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게 사는 게 아냐, 숯검정 산 보면 눈물만"

[영남 산불 1년] 새까맣게 변해버린 영덕 해안마을 옆 산
"원전 들어와 이재민 이주할 단지 조성됐으면"

16일 오전 지난해 3월 산불 피해지역인 경북 영덕군 영덕읍 석리 해안 마을(일명 따개비 마을)에서 주민이 버스를 타기 위해 정류장으로 걸어가던 중 도로 옆에 앉아 잠시 쉬고 있다. 주민 뒷편으로 이재민 임시주택과 검개 탄 산이 보인다. 석리는 지난해 3월 22일 의성군에서 발생한 산불이 강풍을 타고 확산되면서 피해가 발생한 지역이다. 산불로 영덕군에서는 약 2만ha(군 전체 면적 약 27%)가 불에 타는 피해가 발생했다. 2026.3.16 ⓒ 뉴스1 최창호 기자

(영덕=뉴스1) 최창호 기자 =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야."

지난해 3월 22일 경북 의성군에서 시작된 산불이 태풍급 강풍을 타고 사흘만에 영덕군을 덮친 지 1년이 됐다.

뉴스1은 산불 발생 1년을 앞두고 영덕군을 찾았다. 산불이 할퀴고 간 영덕군 곳곳에는 아직도 불에 탄 나무가 그대로 남아있어 당시 긴박했던 상황을 보여주고 있었다.

마을 대대로 살아온 집과 삶의 터전을 잃은 이재민들은 새까맣게 변한 산을 쳐다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

읍내로 나가기 위해 버스정류장 쪽으로 걸어가다 석리 마을에 사는 60대 이명순 씨를 만났다.

석리로 시집온 지 40년이 넘은 이 씨는 현재 임시주택인 컨테이너에서 살고 있는 이재민이다.

그는 "하루하루가 스트레스다. 압박감과 피로감을 이루 다 말할 수 없을 지경"이라며 "그때만 생각하면 아직도 온몸이 떨리고 가슴이 두근거린다"고 했다.

경북 영덕군 영덕읍 석리 해안마을(일명 따개비 마을)에서 주민이 버스정류장으로 힘겨운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2026.3.16 ⓒ 뉴스1 최창호 기자

이 씨는 "할 말도 많고 해줬으면 하고 바라는 것도 많지만, 수천 명의 산불 피해자들에게 다 해 줄 순 없지 않으냐"며 "당해본 사람만 안다. 나 같은 처지에 놓인 피해자들은 다 똑같은 생각일 것"이라고 했다.

2025년 3월25일 산불이 덮친 영덕군 영덕읍 매회리 모습(왼쪽)과 현재 모습. 2026.3.20/뉴스1 최창호 기자
2025년 3월25일 산불이 덮친 영덕군 영덕읍 노물리 마을 모습(왼쪽)과 현재 모습.2026.3.20/뉴스1 최창호 기자

이 씨는 "불에 탄 집터를 지날 때마다 더 이상 보기 싫고 먼발치에서 볼 때마다 눈물만 난다"며 "이젠 잊어야지 하고 마음을 다잡아보지만 쉽게 안 된다"고 했다.

그는 "이제 바라는 건 영덕에 원전이 들어와서 이재민들이 집 같은 집에서 살 수 있도록 이주단지를 만들어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라고 말했다.

도로변 환경 정리를 위해 나온 마을 주민은 "팔십 평생 이곳에서만 살아 몰랐는데 우리 마을이 외지인 눈에는 그렇게 풍광이 좋은 곳으로 소문나 놀랐다"며 "하지만 이젠 한 집 건너 한 집이 산불로 홀랑 타 버려 가슴이 먹먹하다"고 했다.

경북 영덕군 영덕읍 석리 해안마을(일명 따개비마을)의 집터가 텅 비어 있다. 2026.3.16 ⓒ 뉴스1 최창호 기자

매화리, 노물리, 석리, 경정리에 사는 산불 이재민들은 올여름 닥칠 폭염과 태풍으로 벌써 걱정이 많다.

한 주민은 "해안도로 옆 산비탈에 숯검정만 남은 시커먼 산을 볼 때마다 가슴이 타들어 간다"며 "올여름 고비를 어떻게 넘을지 고민이 크다"고 했다.

현재 영덕군에는 산불 피해를 본 713세대가 임시주택에 머물고 있다.

영덕군은 산불 이후 조립식 주택 770세대를 짓고, 전파 주택에는 주거지원비 8800만 원과 기부금 2500만 원을 지급했다.

하지만 이재민들은 "상처를 씻어내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고 입을 모았다.

군 관계자는 "주거비의 경우 소유자가 불분명한 주택을 제외하고 모두 지급됐다"며 "이재민들에게 필요한 부분을 찾아 적극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choi119@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