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전남도청 앞 장갑차 위 조준사살 피해자 신원 확인

1963년생 해남 출신 목공소 견습생 김준동씨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 발표

5‧18 민주화운동기록관은 9일 1980년 5월 광주 민중항쟁을 기록한 영상을 공개했다. 이날 처음으로 공개된 영상은 80년 5월20일부터 6월1일까지 국군통합병원과 적십자병원 환자 치료 상황, 전남도청 기자회견 등 광주 일대와 근교를 촬영한 기록이다. 사진은 전남도청을 장악한 계엄군의 모습.(5.18민주화운동기록관 제공 영상 캡처)2018.5.9/뉴스1 ⓒ News1 박준배 기자

(광주=뉴스1) 고귀한 이수민 기자 =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전남도청 앞 집단발포 현장에서 조준사격에 의해 장갑차 위에서 사망한 청년의 신원이 확인됐다. 사망자는 1963년생 전남 해남 출신의 목공소 견습생인 김준동씨다.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는 12일 대국민 보고회를 통해 이같은 내용의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1980년 5월21일 오후 2시 도청 앞 집단발포 당시 현장에서 계엄군 저격수인 11공수여단 한모 일병에 의해 장갑차 위에 있던 한 청년이 사망했다.

하지만 이 청년의 시신이 많이 훼손돼 신원 파악에 어려움이 있었다.

조사위는 사건 당시 현장사진을 추가로 발굴하는 등 조사과정을 통해 사망자가 1963년생 전남 해남 출신의 목공소 견습생인 김준동씨임을 공식 확인했다.

위원회는 지난해 5월 대국민보고 당시에도 전일빌딩 옥상에 저격수로 배치돼 장갑차 위의 청년 한 명을 저격해 사망케 했다는 가해 당사자의 인정 진술을 확보해 발표한 바 있다.

이후 저격당한 피해자의 신원을 확인하기 위한 조사를 진행해 온 결과 저격된 직후의 상황을 촬영한 조선일보 이영배 기자의 사진 2점을 추가 발굴하고, 이 사진과 적십자병원에 안치돼 있는 시신들의 사진 중에 일치된 피해자가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정밀 분석해 피해자의 신원을 확인할 수 있었다.

김준동씨는 처음에는 5·18 관련 행방불명자로 신고돼 인정받았으나 소재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가 2002년 광주시에서 추진한 '행불자 소재찾기 사업' 및 무연고 사망자 11명의 유전자 검사에 의해 사망자로 그 신원이 확인됐다.

김준동씨는 처음 '염동휴'의 이름으로 매장됐다가 염동휴의 생존이 확인됨에 따라 신원미상의 무명열사로 5·18구묘지에 안장돼 있었다.

염동휴의 이름으로 작성된 신원미상의 검시기록에는 '후두 사입구 5에서 6센치, 전두 사출구 8에서 9센치'로 기록돼 있어 현장에서 사망 당시 상황을 목격한 많은 사람들의 증언은 "얼굴이 완전히 일그러져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다"는 다수의 증언과도 일치하고 있다.

즉 김준동씨는 행방불명자에서 사망자 염동휴로 오인됐다가 염동휴의 생존이 확인돼 다시 무명열사로 분류됐고, 다시 위원회 조사를 거쳐 최종 사망자로 파악됐다.

조사위 관계자는 "이 사실은 현장의 저격수로 참여한 가해당사자들을 특정하고 저격의 명령과 실행 과정에 대한 조사를 하던 중 사건의 전말을 확인한 최초의 사례"라면서 "위원회는 1980년 5월21일 도청 앞 집단발포의 최초명령과 지시, 실행 과정 등에 대해 계속하여 실체적 진실을 규명해 갈 것이다"고 말했다.

go@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