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3년 전 수해 악몽 '현재형'…대전 코스모스아파트 가보니

주민들 우기 불안감 호소…'올 여름 슈퍼 엘니뇨' 우려
2026년 2월에야 정비사업 마무리 "3년 더 버텨야"

2020년 7월30일 새벽 쏟아진 폭우로 대전 서구 정림동 코스모스아파트 주차장이 물바다로 변한 모습. /뉴스1 ⓒNews1 김기태 기자

(대전=뉴스1) 최일 기자 = “비가 많이 내린다는 예보만 나와도 불안해서 발을 뻗고 잠을 잘 수가 없습니다.”

3년 전 수해로 큰 상처를 입은 대전 서구 정림동 코스모스아파트의 한 주민은 18일 아픔이 서린 현장을 찾은 <뉴스1> 취재진에게 이렇게 말했다.

2020년 7월30일 새벽 쏟아진 시간당 최대 102㎜의 폭우로 저지대에 자리한 코스모스아파트에선 1층 28세대가 물에 잠기며 1명이 사망하고 56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또 차량 78대가 침수되는 피해를 입었다.

불과 30여분만에 아파트 단지 안이 물바다로 변해 버린 악몽과도 같은 현실은 이곳 주민들에게 트라우마로 남아있다.

아파트 단지 내 한켠에는 흙탕물에 잠겨 실내가 엉망이 된 승용차, 침수됐던 1층 세대와 지하 상가에서 쏟아져 나와 물에 둥둥 떠다녔던 가전제품과 가재도구들이 그날의 참상을 말해주는 전시물처럼 아직까지 세워져 있다.

2020년 7월30일 새벽 쏟아진 폭우로 침수된 차량이 3년이 지난 현재까지 대전 서구 정림동 코스모스아파트 주차장에 세워져 있다. /뉴스1 ⓒNews1 최일 기자

2021년과 지난해 우기엔 별다른 사고 없이 넘어갔지만 올 여름엔 폭염과 강풍, 집중호우 등 이상 기후를 동반하는 ‘슈퍼 엘니뇨’ 현상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는 기상 전망에 주민들의 불안감은 더욱 커지고 있다.

60대 주민 A씨는 “우리 아파트는 인접한 도로보다 4m 정도 낮은 곳에 지어졌고, 배수로가 5년간 청소를 하지 않아 토사와 오물로 꽉 막한 상태에 갑작스러운 폭우로 금세 물바다가 됐다. 그런데 인재(人災)가 자연재해로 둔갑돼 피해를 본 주민들이 별다른 배상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취재진은 아파트 단지 내 지하 배수로에서 3년 전 수해 당시의 흔적을 발견했고, 현재는 비교적 양호한 상태로 관리되고 있음을 확인했다.

당시 사망한 B씨 유족은 서구청에 수해 책임을 묻는 소송을 제기, 지난달 일부 승소 판결을 받았다. 이에 일부 주민들이 집단소송을 준비하고 있는데 손해배상청구권 소멸시효(3년)가 임박했다.

서구는 수해 재발을 막기 위해 코스모스아파트를 중심으로 ‘정림 자연재해위험개선지구 정비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서구 건설과 관계자는 “정림동 저지대에 총 420억원(국비 210억원, 시비 126억원, 구비 84억원)을 투입해 배수펌프장과 맨홀펌프장을 설치하고 3353m의 관로를 정비하는 사업으로 지난해 12월 착공해 오는 2026년 2월 완공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수해 1년 후인 2021년 7월 서구는 올해 말까지 정비사업 준공을 목표로 한다고 발표했었다. 하지만 2년 2개월이 더 소요돼야 하는 만큼 주민들로선 올해부터 2025년까지 3년의 우기를 더 버텨야 한다.

대전 서구 정림동 코스모스아파트 주민이 <뉴스1> 취재진과 함께 단지 내 지하 배수로를 살펴보고 있다. /뉴스1 ⓒNews1 최일 기자

서구는 임시방편으로 이달 초 코스모스아파트 주차장에 대형 양수기 4대를 갖다 놓고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다. 그렇지만 주민들의 불안감은 좀처럼 가시지 않고 있다.

20여년간 코스모스아파트에 거주했다는 주민 C씨는 “당초 저지대에 아파트 건축 허가를 해준 것부터 잘못된 것이고, 배수로도 제 역할을 하지 못해 3년 전 기록적인 폭우에 큰 수해를 입었다. 언제든 그런 일이 또다시 재발할 수 있다는 생각에 편히 잠을 잘 수가 없다”고 토로했다.

choil@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