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년 지났지만…'간토대학살' 진상 규명 여전히 안갯속

국내 유일 천안 '1923역사관' 매년 추모제
김종수 관장 "간토대학살, 정권 유지 위한 만행"…반드시 기억해야

지난달 23일 천안 1923역사관에서 열린 간토대학살 희생자 추모제.(1923역사관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천안=뉴스1) 이시우 기자 = 1923년 9월 1일, 도쿄 등 일본 간토 지역에 규모 7.9의 강진이 발생했다. 10만여명이 숨지고 200만여명이 집을 잃었다. 이튿날 일본 내각은 계엄령을 선포했다. 혼란을 틈타 일본 내 자경단은 무차별 학살을 벌였다. 일제강점기 일본으로 건너가 있던 조선인 약 6600여명이 희생됐다.

그로부터 102년이 지났다. 여전히 일본 정부는 당시 역사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참상을 목격한 일본 시민들만이 희생자들을 추모하며 기억을 기록으로 남겨 왔다.

국내에서는 충남 천안에서 일본 시민들의 노력을 이어받아 억울하게 희생된 선조들을 기억하고 그들의 이름을 되찾아주기 위한 노력이 진행되고 있다.

유관순 열사의 고향인 천안 병천면에는 열사의 생가에서 4㎞ 떨어진 곳에 '기억과 평화를 위한 1923역사관'이 있다. 간토대학살이 자행된 1923년의 역사를 잊지 않기 위한 연구와 전시가 이뤄지는 국내 유일의 공간이다. 지난 2020년 사회적협동조합 '기억과 평화'가 설립했다. 2006년 우연히 간토대학살의 진실을 목격자로부터 들은 김종수 관장이 운영을 책임지고 있다.

김종수 관장은 "대안학교를 운영하며 일본에서 재일 교포 청소년들과 진행한 평화캠프에서 간토대학살 목격자의 강연을 듣고 큰 충격을 받았다"며 "이후 간토대학살 사건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설명했다.

사건을 파헤칠수록 진실은 잔인했다. 자경단은 임신 중인 산모도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무참히 살해했다. 일본에서는 당시 만행을 목격한 일본 시민들이 곳곳에 추모비를 세워 희생자들의 영혼을 달랬지만, 국내에서는 단 하나의 추모비도 없다는 사실은 참혹했다.

김 관장은 "끔찍한 광경을 목격한 일본 시민들은 당시 경험을 증언했지만 일본 정부는 여전히 역사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며 "국내서도 누가 희생됐는지, 몇 명이 희생됐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진상 규명을 위한 한일시민모임을 출범시켜 국내에서 가려진 간토대학살의 진실을 알리기 시작했다. 일본을 오가며 얼마 남지 않은 목격자들을 만나고, 국내에 일본의 만행을 소개했다.

오랜 노력 끝에 정치권도 반응해 지난 2014년부터 간토대학살 진상규명 특별법이 발의되고 있지만 번번이 무산돼 왔다. 다행히 22대 국회에서는 더불어민주당 윤건영 의원이 대표 발의한 법안이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법안심사 소위를 통과해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간토대학살 진상규명 활동 소개하는 김종수 1923역사관장./뉴스1

특히 지난달 23일 일본을 방문한 이재명 대통령이 재일교포를 만난 자리에서 "100년 전 아라카와 강변에서 벌어진 끔찍한 역사, 여전히 고향 땅에 돌아가지 못한 채 일본 각지에 흩어져 있는 유골들의 넋을 절대 잊지 않겠다"고 말해 어느 때보다 진상 규명 가능성이 커졌다. 아라카와 강변은 간토대학살 피해자를 기리는 추모제가 매년 열리는 장소다.

김 관장은 "여러 차례 특별법이 발의됐지만 법 제정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며 "22대 국회에서 특별법이 본회의를 통과하면, 진상규명을 위한 위원회가 꾸려져 피해 조사와 피해자 명예 회복을 위한 실질적인 대책을 마련할 수 있게 된다"고 기대했다.

앞서 지난 23일 1923역사관에서 열린 간토대학살 피해자 추모제에서는 참석자들이 이재명 대통령을 향해 '9월 1일 희생 영령들을 위한 공식 추도사를 발표해 줄 것'을 간절히 요청한 바 있다.

김종수 관장은 "간토대지진이 일어나기 전 일본은 내각 총리가 병으로 갑자기 숨지고, 시민사회는 조선의 3·1만세 운동에 자극받아 민주화를 열망하던 시기였다"며 "간토대학살은 일본 정부가 대지진으로 사회가 혼란한 틈을 타 정권을 지키려고 저지른 만행"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정권을 지키려는 자들의 무도함은 102년이 지난 현재에도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을 일깨워준다는 데서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도 의미가 크다"며 "하루빨리 사건에 대한 진상이 규명돼 희생자들의 넋을 달랠 수 있기를 기도한다"고 말했다.

간토대학살 당시 희생된 조선인 엿장수 구학영 등 희생자를 기리며 1923역사관에 세워진 추모비.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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