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을 위한 행진곡' 5·18 공식 기념곡 지정 여전히 '제자리걸음'

수 차례 법안 발의됐으나 번번이 국회 문턱 넘지 못해
"국민의힘 말뿐인 '광주 동행'…법안 상정 진정성 보여야"

지난 18일 오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열린 제41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내빈들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고 있다. 2021.5.18/뉴스1 ⓒ News1 황희규 기자

(광주=뉴스1) 이수민 기자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동지는 간데없고 깃발만 나부껴 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5·18민주화운동 제41주년 기념식이 열린 지난 18일. 행사 말미에 '임을 위한 행진곡' 반주가 울려 퍼졌다.

기념식에 참석한 김부겸 국무총리를 비롯해 여·야 정치인, 5·18 유족 등 참가자들은 자리에 서 주먹을 흔들며 '제창'했다.

무대 옆 전광판에는 전 세계 곳곳의 '이웃'들이 한국어 가사를 따라 부르는 모습이 상영됐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2017년 5월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5년째 '제창'되고 있다.

하지만 법으로 인정된 '공식 기념곡 제창'은 아니다. 공식 기념곡 지정을 위한 법률안이 여전히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어서다.

22일 국회 등에 따르면 임을 위한 행진곡의 5·18 공식 기념곡 지정이 수년째 제자리걸음을 걷고 있다.

2013년 6월 공식 기념곡 지정을 촉구하는 결의안이 여야 국회의원 158명의 찬성으로 국회를 통과한 이후 9년째다.

2016년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과 김동철 바른미래당 의원, 이개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각각 임을 위한 행진곡의 5·18 기념식 제창과 공식 기념곡 지정 등이 담긴 내용으로 법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개정안은 당시 자유한국당 등의 반대로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폐기됐다.

지난해 11월6일 민형배 더불어민주당 의원(광주 광산을)이 '국가기념일의 기념곡 지정 등에 관한 법률 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민 의원을 비롯한 19명이 동참했다.

법안은 올해 2월 소관 상임위원회인 행정안전위원회에 상정됐으나 소위원회 심사에서 아직도 계류 중이다.

다른 법안의 우선순위에 밀리면서 수개월째 답보상태로 아직 정확한 상정 계획도 나오지 않고 있다.

민형배 의원실 한 관계자는 "당시 행정안전위원회 전체 회의에서 약 200건의 법안이 일괄상정됐다. 심의할 법안이 많다 보니 아무래도 우선순위에서 밀린 듯하다"고 설명했다.

통상 상임위원회 법안은 여·야 간사들 간의 합의를 통해 심의한다. 하지만 굳이 기념곡 지정이 이뤄지지 않아도 기념식에서 노래가 불리다 보니 법안 상정의 중요성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고 이 관계자는 귀띔했다.

지난 2월19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서 열린 고(故)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의 영결식에서 참석자들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고 있다.2021.2.19/뉴스1 ⓒ News1 박정호 기자

임을 위한 행진곡은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에 희생된 윤상원 대변인과 들불야학 박기순 열사의 영혼결혼식에 헌정된 노래다.

1982년 소설가 황석영과 당시 전남대 학생이던 김종률씨(현 세종시문화재단 대표이사) 등 광주 지역 노래패 10여명이 모여 만든 노래극 '넋풀이-빛의 결혼식'의 마지막 삽입곡이다.

가사는 통일운동가인 고(故) 백기완 선생이 1980년 12월 서대문구치소 옥중에서 지은 장편시 '묏비나리' 일부를 차용해 황석영씨가 붙였고 김종률씨가 작곡했다.

이후 카세트테이프 복사본과 악보 필사본, 구전 등을 통해 급속도로 퍼져 민주화와 노동 운동권에서 '민중의 영원한 애국가'로 불렸다.

해마다 5·18민중항쟁 기념일이면 '임을 위한 행진곡'이 울려 퍼졌고 노래는 민주화운동의 상징곡이 됐다.

1997년 정부가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일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한 이후 정부 주관 첫 기념식이 열린 2003년부터는 정부 공식 행사에서 제창됐다.

이명박 정권 첫해인 2008년에도 기념식 본행사에서 기념곡으로 제창됐다.

그러나 이명박 정권 집권 2년 차이던 2009년부터 이 곡을 둘러싼 갈등이 점화됐다.

곡은 2009년과 2010년 기념식 공식 식순에서 빠졌다.

2010년엔 국가보훈처가 '임을 위한 행진곡' 대신 경기도 민요 '방아타령'을 기념식 식순에 편성했다 비난이 들끓자 철회하기도 했다. 그해 '임을 위한 행진곡'은 식전행사에서 악단 연주로 대체했다.

2011년과 2012년에는 공연단의 무대 합창이나 무용단의 군부 배경음악으로 대체되는 등 악전이 끊이지 않았다.

2013년까지는 야당 의원들과 5·18 단체 회원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함께 노래를 불러 억지 형식이라도 갖췄지만 5·18 피해당사자와 유가족, 일부 정치인들이 참석하지 않아 '반쪽 행사'로 진행됐다. 2014년에는 5·18 행사위와 유족들이 기념식에 불참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을 공식적으로 지우려는 시도도 있었다.

2009년 11월 국가보훈처는 5·18 민주화운동 공식 기념곡 '오월의 노래(가칭)'를 국민공모로 제정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지만, 여론이 반발하자 공모계획을 철회했다.

기념곡 논란은 2013년 1월 국가보훈처가 당해 예산에 5·18 공식 기념곡 공모 비용으로 4800만원을 편성한 사실이 밝혀지며 더욱 부각됐다.

그해 5월엔 박승춘 당시 국가보훈처장이 "5·18 기념식은 예년과 같은 방향으로 검토 중"이라며 기념곡 제창 불가 방침을 통보해 광주시민을 비롯한 각계의 공분을 샀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017년 5월23일 경남 김해 진영읍 봉하마을에서 열린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8주기 추도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고 있다. 2017.5.23/뉴스1 ⓒ News1DB

'임을 위한 행진곡'을 둘러싼 갈등은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 이후 해결 국면에 접어드는 듯했다.

문 대통령은 제37주년 5·18기념식에서 제창곡으로 지정해 부르도록 관련 부처에 지시했고 이후 올해 기념식까지 5년간 줄곧 제창 형식으로 불려왔다.

특히 문 대통령은 대선 후보자 시절 국립5·18민주묘지를 찾아 "이번 5·18 기념식에는 반드시 이 노래를 기념곡으로 만들자"고 강조하기도 했다.

하지만 임을 위한 행진곡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면서 광주시민들은 애가 타는 상황이다.

민형배 의원은 지난해 11월 법안을 발의하며 "임을 위한 행진곡은 대한민국 민주화 운동의 상징적인 노래가 됐다"며 "유가족과 지역 주민, 사건 경험자와 미경험자 모두에게 희생 위령, 정신 계승의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법 제정을 통해 기념일과 기념식에 제창돼 기념·추념의 뜻을 더하는 것이 마땅하다. 기념곡이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것을 방지해야 한다"고 발의 이유를 밝혔다.

발의 이후 6개월이 지났지만 진척은 없다. 올해 기념식 전에 심의돼 공식적으로 불리기만을 기대했던 오월 유족들은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한 5·18 유족은 "이번 제41주년 5·18민주화운동은 추모식에 국민의힘 의원들이 방문하고 기념식에서 당 대표 권한대행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는 등 달라진 면모가 보였다"며 "이들이 5·18을 선거용 서진 정책에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생각한다면 상정에 힘을 보태 진정성을 보여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어 "41주년 5·18에 맞춰 상정되지 못한 것이 너무도 아쉽다"며 "이미 늦었다고 손 놓고 있는 것이 아니라 신속하게 처리돼 내년에는 꼭 공식적으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를 수 있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문 대통령 임기 중 마지막 5·18기념식인 올해도 기념곡 지정이 이뤄지지 못했고 그의 임기는 이제 어느덧 1년도 남지 않았다.

문 대통령 임기 내에 '임을 위한 행진곡'이 '공식 기념곡'으로 지정될 수 있을까.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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