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우·산사태로 고립 거제 어구마을…생업 터전도 잃어 '막막'

"TV로만 봤지 내가 이리 될 줄은"
주민들 생업 멈추고 복구에 구슬땀

20일 오후 찾은 거제시 둔덕면 어구마을 곳곳에 폭우와 산사태 피해 흔적이 남아 있다. 2026.8.20 ⓒ 뉴스1 박민석 기자

(거제=뉴스1) 박민석 기자 = "집에 누워 있는데 갑자기 '쾅' 하는 소리가 났어요. 순식간에 토사가 쏟아졌습니다"

20일 오후 경남 거제시 둔덕면 어구마을에서 만나 김점달 씨(76)는 광복절 연휴 동안 쏟아진 기록적인 폭우 당시 상황을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김 씨의 집에는 당시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마당은 산에서 쓸려 내려온 진흙과 토사로 뒤덮였고 집 외벽과 창문에는 흙탕물이 튄 자국이 선명했다.

장화를 신은 김 씨는 부인과 함께 마당에 널브러진 집기들을 하나씩 정리하며 복구 작업을 이어가고 있었다. 집 안까지 물이 들어차 가구와 생활 집기 대부분은 못 쓰게 됐다.

김 씨는 "집 뒤편에서 토사가 쏟아져 내려오는 것을 보고 순식간에 아내와 집을 빠져나왔다"며 "항구에 정박해 둔 어선으로 피신했다"고 말했다.

어구마을 주민 김점달 씨의 집 마당에 산사태로 쓸려온 토사가 뒤덮여있다. 2026.8.20 ⓒ 뉴스1 박민석 기자

김 씨 부부는 가까스로 몸을 피했지만, 집은 엉망이 돼 있었다.

그는 "가구 같은 것도 모두 물에 잠겨 다 버리게 생겼고 마당에도 토사가 들어찼다"며 "집에서 지낼 수 없어 지금은 지인 집에 머물고 있다"고 했다.

이어 "텔레비전에서 이재민들을 보기만 했지 내가 그렇게 될 줄은 몰랐다"며 "직접 겪어보니 그분들의 심정이 절절하게 이해된다"고 말했다.

김 씨의 집을 나서자, 마을 곳곳에서도 폭우와 산사태의 상흔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골목과 주택 마당에는 산에서 쓸려 내려온 진흙과 자갈이 남아 있었고, 길가에는 장롱과 서랍장, 이불 등 물에 젖어 못 쓰게 된 가재도구가 한데 쌓여 있었다. 토사에 바퀴가 파묻힌 승용차도 눈에 띄었다.

20일 오후 거제시 둔덕면 어구마을에 승용차가 토사에 묻혀 있다. 2026.8.20 ⓒ 뉴스1 박민석 기자

같은 마을 주민 문경붕 씨(76)는 집과 생업 터전을 한꺼번에 덮친 수해에 망연자실했다.

문 씨의 집 주변에는 산에서 쏟아져 내려온 크고 작은 돌과 토사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별채 내부에는 이날까지도 흙탕물이 빠지지 않았고 장롱과 의자, 안마의자 등 가구와 가전제품이 물에 잠긴 채 놓여 있었다.

건물 외벽에는 당시 물이 차올랐던 높이를 보여주는 흙탕물 자국도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문 씨는 벽에 남은 자국을 가리키며 "바닷가 바로 앞인데도 물이 1m 높이까지 찼다"며 "20㎏짜리 포대가 신문지 떠내려가듯 떠내려갔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폭우는 집뿐만 아니라 문 씨의 생업 터전까지 덮쳤다. 멍게 종묘를 키우는 양식장에도 토사가 밀려들면서 일손을 놓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문 씨는 "산사태로 고립돼 밤새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며 "이번 비는 불가항력이었다. 알고 있어도 어떻게 막을 수가 없었다. 빨리 복구가 돼야 할 텐데 걱정"이라고 눈물을 보였다.

어구마을 주민 문경붕 씨가 지난 17일 폭우 당시 물이 들어찬 높이를 설명하고 있다. 2026.8.20 ⓒ 뉴스1 박민석 기자

170여 명이 사는 어구마을은 침수와 산사태로 마을 진입도로가 막히면서 이틀 동안 외부와 고립됐다.

수돗물 공급까지 끊기면서 주민들은 복구 작업은 물론 일상생활에도 어려움을 겪었다. 수돗물은 이날부터 다시 나오기 시작했다.

일부 주민들은 아직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마을회관이나 지인의 집에서 생활하고 있다.

주민 대부분이 어업에 종사하지만 당장 생업보다 집과 마을을 복구하는 일이 먼저가 됐다. 고령 주민이 많은 탓에 토사를 걷어내고 침수된 가재도구를 치우는 작업도 자원봉사자들의 손길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김영표 어구마을 이장(76)은 "침수와 산사태로 마을로 들어오는 도로가 막혀 이틀 동안 고립됐었다"며 "다들 어업에 종사하는데 피해가 막심하다 보니 생업을 중단하고 복구에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마을에 어르신들이 많다 보니 복구 작업을 돕는 자원봉사자분들에게 크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며 "이 때문에 복구 작업도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pms7100@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