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균으로 '접착제 소재' 만든다…석유 대체 가능성 제시
KAIST 생명화학공학과 이상엽 특훈교수 연구팀
- 김종서 기자
(대전=뉴스1) 김종서 기자 = 택배 상자부터 가구, 전자제품, 자동차까지 널리 쓰이는 열로 녹여 붙이는 접착제를 석유 대신 미생물로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이 제시됐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은 생명화학공학과 이상엽 특훈교수 연구팀이 대장균의 유전자와 대사과정을 조절해 포도당으로부터 접착제 소재를 생산하는 '미생물 세포공장'을 개발했다고 17일 밝혔다.
산업용 접착제의 상당수는 석유 유래 고분자를 기반으로 제조된다. 별도의 유기용매 없이 가열해 사용할 수 있어 가장 널리 쓰이는 핫멜트 접착제(MHA)도 마찬가지다.
이에 성능은 뛰어나지만 폐기물과 미세플라스틱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 생분해성 포장재를 사용하더라도 이를 붙이는 접착제가 분해되지 않으면 제품의 전체 친환경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
연구팀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미생물이 포도당과 같은 재생 가능한 원료로부터 만들 수 있는 생분해성 고분자 폴리하이드록시알카노에이트(PHA)에 주목했다. PHA는 어떤 성분을 어떤 비율로 구성하느냐에 따라 유연성·강도·내열성 등 소재의 특성을 조절할 수 있다.
특히 토양·해양 등 다양한 자연환경에서 생분해될 수 있다는 특성으로 석유 기반 플라스틱의 지속가능한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연구팀은 이 원리를 이용해 서로 다른 특성을 갖는 4-하이드록시부티레이트(4HB)와 페닐락테이트(PhLA)를 고분자로 만들었다. 4HB는 소재를 부드럽고 잘 달라붙게 하고, PhLA는 단단함과 열에 견디는 성질을 높인다.
실제로 두 성분의 비율을 달리하자 고분자의 열적 특성과 접착 성능도 달라졌으며, 4HB가 약 24~34몰%(mol%) 포함됐을 때 우수한 접착 성능을 보였다.
연구팀은 대장균이 포도당으로부터 4HB와 PhLA를 만들고 이를 하나의 고분자로 연결하도록 세포 내부의 대사경로를 설계했다. 대장균이라는 작은 '생산공장'에 포도당을 공급하면 접착제 소재가 만들어지도록 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여러 성분을 동시에 생산할 때 생기는 불균형을 해결하기 위해 유전자 발현의 세기와 시점을 조절하고, 물질 생산에 필요한 CoA 전달효소를 추가했다.
또 세포 안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화학반응을 컴퓨터로 분석하는 게놈 규모 대사모델을 활용해 원료가 부족하거나 생산에 병목이 생기는 대사경로를 찾아 최적화했다.
그 결과 연구팀은 영양분을 지속적으로 공급하며 미생물을 배양하는 유가식 발효를 통해 poly(4HB-co-PhLA)를 배양액 1리터당 10.2g 생산했다. 여기에 3HB 생산 경로를 추가한 poly(3HB-co-4HB-co-PhLA)는 1리터당 52.8g까지 생산했다.
이렇게 만든 고분자는 스테인리스강 전단 접착 시험에서 상용 EVA 접착제보다 높은 성능을 보였다. poly(3HB-co-4HB-co-PhLA)는 목재 접착 시험에서 상용 EVA 접착제와 비슷한 수준의 성능을 나타냈다.
poly(4HB-co-PhLA)는 반복해서 녹였다가 다시 접착한 뒤에도 상당 수준의 접착력을 유지했다. PhLA 성분을 넣으면서 열에 견디는 성질도 향상됐다.
생분해 가능성도 확인했다. 지방 등을 분해하는 효소인 리파아제를 처리하자 고분자 표면이 손상되고 분자량과 전체 질량이 감소했다. 이는 새롭게 개발한 방향족 PHA가 효소에 의해 분해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번 연구는 향후 접착력·유연성·내열성 등 필요한 기능에 맞춰 고분자의 특성을 조절하고, 이를 미생물로 생산하는 바이오제조 기술로 확장할 수 있다고 연구팀은 설명했다.
이 교수는 "다양한 비천연 단량체와 미생물 세포공장을 활용하면 석유 기반 접착제뿐 아니라 여러 기능성 고분자를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생산하는 바이오제조 기술로 확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KAIST 생명화학공학과 강민주 박사과정생, 이영준 박사, 김기배 박사가 참여한 이번 연구는 국제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Nature Communications)'에 온라인 공개됐다.
jongseo12@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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