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수손상' 치료 가능성 열려…몸속 회복 방해 원리 첫 규명

IBS·연세대 의대 연구팀 공동연구…치료제 후보 효과 확인

척수손상 동물모델에서 KDS2010의 치료 효과(IBS 제공) /뉴스1

(대전=뉴스1) 김종서 기자 = 기초과학연구원(IBS)은 인지 및 사회성 연구단 이창준 단장 연구팀과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하윤 교수 연구팀이 신경전달물질이 척수 손상 회복을 방해하는 원리를 첫 규명하고 회복 가능성을 제시했다고 11일 밝혔다.

그동안 척수손상의 회복이 어려운 이유로 손상 부위에 형성되는 '교세포 장벽(glia barrier)'이 지목돼 왔다. 교세포 장벽은 손상 직후 별세포와 다른 교세포들이 급격히 증식해 상처를 두껍게 둘러싸는 조직으로, 초기에는 손상 부위를 보호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신경이 다시 자라나는 길을 막는다.

그러나 회복을 가로막는 정확한 분자적 기전은 밝혀지지 않아 척수손상 치료제는 주로 염증을 억제하거나 증상을 완화하는 데 그치고 있다.

연구팀은 앞선 연구에서 반응성 별세포(reactive astrocyte)가 마오비(MAOB) 효소를 통해 억제성 신경전달물질 가바(GABA)를 비정상적으로 생성하고, 알츠하이머 등 퇴행성 뇌신경질환 악화를 부른다는 사실을 밝힌 바 있다.

이에 착안해 손상된 척수의 별세포를 분석해 가바가 신경세포 재생에 필요한 신경성장인자(BDNF)와 그 수용체(TrkB)의 발현을 억제한다는 것을 밝혔다.

그 결과, 손상 후 회복에 필요한 신경 성장 신호가 차단되면서 신경섬유의 재생과 기능 회복이 중단됐다. 마오비에 의해 가바가 생성되는 경로가 척수손상의 회복 과정을 멈춰 세우는 제동장치로 작용한다는 뜻이다.

이를 검증하기 위해 연구진은 척수의 별세포에서 마오비의 발현을 억제하거나 활성화한 실험동물 모델을 이용해 척수손상 후 회복 과정을 비교했다. 분석 결과 마오비 발현을 억제한 쥐는 손상된 신경섬유가 다시 자라나고, 뒷다리 운동 기능이 크게 회복됐다.

반대로 마오비 발현이 증가한 쥐에서는 척수 단면적이 정상 대비 절반 가까이 줄어드는 심각한 손상이 나타났으며, 운동 기능도 거의 회복되지 않았다. 이러한 결과는 마오비-가바 경로가 척수손상의 회복을 막는 직접적 원인임을 보여준다.

이어 연구진은 마오비 억제제 'KDS2010'을 척수손상 동물에 투여해 효과를 확인했다. 약물을 투여한 쥐는 사다리 걷기 시험에서 뒷다리 미끄러짐이 줄어드는 등 보행 능력이 크게 개선, 손상 부위에서 신경섬유가 새롭게 뻗어 나왔다.

척수 단면 분석에서는 손상으로 생긴 빈 공간이 줄고 수초화된 신경섬유가 증가했다. 영장류 모델에서도 손상 조직 손실이 현저히 줄고 신경이 보존되는 효과가 확인됐다. 특히 건강한 성인을 대상으로 한 임상 1상 시험에서 약물의 우수한 안정성과 내약성이 검증되면서 실제 치료제로의 발전 가능성을 높였다.

이 단장은 "이번 연구는 척수손상 후 신경 재생을 직접 억제하는 분자적 경로를 규명하고 이를 제어하는 전략을 제시함으로써 기존 치료제와는 차별화된 근본적 치료 가능성을 보여줬다"며 "설치류와 영장류, 그리고 임상 1상까지 이어진 다층적 검증은 신약 후보물질이 실제 환자 치료로 이어질 수 있음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근거"라고 말했다.

하 교수는 "KDS2010은 이미 임상 1상에서 안정성이 확인된 약물로, 임상 2상 시험을 통해 실제 척수손상 환자에서 치료 효과를 검증할 계획"이라며 "마오비-가바 경로가 다른 신경질환에 관여하는지를 밝혀 적용 범위를 넓히고 보다 정밀하고 복합적인 치료 플랫폼으로 발전시켜 나갈 것"이라고 전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기초·응용 생명과학 분야 국제 학술지 '신호 전달 및 표적 치료(Signal Transduction and Targeted Therapy)'에 게재됐다.

jongseo12@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