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화가 이인성'이 대구 약령시 카페에 나타났다?

이인성 작품 한눈에…매월 마지막 수요일 문화행사

'천재화가 이인성(1912~1950)'의 아들 이채원 이인성기념사업회 회장이 아버지 사진 옆에서 포즈를 취했다. 손에 든 그림은 이인성의 '겨울 어느날'. 이인성이 신촌 이화여대 강사 시절 북아현 굴레방다리 인근 풍경 그린 것이라고 했다.

(대구=뉴스1) 공정식 기자 = 주말인 지난 18일 대구 중구 약령시 서쪽 관문인 약령서문 앞 모퉁이 건물 1층 카페.

중년 남성 4명이 들어와 큰 액자 옆 테이블에 자리를 잡자 초록색 베레모를 쓴 노신사가 일행에게 다가가 작은 책자를 건넸다. "허허, 저희 아버지께서 그림을 좀 그리셨는데…한번 읽어나 보세요"

2~3분쯤 지나자 일행이 앉은 쪽에서 "어? 이인성?" "이인성 작품이야?" "미술관에서 봤는데…"라는 탄성이 흘러나오고, 자리에서 일어나 카페 내부 곳곳에 걸린 작품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노신사는 "이게 제가 할 수 있는 일이죠. 이 카페도 그런 역할을 하는 곳입니다"라며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책자를 건넨 사람은 '천재화가 이인성(1912~1950)'의 아들 이채원씨(73)다. 그는 이인성기념사업회 회장을 맡고 있다.

22일 정식 영업을 시작하는 이곳은 'WEST 110, 화가 이인성 아트 & 카페'다. 매월 마지막 수요일 '문화가 있는 날'에 맞추기 위해 카페 오픈 날짜를 22일로 잡았다.

인근 약령시에서 한약재를 가져다 만든 약차와 커피 등 음료를 판매한다. 여느 카페처럼 차를 마시고 이야기 나누는 공간이지만, 특이한 점은 이곳을 찾으면 이인성 화백의 모든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운이 좋으면 천재 화가의 아들에게 직접 작품에 대한 해설을 들을 수 있다.

카페 안에는 실제 원작과 같은 크기의 이인성 작품 '해당화' 영인본을 비롯해 여러 복제화(複製畫)를 만날 수 있고, 작품이 입혀진 다양한 상품도 살 수 있다. 약령시 활성화에 뜻을 모은 여러 업체가 협동조합을 이뤄 참여한다.

22일 문을 여는 대구 중구 약령시 서쪽 관문인 약령서문 앞 모퉁이 건물 1층 'WEST 110, 화가 이인성 아트 & 카페'

1935년 대구 반월당과 계산오거리 인근에 오늘날 미술학원 격인 '이인성양화연구소'를 설립했던 이인성이 1937년 문을 연 대구 최초의 다방 '아루스다방'이 이런 모습이었을까?

매월 마지막 수요일 '문화가 있는 날'에는 커피를 50% 할인하고, 카페에서 연극, 시극, 강연회 등 다양한 문화행사가 열린다. 매주 목요일에는 약령시를 비롯해 대구 도심을 그리는 어반스케치 수업이 진행된다.

이채원 이인성기념사업회 회장은 "아버지의 첫 전시가 이뤄진 곳이 중구 교남YMCA였다. 코로나19까지 겹쳐 하염없이 쇠퇴해가는 약령시에 조금이나마 활력을 불어넣고, 아버지께서 활동했던 약령시를 비롯해 대구의 영광을 재현하기 위한 노력을 시작하려 한다"고 말했다.

그는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문화, 말로만 하는 문화가 아니라 국가가 지정한 '문화가 있는 날' 만큼은 시민들이 평소 가지 못하는 곳을 찾아 즐길 수 있도록 돕고 싶다"고 했다.

이어 "밤이면 암흑같이 어두워지는 이 약령시에 작은 빛을 비추고 싶다"며 "유리창 밖에서 카페 내부가 보이도록 작은 전구 하나 켜두는 '한 집 한 등 켜기'를 확산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천재화가 이인성(1912~1950)'의 아들 이채원 이인성기념사업회 회장이 1935년 대구 계산오거리 인근에 이인성이 설립했던 '이인성양화연구소' 안내문을 소개하고 있다.

그는 "'천재화가 이인성'이 예전 명성을 되찾는다면 이인성양화연구소 같은 학교를 다시 만들고 싶을 것"이라며 "삼성전자가 한국의 디자인 발전을 위해 설립한 디자인학교 '삼성디자인교육원(SADI)' 같은 역할을 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이제 시작이다. 촛불의 심지가 되고자 한다. '대구 중구 약령시'라는 백지에 점 하나를 찍고 문화의 불씨가 되겠다"고 했다.

이인성이 태어난 대구에서 미술관이나 기념관 건립의 길은 멀고 더디기만 하다.

그는 "대구 시민이 문화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고 기회를 제공하고 싶다. 교과서에 이인성 작품이 실리고, 유치원과 학교 갤러리마다 이인성 그림이 걸려야 제2, 제3의 이인성이 나오지 않겠느냐"고 했다.

jsgong@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