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단됐던 경산 코발트광산 민간인 희생사건 조사 재개

3기 진실화해위, 진상조사 착수

해방 이후 한국전쟁을 전후해 대구·경북 민간인이 군경 등에 의해 살해된 경북 경산 '코발트광산 민간인 희생사건' 희생자 2명에 대한 진상조사가 개시됐다. 사진은 코발트광산에서 발굴된 유골.(경산코발트광산유족회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뉴스1

(대구=뉴스1) 남승렬 기자 = 해방 이후 한국전쟁을 전후해 대구·경북 민간인이 군경 등에 의해 살해된 경북 경산 '코발트광산 민간인 희생사건' 희생자 2명에 대한 진상조사가 개시됐다.

23일 정부 등에 따르면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는 코발트광산 민간인 희생사건 유족 A 씨와 B 씨가 각각 아버지와 삼촌에 대해 진상규명을 요구한 사건에 대해 이달 초 조사 개시를 통보했다.

A 씨의 부친은 1950년대 경찰에 의해 경북 영천지역으로 끌려가 숨진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까지 행방불명으로 기록돼 있지만, 유족과 주민들의 말을 종합하면 국가폭력에 의해 숨진 민간인일 가능성이 높다. 유족이 코발트광산유족회에 가입하며 현재는 코발트광산 민간인 희생사건으로 분류되고 있다.

B 씨의 경우 부친이 이미 2기 진실화해위로부터 진실규명을 받았다. 경산 와촌에 살던 B 씨 부친은 경찰에 끌려가 고문을 받고 풀려난 지 1년이 채 안 돼 사망했다.

2기 진실화해위는 B 씨 부친 사망을 국가권력에 의한 고문치사로 판단했다.

B 씨 부친과 함께 끌려간 B 씨 삼촌은 2기 진실화해위에 진실규명을 신청했지만, 사건이 중단돼 3기로 넘어오게 됐다.

B 씨 삼촌은 군경에 끌려가 대구형무소에 수감된 뒤 끝내 풀려나지 못하고 옥중에서 사망했다.

3기 진실화해위는 이 두 사건을 포함해 2기 진실화해위 종료에 따라 조사가 중지된 2111건에 대해 조사 개시를 결정하고, 국가권력에 의해 숨진 희생자들에 대한 진상조사에 나설 방침이다.

지난 1950년 7~8월 경북 경산 등에 살던 민간인이 좌익에 협조했거나 국민보도연맹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집단 희생되는 일이 벌어졌다.

한국전쟁 당시 좌·우의 극심한 대립이라는 혼란한 정세 속에서 군·경은 재판절차 없이 예비검속(혐의자를 미리 잡아놓는 일)만 실시한 뒤 민간인들을 광산으로 끌고 가 집단 학살했다. 희생자만 3500여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희생자 유족들은 '좌익 혐의자 가족'이라는 사회적 낙인과 가장의 희생으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을 감내해야 했으며 친인척도 연좌제로 인해 취업과 사회활동에서 불이익을 받았다.

pdnamsy@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