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IST-IBS, 빛에 반응하는 '분자 스위치' 반세기 수수께끼 풀었다

대표적인 분자 스위치 '아조벤젠' 구조 변화 과정 규명

'이조벤젠'의 구조 변화 과정 규명 연구 이미지(AI 생성·KAIST 제공) /뉴스1

(대전=뉴스1) 김종서 기자 = 빛으로 약효를 조절하는 약물이나 빛에 따라 모양이 변하는 스마트 소재는 더 이상 공상과학 영화 속 이야기가 아니다. 국내 연구진이 빛에 반응하는 대표적인 분자 스위치 '아조벤젠'의 반세기 간 이어진 수수께끼를 풀었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은 화학과 이효철 교수 연구팀이 기초과학연구원(IBS) 첨단 반응동역학 연구단과 함께 아조벤젠의 구조 변화 과정을 규명했다고 1일 밝혔다.

아조벤젠에는 두 개의 벤젠 고리가 가운데 질소 원자 두 개로 이루어진 연결부에 붙어 있다. 빛을 받으면 두 고리가 연결부의 서로 반대쪽에 놓인 형태에서 같은 쪽에 놓인 형태로 바뀔 수 있다.

원자는 그대로인데 놓인 자리만 달라지는 것이다. 이 성질을 이용해 약물의 활성을 빛으로 조절하거나, 빛에 반응하는 소재와 분자 기계를 만드는 연구가 진행돼 왔다.

그러나 분자의 바뀌기 전과 후 모습을 아는 것만으로는 그 사이에 어떻게 움직였는지 알 수 없었다. 움직임 속 구조가 너무 빨리 사라져 확인하기 어려운 탓이다.

연구팀은 포항가속기연구소의 엑스선 자유전자레이저를 이용해 이 순간을 추적했다. 메탄올 용액에 녹인 아조벤젠에 레이저를 쏴 반응을 일으킨 뒤 초고속 엑스선으로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구조를 측정했다.

관건은 주변 용액의 강한 신호에서 아조벤젠의 미세한 신호를 찾아내는 일이었다. 연구팀은 시끄러운 곳에서 작은 목소리를 가려내듯 분자의 신호를 분리했다. 이어 순간마다 얻은 측정 결과를 바탕으로 움직임을 영상으로 재구성했다.

그 결과, 아조벤젠은 양쪽의 큰 벤젠 고리를 한꺼번에 크게 돌리지 않았다. 먼저 탄소와 질소가 이어진 부분이 비틀리고 가운데 질소 연결부의 양쪽이 자전거 페달처럼 서로 맞물려 움직이며 전체 모양을 바꿨다.

이 발견은 주변 액체가 끈적해져도 반응 속도가 크게 달라지지 않는 이유를 설명하는데 도움이 된다. 양쪽의 큰 고리를 돌려야 한다면 좁은 공간에서 큰 가구의 방향을 바꾸듯 주변 액체를 많이 밀어내야 한다. 중심부가 주로 움직이면 그럴 필요가 줄어든다.

KAIST-IBS 연구팀(KAIST 제공) /뉴스1

이 교수는 "이번 연구는 아조벤젠이 빛을 받은 뒤 어떤 경로로 모양을 바꾸는지 밝힌 성과"라며 "빠르게 반응하는 유기분자의 움직임을 관찰하는 방법을 발전시켜 다양한 광반응 분자의 작동 원리를 이해하는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는 아조벤젠을 이용한 약물이나 소재의 성능을 직접 높인 것이 아닌, 빛에 반응하는 소재와 분자 기계 설계에 참고할 기초 자료를 제공했다는데 의미가 있다고 연구팀은 설명했다.

이에 연구팀은 측정·분석 방법을 다른 유기분자에 적용하고 더 정밀한 구조 정보를 얻을 수 있도록 실험과 분석을 발전시킬 계획이다.

IBS 김중민·기호성 연구원이 공동 제1저자로 수행한 이번 연구 성과는 국제 학술지 '네이처(Nature)'에 9월 30일(영국 현지시간) 온라인 게재됐다.

jongseo12@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