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의 풍요를 빌다” 서산의 볏가릿대 세우기
정월대보름~2월 초하루 이어지는 내포권 풍년 의례
서산학 시민강좌...“국가무형유산 등재 힘 모으자"
- 김태완 기자
(서산=뉴스1) 김태완 기자 = 정월대보름이면 충남 서산의 들녘에 하늘로 솟은 장대가 세워진다. 볏짚으로 입히고 삼방줄로 묶은 장대 끝에는 오곡 주머니가 달린다. 마을 사람들은 그 아래서 풍년을 빌고, 보름 뒤 음력 2월 초하루에 장대를 내리며 한 해의 기운을 점친다. 이 전통 의례가 바로 서산이 지켜온 ‘볏가릿대 세우기’다.
서산문화원은 최근 문화원 대강당에서 서산학 시민강좌를 열고, 유병덕 충남역사문화연구원 내포문화진흥센터장을 초청해 ‘풍요를 기원한 볏가릿대 세우기’를 주제로 강연을 진행했다고 24일 밝혔다.
유 센터장은 “2023~2025년 국가유산청의 ‘미래무형유산 기록사업’ 취지에 따라 충남권의 볏가릿대 세우기를 조사·기록 중인데, 그 중심은 단연 서산”이라며 “마을 공동체가 주체가 되는 농경의례의 원형이 가장 온전히 남아 있다”고 강조했다.
볏가릿대 세우기는 정월대보름에 세워 음력 2월 초하루에 내리는 세시 의례다. 장대는 대나무나 소나무를 사용하고 볏짚으로 몸통을 감싸 삼방줄(드물게 오방줄)로 고정한다. 장대 끝에는 벼·보리·조·콩·수수 등 오곡을 담은 주머니를 매달고, 주머니의 불어남과 싹의 상태로 해풍과 강우, 작황을 점치는 풍속이 전해진다.
유 센터장은 “볏가릿대는 농경과 신앙이 결합된 내포문화의 상징으로, 마을의 대동의례이자 공동체 결속의 표현”이라고 설명했다.
행사는 마을 단위로 진행되며, 예전에는 대동샘 옆에서 용왕제와 함께 치르기도 했다. 요즘은 마을회관 앞마당에서 풍물굿과 음복이 이어지고, 장대 해체 후 삼방줄과 볏섬을 모아 곳간에 드리는 의식으로 마무리된다.
이는 농번기를 앞두고 공동체가 함께 풍년을 준비하던 ‘농경문화의 기억’을 오늘에 잇는 상징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코로나19와 고령화로 전승 마을은 2019년 26곳에서 최근 15곳으로 줄었다. 그럼에도 서산 지곡면 연화리·장현리·중앙리 등 10여 개 마을은 여전히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의례를 이어가고 있다.
유 센터장은 “서산은 내포권에서도 유일하게 다수의 마을이 자생적으로 볏가릿대를 세우는 지역”이라며 “삼방줄 꼬기와 볏짚 입히기, 오곡 점(占) 절차가 모두 남아 있어 문화재적 가치가 매우 높다”고 덧붙였다.
현장에서는 국가무형유산 등재를 위한 제도적 지원과 예산 확보의 필요성도 제기됐다. 백종신 서산문화원장은 “서산이야말로 볏가릿대 세우기의 전승 거점”이라며 “내년 시 예산에 관련 사업비가 반영될 수 있도록 시민이 함께 힘을 모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 전통은 단순한 세시풍속이 아니라 마을의 신앙과 공동체를 잇는 대동문화의 정수”라며 “현대적으로 계승한다면 지역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문화유산으로 자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cosbank3412@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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