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 대응 역설…녹지·수공간 늘렸더니 저소득층 주거불안

KAIST-북경대-뉴욕상하이대 공동연구

행정단위별 그린-블루 적응 개입 시작 시점 분포(KAIST 제공) /뉴스1

(대전=뉴스1) 김종서 기자 = 도시공원 조성, 습지 복원 등 녹지와 수공간을 활용하는 '그린-블루 적응'(녹지·수공간 기반 기후적응)은 기후 위기 시대 도시 홍수·폭염 피해를 줄이는 대표적 기후적응 전략으로 꼽힌다. 그러나 기후적응 정책이 역설적으로 집값 상승과 인구 유입을 촉진해 기존 저소득층 주민의 거주 불안을 심화시킬 수 있다는 사실이 대륙 규모 데이터로 처음 입증됐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은 AI미래학과 김승겸 교수 연구팀이 북경대, 뉴욕상하이대 연구진과 함께 아프리카 32개국 도시를 분석해 기후적응 정책이 도시 회복력을 높이는 동시에 사회적 배제 압력을 유발할 수 있는 '젠트리피케이션 역설'을 실증적으로 규명했다고 18일 밝혔다.

젠트리피케이션은 개발이나 투자로 인해 지역의 주택가격과 생활비가 상승하면서 기존 저소득 주민이 밀려나고 인구구성이 변화하는 현상을 뜻한다.

아프리카 도시들은 급속한 도시화, 비공식 정주지 확대, 취약한 토지권 구조가 중첩되면서 폭염, 홍수 등 기후위험에 특히 취약하다. 이에 녹지와 수공간을 활용한 그린-블루 적응 전략이 빠르게 확산하고 있으나 젠트리피케이션 간 관계를 정량적 인과분석으로 규명한 연구는 사실상 없었다.

연구팀은 아프리카 32개국 221개 도시권 내 5503개 행정단위를 대상으로 2005년부터 2024년까지의 변화를 추적했다. 위성영상 분석과 사회·경제 데이터를 결합해 그린-블루 적응이 실제 도시와 주민 삶에 미친 영향을 정밀하게 분석했다.

KAIST 조혜민 박사과정(왼쪽)과 김승겸 교수(KAIST 제공) /뉴스1

특히 연구팀은 기후적응 정책이 환경 개선 효과뿐 아니라 주택가격 상승과 인구 이동 등 사회·경제적 변화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에 정책 효과의 인과관계를 분석하는 이중차분법을 적용해 그린-블루 적응이 도시 변화에 미친 영향을 검증했다.

분석 결과, 기후적응 시설이 조성된 지역은 그렇지 않은 지역보다 종합 젠트리피케이션 지수(주택가격·인구 유입·지역 변화 등을 종합적으로 반영한 지표)가 평균 약 41%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주택가격은 약 13% 상승했다. 외부 인구 유입 역시 유의미하게 증가한 것으로 분석됐다.

이는 기후 위기로부터 시민을 보호하기 위해 조성된 시설이 역설적으로 경제적 취약계층의 주거 불안을 심화시키고 기존 공동체를 약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번 연구는 기후적응을 단순한 인프라 구축의 문제가 아니라 혜택과 부담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가의 분배 문제로 바라봐야 함을 시사한다고 연구팀은 설명했다.

김 교수는 "기후적응 정책은 도시를 더 안전하게 만들 수 있지만 동시에 집값 상승과 인구 이동을 불러와 기존 주민들의 주거 불안을 키울 수 있다"며 "앞으로의 기후 정책은 환경 개선뿐 아니라 취약계층 보호와 주거 안정까지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KAIST 녹색성장지속가능대학원 조혜민 박사과정생, 북경대 우롱펑 교수, 뉴욕상하이대학 관청허 교수가 참여한 이번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네이처 시티즈(Nature Cities)에 게재됐다.

연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지원하는 AI기반 미래기후기술개발 원천연구사업의 'AI기반 기후-인간 상호영향 차세대 통합평가모델 개발' 과제 지원을 받아 수행됐다.

jongseo12@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