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항쟁 80주년 추념식…국가 차원 진상규명 등 촉구

1일 대구 달성군 가창면 10월항쟁 위령탑 추념식 모습. 왼쪽부터 김민재 행정안전부 차관, 이정우 전 경북대 교수, 채영희 10월항쟁유족회 초대 회장, 이용수 일본부 피해 생존자. 2026.10.1 ⓒ 뉴스1 남승렬 기자
1일 대구 달성군 가창면 10월항쟁 위령탑 추념식 모습. 왼쪽부터 김민재 행정안전부 차관, 이정우 전 경북대 교수, 채영희 10월항쟁유족회 초대 회장, 이용수 일본부 피해 생존자. 2026.10.1 ⓒ 뉴스1 남승렬 기자

(대구=뉴스1) 남승렬 기자 = 10월 항쟁 80주년을 맞아 대구에서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고 국가폭력의 진상 규명과 명예 회복을 촉구하는 추념식이 열렸다.

대구 시민·노동단체 등으로 구성된 '10월 항쟁 80주년 행사위원회'는 1일 대구 달성군 가창면 10월항쟁 위령탑에서 '10월 항쟁 80주년·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76주기 추념식'을 개최했다.

행사에는 김민재 행정안전부 차관, 이정우 전 경북대 교수, 채영희 10월 항쟁 유족회 초대 회장, 이용수 일본군 위안부 피해 생존자 등이 참석했다.

유족들은 80년이 지난 지금도 희생자들의 유해가 제대로 수습되지 못한 현실을 지적하며 국가 차원의 진상규명과 후속 조치를 촉구했다.

채영희 회장은 "경산 코발트광산 등에는 아직 뼈와 흙이 분리되지 않은 유해들이 쌓여 있다"며 "국가가 국가폭력으로 돌아가신 많은 분을 구제하고 과거의 잘못을 인정해야 한다. 그래야 원혼들이 떠날 것"이라고 호소했다.

이용수 위안부 피해자는 해방 전후 국가 폭력에 희생된 민간인 피해자들의 명예 회복을 요구했다.

이재명 대통령의 추도사를 대독한 김민재 차관은 "공권력이라는 이름으로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을 낳은 어두운 역사를 우리는 결코 잊지 말아야 한다"며 희생자와 유가족에게 애도를 표했다.

10월 항쟁은 1946년 10월 1일 대구에서 시작해 전국으로 확산한 대규모 민중항쟁이다.

당시 미군정의 식량정책에 대한 불만과 극심한 식량난, 친일파 청산 요구 등이 배경으로 거론되며 좌익 세력의 조직적 움직임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평가된다.

대구에서 시작된 충돌은 이후 경북, 경남, 전남 등으로 확산했다. 당시 당국은 사망 18명, 부상 50명, 행방불명 30명으로 발표했지만, 실제 희생 규모는 이보다 컸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사건은 과거 '대구 10월 폭동' 등으로 불리다 2010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관련 사건을 조사 대상으로 다루면서 역사적 실재가 확인됐고, 대구시는 2016년 조례를 통해 '10월항쟁'이라는 명칭을 사용했다.

1946년 10월 1일 대구역 일대에서 경찰의 첫 발포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대구콘서트하우스 앞에는 현재 10월 항쟁의 정신과 희생자를 기리는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pdnamsy@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