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흙에 깔린 장면 떠올라"…거제 산사태 주민, 귀가 조치에 '머뭇'
안전 확인된 동부터 순차 복귀 시작
사고 목격 주민·미복귀 세대는 불안 여전
- 박서현 기자
(거제=뉴스1) 박서현 기자
"가스가 안 들어와도 우리가 나와야 다른 분들이 한곳에 모일 수 있잖아요. 서로 힘드니까 협조해야죠."
19일 오후 경남 거제시 옥포동의 A 아파트. 폭우와 산사태를 피해 대피소에서 2박 3일을 보낸 정 모 씨(60대·여)가 짐을 챙겨 집으로 돌아왔다.
정 씨가 사는 105동은 이날 주민 복귀가 허용됐다. 전기와 수도는 사용할 수 있지만 가스 공급은 아직 재개되지 않았다.
정 씨는 지난 17일 성지중학교로 대피했다가 같은 날 저녁 옥포초등학교로 옮겨 생활했다. 이날 관리사무소의 복귀 안내를 받고 집으로 향했다.
정 씨는 "가스가 안 들어와도 며칠 밥을 못 먹는 것도 아니고 우리가 빠져 줘야 흩어져 있는 분들이 한곳에 모일 수 있다"며 "우리도 고생이지만 봉사하시는 분들도 우리를 돕느라 고생이 많았다"고 말했다.
이번 폭우로 대피했던 일부 주민들이 집으로 향하기 시작했지만, 복귀를 앞둔 주민들의 불안은 여전했다.
105동에 사는 지 모 씨(50대·여)는 옥포초등학교 대피소에서 이날 오후 복귀를 준비하면서도 선뜻 집으로 돌아갈 마음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지 씨는 산사태 당시 이웃 주민들이 토사에 깔린 모습을 직접 목격했다.
지 씨는 "사람이 흙에 깔린 모습을 직접 봐 그 장면이 자꾸 떠오른다"며 "집으로 돌아가면 혹시 또 무너질까 봐 잘 때 머리를 베란다 쪽으로 두고 자야겠다는 생각까지 했다"고 말했다.
아이 역시 집으로 돌아가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고 했다. 지 씨는 "아이도 무섭다며 집에 가고 싶어 하지 않는다"며 "눈만 뜨면 사고가 난 104동이 보이는데 다시 들어가 살라고 하니 겁이 난다"고 말했다.
복귀 시점을 기약할 수 없는 주민들도 있다. 산사태 피해가 발생한 104동 주민 윤 모 씨(40대·남)는 아내와 자녀들과 함께 옥포초등학교 대피소에 머물고 있다.
윤 씨는 사고 당시 큰 폭발음과 함께 집 전체가 흔들렸다고 했다. 그는 "집이 영화에서 보던 것처럼 흔들려 건물이 넘어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가스 냄새가 나 밸브를 잠그고 가족들과 바로 빠져나왔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대피소 역시 장기간 머물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옥포초등학교가 개학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윤 씨는 "직장에서는 다시 출근하라는 연락이 오는데 집으로 돌아가기는 불안하다"며 "여기에서도 언제까지 지낼 수 있는지 모르니 앞으로 어디로 가야 할지도 막막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미복귀 주민 정 모 씨(40대·여)는 안전진단이 끝나 집으로 돌아가라는 안내를 받더라도 당장 복귀하기는 두렵다고 했다.
정 씨는 "언제 집에 갈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막상 들어가도 된다고 하면 불안해서 바로 들어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피해 주민들이 안심하고 지낼 수 있는 임시 거처를 장기간 제공하거나 별도로 거처를 마련할 수 있도록 지원해 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현재 산사태 직격탄을 맞은 A 아파트에서는 안전진단과 복구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안전이 확인된 동부터 순차적으로 대피 명령이 해제되며 104동을 중심으로 안전진단이 진행 중이다.
이번 산사태는 지난 17일 오전 4시 35분쯤 A 아파트 104동 인근에서 발생했다. 사고로 주민 1명이 숨지고 2명이 다쳤으며 구조된 주민은 병원에서 치료받고 있다.
사고 직후 주민들은 옥포초등학교와 옥포종합사회복지관 등에 마련된 대피소로 몸을 피했다.
복구와 안전진단이 진행되면서 이날부터 일부 주민은 집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같은 아파트에서도 누군가는 집으로 돌아왔고, 누군가는 두려움 속에 복귀를 준비했으며, 누군가는 돌아갈 날조차 정하지 못한 채 대피소에 남았다.
wiseh@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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