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의 재구성] "나를 버리고 유부녀를 만나?"…배신감이 부른 비극
법원, "네 아이 가졌다"며 남친 유인 후 수면제 먹여 살해한 20대 징역 18년
- 이성덕 기자
(대구=뉴스1) 이성덕 기자 = "내 슬픔이 너무 커 그 사람의 아픔이 보이지 않았어요."
어릴 적 아버지로부터 잦은 학대를 당하면서 자라온 A씨(29·여)는 사람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어 혼자 지내는 것을 좋아했다.
그는 또 어려운 가정형편을 생각해 일찌감치 대학진학을 포기하고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사람 관계와 사랑에 서투른 A씨는 B씨(28)를 만나면서 마음의 안정감을 찾은 듯했다. B씨와 결혼까지 생각한 A씨는 어머니에게 "제가 만나는 남자"라며 소개까지 했다.
하지만 그녀의 어머니는 B씨가 마음에 내키지 않아 "네 짝이 아닌 것 같다"며 만남을 반대했다.
어머니의 반대가 심했지만 B씨에 대한 A씨의 믿음은 확고해져 갔다. '어릴 적 아버지로부터 잦은 학대를 당해 아직 상처로 남아있다'는 등 자신이 여태껏 숨겨온 비밀까지 털어놓으며 B씨에게 의지했다.
하지만 이런 믿음은 지난해 1월 한순간에 깨졌다. B씨가 유부녀 C씨를 만난다는 사실을 휴대전화를 통해 알게 됐기 때문이다. 배신감에 휩싸인 A씨는 B씨에게 "불륜관계를 정리하지 않으면 세상에 알릴 것"이라며 C씨와의 만남을 정리할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이런 A씨의 요구를 B씨는 무참히 짖밟았다. B씨는 C씨와 만남을 정리할 것을 요구하는 A씨에게 "나와 그 사람(C씨)은 6년간 알고 지낸 사이인데, 자기가 무슨 자격으로 협박하면서 끊어내려고 하는 거냐", "나를 죽이고 싶으면 죽여라"는 등의 말을 하며 A씨의 요구를 응하지 않았다.
A씨의 배신감과 분노의 감정은 더 커져갔다. 배신감과 분노의 끝은 결국 잔혹한 범행으로 이어졌다. A씨는 지난해 5월29일 B씨에게 "네 아이를 가졌다"며 거짓 문자메시지를 보내 대구 북구의 한 모텔로 유인했다.
그는 자신이 준비해 둔 수면제를 음료수에 타 B씨에게 먹인 뒤 잠에 들게 했다. 이후 A씨는 B씨의 휴대전화를 열어 C씨와 나눈 대화내용을 보면서 극도의 배신감과 슬픔에 휩싸여 분노를 주체하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
잠을 자다 깨다를 반복하다 A씨는 잠든 B씨를 향해 흉기를 20여회 휘둘러 숨지게 했다.
살인 혐의로 법정에 선 A씨는 "그 사람(B씨)에 대한 믿음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듯해 당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그런 짓을 했다"며 "제 아픔과 상처만 생각하고 상대방의 상처를 생각 못 했다"라고 자신이 써 온 편지를 읽어 내려갔다.
또 "지금도 그 친구에게 너무 미안하고 그의 부모님에게 너무 죄송하다"며 "현재 저는 몸이 편찮은 어머니와 단둘이 사는데 곁에서 모실 수 있게 해달라"며 재판부에게 선처를 호소했다.
그러나 사법부의 판단은 엄했다. 대구지법 제12형사부(부장판사 이규철)은 지난달 14일 살인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징역 18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앙심을 품어 피해자를 살인하려고 계획적으로 준비한 점 등에 비춰 엄중한 책임을 물을 수 밖에 없다"면서도 "범행을 인정하고 반성하는 점, 우울증을 앓고 있어 다소 불안한 정신상태에서 범행을 저지른 점 등을 종합했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재판에서 검사 측은 "피해자의 부모님이 엄벌을 탄원하고 있고 여러가지 증거 등을 통해 계획된 살인으로 보인다"며 징역 20년을 재판부에 요청했다.
psyduck@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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