리지침 제7장에서는 '농작물 및 보관 목적의 단순 가공한 농작물만 보관 가능하다'고 적시하고 있다.

박형대 진보당 전남도의원(장흥1)은 6일 농민단체와 함께 나주 빛가람혁신도시에 위치한 한국전력공사를 찾아 농사용 전력 기본공급약관 개선을 촉구했다. ⓒ News1

한전은 이를 근거로 농작물만 보관해야 하는 저온저장고에 김치 등 가공식품을 보관한 농민들을 무더기 적발했다.

하지만 관련 지침에는 무엇이 농작물의 원물이고 무엇이 가공품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 없는 상황이고, 가령 나락과 배추는 허용하는 반면 쌀과 김치는 위약금 부과 대상인 가공품으로 분류하면서 농촌현장의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

특히 단속에 대한 구체적인 근거 규정이 없는 것도 심각한 문제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서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농가에서 농부 손으로 재배한 배추를 이용해 직접 담근 김치가 단순 가공이 아니라면 지나가는 소도 웃을 일"이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꿎은 농민들만 피해를 보고 있다"고 꼬집었다.

서 의원은 "한전의 애매한 규정에 근거한 위약금 부과로 인해 농림축산식품부의 소형 농작물 저온보관창고 건립 및 개보수 지원 사업의 취지가 무시됐다"고 지적했다.

농민들과 정치권은 한목소리로 더이상의 혼란을 막기 위해 농사용 전력 사용 지침에 대한 조속한 개선을 요구했다.

박형대 진보당 전남도의원(장흥1)은 "현재 약관은 50년 전 만들어진 것으로 6차 산업으로 진화되고 있는 농업현실과 맞지 않아 애먼 농민들만 계약위반자로 만들고 있다"면서 제도개선 필요성을 강조했다.

박 의원은 "기본공급약관은 산업통상부장관의 인가 또는 명령에 의해 변경될 수 있기 때문에 정부차원의 시급한 논의가 필요하다"며 "한전은 조속히 정부와 협의해 농사용전력에 대한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에 대해 한전은 "향후 농사용 전기 위약 처리와 관련해 변화하는 농어업 현장을 반영하고 농어민의 목소리를 충분히 경청하면서 구체적인 제도개선 대책 마련에 착수해 이를 철저히 시행할 계획"이라고 해명했다.

yr2003@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